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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 조화 완벽…염경엽 감독 “우승은 이제 시작일 뿐” 자신감
막힌 혈 뚫어…내년에도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

LG 트윈스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1994년 이후 29년 만이다. 창단 첫해(1990년)까지 포함하면, 역대 3번째 우승이다. 29년은 꽤 긴 시간이다. 대중가요로 치면 김건모의 《핑계》,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이 ‘길보드’ 차트 1위를 다툴 때 우승했다가 BTS가 그룹은 물론 솔로로도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는 시대에 이르러 다시 정상에 선 셈이다. 그나마 강산이 채 3번 바뀌지 않은 때 우승한 게 다행이랄까. LG 선수 및 코칭 스태프, 프런트 및 팬들이 한국시리즈 5차전(11월13일) 승리로 우승이 확정되자 눈물을 펑펑 쏟은 이유다. 1994년 이후 LG는 11명의 사령탑을 떠나보냈고 이병규, 박용택 등 프랜차이즈 스타들은 우승반지 없이 빈손으로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벗었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 2위를 하고도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후 LG는 류지현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고 염경엽 감독을 새롭게 영입했다. 염 감독 또한 사령탑으로서는 우승 전력이 없었으나 한국시리즈 준우승 등 큰 경기 경험이 있었다. LG 구단에서 운영팀장 등을 역임해 팀 상황을 잘 아는 점도 있었다. 구단은 염 감독이 LG 체질을 바꿔주기를 원했다.
11월1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KBO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승리하며 29년 만에 우승을 확정한 LG 선수들이 염경엽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연합뉴스

우승 위해 염경엽 감독 영입…LG 야구에 세밀함 더해

염 감독의 지휘 아래 LG는 올 시즌 강한 면모를 뽐냈다.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시즌 개막부터 종료까지 1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을 달성한 지난해 SSG 랜더스만큼은 아니었으나 투타 안정 속에서 내내 상위권을 유지했다. 6월27일 단독 1위로 올라선 후에는 시즌이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밑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외국인 투수 케이시 켈리의 부침이 있었고, 7월말 키움 히어로즈부터 트레이드로 영입한 최원태 또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으나, LG는 순위를 꿋꿋이 지켰다. 선발보다는 탄탄한 중간계투진으로 ‘지키는 야구’를 이어갔다. LG는 정규리그 평균자책점 1위(3.67)였는데, 선발(평균자책점 3.92·5위)보다 불펜(평균자책점 3.43·1위)이 더 좋았다. 2년여 만에 현장으로 돌아온 염 감독은 LG 야구에 세밀함도 주입했다. ‘더 많이 뛰는’ 야구가 한 예다. LG는 작년에 도루 2위(102개)였으나 올해는 압도적으로 1위(166개)였다. 올 시즌 경기당 평균 도루 수(1.15개) 1개가 넘는 팀은 LG가 유일했다. 많이 뛰는 만큼 주루사와 도루사가 많아 “그만 좀 뛰었으면 좋겠다”는 불만을 터뜨리는 팬들도 있었으나 염 감독은 굽히지 않았다. 사실 잠실야구장처럼 외야 펜스까지 거리가 먼 구장에서 ‘발야구’는 필수다. 발야구는 ‘누구든 나가면 뛴다’는 인식 속에 상대 배터리의 실투를 유도하는 효과도 있다. LG는 올해 팀 타율(0.279), 출루율(0.361), 장타율(0.394) 1위 팀이었다. 염 감독은 이에 대해 “LG에 가장 필요한 부분이 망설임과 초조함을 없애는 것이었다. 자신감 있게 야구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했고, 뛰는 야구를 통해 공격적인 야구를 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시리즈 때는 발야구보다 ‘한 방’의 야구가 통했다. 상대인 KT 위즈 투수들의 구위가 플레이오프 5차전 혈투를 치르면서 많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정규리그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하면서 3주가량 쉬며 힘을 비축한 덕도 있었다. LG는 정규리그 때 홈런이 경기당 0.65개(전체 6위)에 불과했으나 한국시리즈 때는 경기당 1.6개가 뿜어져 나왔다. 우승의 고빗길이던 2차전(8회 박동원 2점 홈런), 3차전(9회 오지환 3점 홈런) 모두 결승타가 홈런포였다. 특히 1승1패로 맞선 3차전 9회초 2아웃 이후 나온 오지환의 홈런은 결정적 한 방이 됐다. 염 감독은 “구장이 넓은 홈에서는 발야구, 구장이 작은 원정에서는 홈런 야구를 하고 싶었는데 포스트시즌에 그게 나왔다”고 했다. LG의 이번 우승이 더욱 의미 있던 것은 1~2선발급인 아담 플럿코 없이 한국시리즈를 치렀기 때문이다. 8월말 골반 타박상을 입은 플럿코(11승3패 평균자책점 2.41)는 미국 주치의 소견에 따라 더 이상 던지기 힘들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결국 LG는 선발 한 명 없이 한국시리즈에 돌입했다. 켈리·임찬규·최원태·김윤식으로 꾸려진 시리즈 선발진은 KT(쿠에바스·고영표·벤자민·엄상백)와 비교해 무게감이 떨어졌다. 그러나 LG는 선발의 약세를 불펜진으로 극복해 냈다. 이정용·정우영·김진성·백승현·유영찬·함덕주·고우석 등 두터운 중간 계투진을 앞세워 KT 타선을 무력화했다. 유영찬에 밀려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아쉽게 제외된 박명근까지 더하면 LG의 ‘철벽 불펜’은 완성된다.
2023 KBO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에 선정된 LG 오지환 ⓒ연합뉴스

