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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브로드웨이와 한국 대학로 동시 공연으로 화제 된 뮤지컬 《구텐버그》
17년 만에 브로드웨이 극장 입성 성공
그런데 그것은 사실 대단한 일이다. 수백 개 극장이 있는 공연예술의 메카 뉴욕에서 500석 이상 큰 규모의 좌석을 가진 브로드웨이 극장은 40개 남짓. 극장마다 장기 공연 중인 작품이 많아 새로운 작품이 입성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처럼 어렵다. 작품도 좋아야 하지만 투자자도 제대로 확보해야 하고 티켓파워가 있는 배우 캐스팅도 이뤄져야 한다. 이 모든 게 맞아떨어져도 성공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같은 시즌 경쟁작들 사이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운도 따라줘야 한다. 성공은 제쳐두고라도 일단 바늘구멍을 통과한 낙타가 돼 브로드웨이 극장가에 자신의 작품을 올려보겠다는 염원은 공연계에서 창작자로 일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다 꿈꾸는 일이다. 이러한 브로드웨이에서 최근 드라마틱한 사건이 일어났다. 2006년 초연을 거쳐 이듬해 오프-브로드웨이 작은 무대에서 공연했던 뮤지컬 《구텐버그(Gutenberg!)》가 10월12일 무려 17년 만에 브로드웨이 극장 진출에 성공한 것이다. 이 작품의 내용은 ‘버드’와 ‘더그’라는 무명의 두 신인 뮤지컬 작곡가와 작가가 새로운 작품을 써서 브로드웨이에 진출시켜줄 투자자를 찾는 리딩 형식의 공연을 연다는 극중극 설정이다. 이 작품의 초기 공연에는 실제 작곡가인 스콧 브라운과 작가 안소니 킹이 각각 버드와 더그 역을 맡아 직접 뮤지컬에 출연했다. 두 사람은 소꿉친구 사이로 서로에 대해 큰 애정을 갖고 평생 창작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라이선스로 공연된 브로드웨이 뮤지컬 《비틀쥬스》(2018)의 창작자로 브로드웨이 데뷔를 하기도 했다. 실제로 뉴욕 뮤지컬 공연계에서는 창작자 두 사람이 자신들의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직접 배우와 기획자를 모두 겸하며 투자자들 앞에서 쇼케이스 공연을 하는 일이 흔하다. 이를 ‘배커스 오디션(Backer’s Audition)’이라고 하는데, 마치 젊은 벤처기업 설립자들이 투자를 받기 위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두 창작자는 독일 마인츠 출신의 활자인쇄 기술자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398~1448)를 소재로 뮤지컬 《구텐버그》(구텐베르크의 영어식 발음)를 써서 관객들에게 창작 과정과 인물 소개, 줄거리 요약을 직접 해설하고 주요 곡들을 노래와 춤을 통해 소개한다. 구텐베르크는 마을 사람들이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해 일상에서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글을 깨우치려면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활자 설계와 제작을 통해 유럽에 대량 출판 시스템을 확산시킨 인물이다. 이 작품은 두 배우가 자신들을 작가와 작곡가로 소개하며 자신들이 쓴 작품을 직접 시연하는 극중극이다. 전체 러닝타임 110분의 절반 가까이는 자신들의 창작 협업 과정 소개이고, 나머지가 실제 구텐베르크의 에피소드 드라마로 이뤄져 있다. 흥미로운 지점은 작가와 작곡가가 함께 만드는 과정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다. 구텐베르크가 자신의 활자 제작 기술을 개인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한 위인이며, 마을에서 유대인을 차별하는 분위기에 대해서도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며 공존·공생하는 가치를 추구한다는 극중극 내용과도 어울린다는 것이다.신인 창작자의 해피엔딩 그려
《구텐버그》는 2007년 뉴욕뮤지컬페스티벌 최우수 뮤지컬 대본상을 비롯해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 루실 로텔 어워즈, 외부비평가협회상 등에 노미네이트된 작품이다. 우리나라에도 입소문이 나서 2013년 초연 이후 여러 번의 재공연을 가졌다. 그리고 현재 대학로 플러스시어터에서 6년 만에 새로운 시즌 공연이 열리고 있는데, 얼마 전에 브로드웨이 공연이 시작되면서 미국과 한국의 동시 공연으로 화제를 모으게 됐다. 이 작품의 특징은 극을 이끌어가는 두 창작자 역할의 배우들이 한 명의 피아노 연주자와 함께 스무 개가 넘는 캐릭터를 다역으로 소화한다는 점이다. 이때 모자를 적절히 활용한다. 모자를 쓰지 않고 있을 때는 창작자 캐릭터로 존재하지만, 모자를 쓸 때는 모자에 써있는 배역명으로 연기한다. 두 배우는 모두 남자지만 구텐베르크의 상대역인 여자 헬베티카도 하이톤으로 표현하고, 순식간에 길 가는 취객이나 굵은 목소리의 수도사를 넘나들면서 쥐 같은 동물 연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모자를 여러 개를 겹쳐 쓰고 있다가 박자에 맞춰 모자를 바꿔 쓰면서 캐릭터를 로테이션시키는 코믹 연기도 큰 재미를 준다. 설정 자체가 투자자들 앞에서 작품을 소개하는 방식이어서 두 명의 배우가 미니멀한 소품, 의상, 세트 그리고 단 한 명의 연주자만으로 관객들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며 아직 정식 공연화되지 않은 작품을 소개하면서 매 장면을 갖가지 아이디어로 가득 채운 작품이다. 마지막에는 객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프로듀서가 이 작품을 브로드웨이에 올리겠다고 말하고 두 창작자는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모습이 나온다. 오리지널 창작자인 스콧 브라운과 안소니 킹은 자신들이 직접 배우로 출연한 소극장 공연 이후 17년 만에 실제로 작품의 마지막 장면이 브로드웨이 공연으로 실현되는 경험을 하게 됐다.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는 성경 말씀이 생각나는 해피엔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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