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실종 우려에도 지난 10년간 전 세계 벌집 수 26% 증가
정작 꿀벌 먹이인 밀원식물 한정돼 있어 우려의 목소리 나와
꿀벌은 부지런함의 상징이다. 꽃에서 꿀을 따 모으는 꿀벌은 속씨식물이 지구상에 등장한 이후 식물의 확산과 진화에 큰 역할을 해오고 있다. 농업 부문에서도 꿀벌은 꽃가루 매개 역할을 담당하면서 과수 재배 등에서 핵심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작물 약 1500만 톤 가운데 35%(530만 톤)인 과실이나 과채류 등의 생산에서 꿀벌 등에 의한 화분매개는 필수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화분매개 가치는 6조원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꿀벌을 중심으로 하는 양봉 산업의 경우 약 7조원 규모로 추정되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벌집군집붕괴 가속화
일반적으로 화분매개는 꿀벌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뒤영벌도 30% 수준의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뒤영벌의 경우 20년 전부터 도입되기 시작했다. 비교적 낮은 온도인 10도 이하에서도 활동성이 뛰어나며, 비닐하우스 같은 좁은 공간에서의 적응력이 꿀벌보다 뛰어나 점차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고추 화분매개에서 뒤영벌이 차지하는 비중은 75%로 꿀벌을 한참 앞지르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가 최근 커지고 있다. 꿀과 꽃가루 채집에 나선 일벌 무리가 돌아오지 않으면서 벌집에 여왕벌과 애벌레만 남아있다가 결국 몰살당하는 현상을 가리켜 벌집군집붕괴(CCD)라 하는데, 이러한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간헐적으로 보고되던 벌집군집붕괴 현상은 2006년 미국의 양봉가 데이브 하켄베르그가 자신의 벌통 대부분에서 일벌이 사라지고 있음을 보고하고, 다른 양봉농가에서도 벌통의 90% 이상이 사라졌다는 보고가 이어지면서 세계적인 관심사가 됐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의 경우에도 유사한 현상이 2007년 이후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벌집군집붕괴의 원인에 대해 전자기파와 유전자 조작 식물, 농약을 비롯한 각종 유기화합물,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지구온난화, 지구 자전축 변화 등 온갖 가설이 제기돼 왔다. 이 가운데서도 2012년 니코틴계 살충제인 네오니코티노이드 계통 농약 성분이 벌집군집붕괴 현상을 일으킨다는 영국·프랑스 등의 연구 결과가 가장 설득력을 얻었다. 유럽연합(EU)은 2013년부터 해당 살충제 사용을 2년 동안 중단시켰으며, 2018년부터는 영구히 사용을 금지시켰다. 그럼에도 벌집군집붕괴가 계속 이어지면서 무엇인가 다른 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2022년 2월 경남과 전남 지역 벌통 11만 개의 꿀벌이 사라지는 현상이 발생한 바 있다. 특히 경남 지역의 경우 8만5045개 벌통 가운데 54%가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농촌진흥청은 응애와 말벌 등 병해충이 원인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응애는 꿀벌에 기생하면서 체액을 빨아먹어 30% 이상의 체중 감소와 발육 저하 등의 피해를 유발한다. 그동안은 농약을 통해 방제해 왔다.
하지만 주로 사용되던 스트립제에 대한 저항성을 갖게 되면서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 말벌의 경우 꿀벌을 직접 공격해 피해를 입히는데, 장수말벌과 등검은말벌이 대표적이다. 등검은말벌은 원래 중국 남부 지역이 원산지인데, 2003년 부산항을 통해 유입된 이후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말벌 가운데 72%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비중을 보이고 있다. 등검은말벌은 꿀벌 킬러로 알려져 있을 만큼 매우 공격적이다. 농촌진흥청의 추산에 따르면 등검은말벌로 인한 국내 양봉가 피해액은 연간 1700억원을 상회하고 있다. 이 밖에도 이상 저온 및 고온 현상도 꿀벌 감소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벌집 수는 지난 10년 동안 8100만 개에서 1억2000만 개로 오히려 26% 증가했다. 꿀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경쟁적으로 벌집을 설치해 전체 개체 수가 증가한 것이다. 문제는 꿀벌이 먹이로 삼는 밀원식물 총량은 제한돼 있다는 점이다. 벌 개체 수만 증가하면서 충분한 영향 섭취를 하지 못한 꿀벌들이 취약해져 약간의 충격에도 집단으로 폐사하고 있는 것이다.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과도한 경쟁이 꿀벌군집붕괴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벌통 밀도는 세계 최고 수준
영국의 큐 왕립식물원이 2020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런던의 경우 꿀벌이 너무 많아지면서 다른 벌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환경에 대한 기여 등을 명분으로 크고 작은 기업들이 앞다퉈 옥상에 벌통을 설치하면서 꿀벌의 서식 밀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뉴욕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기업들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흐름에 동참하기 위한 활동으로 도심양봉을 선택하는 기업들이 증가하지만, 도심에서 늘어난 꿀벌들이 필요로 하는 밀원식물은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벌통에서 생산되는 꿀의 양은 감소하고 있다. 슬로베니아의 경우 벌통 수는 15년 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지만 오히려 벌꿀 생산량은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꿀벌들이 생존을 위해 저장보다는 꿀을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2010년 초반 전국적으로 150만 개 수준을 유지하던 벌통 수는 2020년대 들어서면서 250만 개까지 급증했다. 우리나라의 벌통 밀도는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당 벌통 수를 살펴보면 미국 0.27개, 뉴질랜드 3개, 헝가리 12.97개인 데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 21.79개에 이르고 있다. 농업이나 축산에 비해 비교적 손이 덜 가면서 안정적인 소득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양봉에 신규로 참여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기후변화로 인해 꽃들이 한꺼번에 개화하는 현상이 잦아지면서 더 많은 벌통을 투입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도 벌통 수 증가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아키시아 벌꿀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벌통 1개당 17kg 정도 생산이 일반적인데, 2020년에는 9kg, 2021년엔 11.5kg까지 감소하기도 했다. 다행히 2022년 32kg, 2023년 30kg 등 최근 들어서는 평년을 웃도는 생산량을 기록하고 있지만 매우 불안한 상황에 놓여 있음은 분명하다.
꿀벌이 줄어들고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너도나도 꿀벌을 키우는 것은 공유지의 비극을 가속화시킬 따름이다. 꿀벌이 먹이로 삼는 밀원식물이 부족한 서울 도심에 벌통을 가져다놓는 것은 친환경적이며 지속 가능한 기업의 사회적 공헌이 아니라 꿀벌을 학대하는 것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한정된 밀원식물을 둘러싼 과당 경쟁을 자제하고 적절한 벌통 수를 유지하기 위한 양봉농가의 자율적 합의와 적절한 진입 규제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눈앞의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무조건 현대문명의 부작용으로 치부하는 습관적인 태도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