문보경·문성주·신민재·정우영·고우석·유영찬 등 20대 든든

29년 만에 우승의 한을 푼 LG는 이제 지속 가능한 미래를 꿈꾼다. 염경엽 감독은 한국시리즈가 끝난 후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우승이 선수들에게 더 큰 자신감을 만들어주고 멘털적으로 더 단단한 힘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신구 조화가 잘돼 있어 선수들을 1년에 한두 명씩만 더 키워낸다면 LG가 명문 구단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본다. 올해가 계속해서 우승할 수 있는 첫해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염경엽 감독의 말처럼 LG 트윈스는 신구 조화가 제법 잘 이뤄진 팀이다. 한국시리즈 선발 라인업을 살펴보면 김현수·박해민·오지환·박동원 등 베테랑 선수도 있고, 문보경·문성주·신민재 등 20대 선수도 포진해 있다. 특히 2000년생 내야수 문보경은 아시안게임과 한국시리즈를 거치면서 한 단계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마운드에서도 4차전 선발승을 거둔 김윤식을 비롯해 이정용·정우영·유영찬·백승현·함덕주·고우석 등이 아직 20대다. 유영찬·백승현 등의 재발견은 이번 한국시리즈의 가장 큰 수확이었다. 염 감독이 “이번 우승은 마지막이 아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말한 이유도 선수들의 기량이 만개하는 와중에 우승이라는 결과물을 냈기 때문이다. LG는 양상문, 차명석 단장 등을 거치면서 탄탄한 전력을 다져왔다. 김현수와 오지환이 더그아웃 리더 역할을 해주면서 과거의 ‘모래알 구단’ 이미지에서 벗어나 ‘원팀’으로 거듭난 점도 있다. 한국시리즈 우승 또한 ‘깜짝 반등’은 아니었다. 2019년부터 5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올랐고, 지난해에는 정규리그 2위 팀이었다. 우승 DNA는 천천히 LG 선수들에게 스며들었다. 2020년 이후 한국시리즈 우승팀은 매해 바뀌었다. LG는 과거 우승을 연이어 하며 왕조시대를 펼쳤던 해태·현대·SK·삼성·두산의 바통을 이어받아 자신의 왕조시대를 열 수 있을까. 우승 혈이 뚫린 LG가 디펜딩 챔피언으로 나서는 2024 시즌의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일 것이란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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