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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싸우라고 그 자리 있는 것” 이후 한 총리 등 ‘강공모드’
품격 잃은 정치…“여당은 빠져있고 왜 내각이 싸우나” 비판도

“여러분들은 정무적 정치인이기 때문에 말로 싸우라고 그 자리에 계신 것이다. 여야 스펙트럼의 간극이 너무 넓으면 점잖게 얘기한다고 되지 않는다. ‘전사’가 돼야 한다.”(8월29일 국무회의)

윤석열 대통령의 이 주문 영향일까. 최근 국회에 출석해 야당 의원과 마주하는 국무위원들의 태도가 크게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번번이 부딪쳐 온 한동훈 법무부 장관 뿐 아니라, 그동안 고성과 충돌을 자제해 온 이들까지 한껏 목소리를 높이며 강하게 응수하는 모습이다. ‘점잖음’을 버린 국무위원들의 공세와 여당의 응원, 야당의 거센 반발이 뒤섞이면서 국회는 연일 알맹이 없는 ‘말다툼의 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게 언행이 세진 인물로는 그간 ‘식물총리’라는 평을 받던 한덕수 국무총리가 꼽힌다. 6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 출석한 한 총리는 야당을 향해 “정말 공부 좀 하세요 여러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경협 민주당 의원이 “북한에 대한 확장억제가 실제로 되고 있다고 보나.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한 총리에 질의한 데 따른 반응이었다. 한 총리는 김 의원에 “의원님이 착각하고 계시는 것”이라고 답한 데 이어 회의장에 앉은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서도 이처럼 한 마디 던지며 맞섰다.

이날 한 총리는 고(故) 채수근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서도, 문제를 거듭 제기하는 김병주 민주당 의원을 향해 “의원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며 짜증을 내비쳤다. 지난달 30일엔 “우리 정부가 도쿄전력의 입이 되어 버렸다”는 야당의 지적에 “기본적인 예의가 없다”며 발끈하기도 했다. 이러한 한 총리의 기조가 연일 이어지가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에 싸우러 나왔느냐”며 김진표 국회의장에 경고를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치 분야에 관한 대정부질문에서 야당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치 분야에 관한 대정부질문에서 야당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무위원 사이 번지는 ‘한동훈식 화법’

야당의 질의에 전 정부나 민주당 사례를 소환해 맞받아치는 패턴도 국무위원들 사이 번지는 분위기다. 그간 한동훈 장관이 이러한 패턴을 가장 자주 사용해 온 탓에 민주당 내에선 이를 ‘한동훈식(式) 화법’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지난달 30일 국회에 출석한 한 장관은 민형배 민주당 의원이 검찰 특수활동비와 관련해 “‘세금도둑잡아라’라는 시민단체 아시나”라고 묻자 “주로 민주당과 발맞춰서 일하는 단체로 알고 있다”고 응수했다. 이에 민 의원이 “정치적인 언어를 쓰지 말라”고 지적했고 한 장관은 “팩트를 말하는 것이다. 위원님은 질문하시고 저는 답을 드리면 된다”고 재반박했다.

같은 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환해 스스로를 방어했다. 원 장관은 자신의 선거 중립 의무 위반 논란에 대해, 과거 노 전 대통령의 국회 탄핵 의결도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지 않았다며 자신의 발언 또한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인천에서 열린 2023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 만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인천에서 열린 2023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 만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野, ‘윤석열씨’ ‘탄핵’ 언급하며 응수

국무위원들이 ‘전사 모드’로 전환하면서 이에 맞서는 야당 의원들의 언사도 날로 거세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무위원의 ‘호칭’을 생략하거나, 본회의장에서 윤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 여당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대표적으로 지난 5일 최강욱 민주당 의원은 국회 대정부질문 진행 중 “국민이 뽑은 관리인에 불과한 고작 5년짜리 정권이 겁도 없이 최소 30년 이상 방류한다는 후쿠시마 오염수를 염려하는 국민을 가리켜 ‘싸워야 하는 세력’이라며 겁박을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자리에 있던 여당 의원들 사이 항의가 빗발치자 최 의원은 “(5년짜리 정권 발언은) 윤석열씨가 한 말”이라며 윤 대통령을 ‘씨’로 지칭했다.

같은 날 설훈 민주당 의원은 채 상병 사건 외압 의혹과 관련한 질의 도중 “(대통령의 직권남용) 증거가 넘치고 넘친다. 탄핵할 수 있는 소지가 충분히 있다”고 발언했다. 여당의 ‘탄핵 발언 취소’ 요구에도 설 의원은 “윤석열 정권은 준엄한 심판은 물론, 국민들이 탄핵하자고 나설지 모르겠다”며 한 번 더 언급했다.

야당은 ‘국무위원들이 단체로 입법부를 무시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국무위원들의 거친 언사와 태도를 보면, 정부가 국회 무시 전략을 세워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하고 입법부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거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라고 직격했다. 이에 여당에선 ‘야당이 답변을 제대로 들으려도 하지 않고 먼저 싸우려고만 하는 게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총선 전 지지층 결집” “여당은 어디에?”

여야 의원들 사이 연일 고성이 오가자 김진표 국회의장은 “초등학교 반상회에 가도 이렇게 시끄럽지 않다”며 국무위원과 의원들에게 모두 예의를 갖출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전투’ 주문과 사실상 ‘협치’를 포기한 정치 상황을 미뤄봤을 때 이 같은 충돌은 지속될 전망이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선 이들 사이 대결 각엔 갈수록 날이 설 거란 분석도 제기된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7일 통화에서 “총선을 앞두고 이념 전쟁을 통해 지지층을 있는 힘껏 끌어 모으려는 게 윤석열 대통령의 지침이기 때문에, 내각은 그리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다만 내각을 총괄하는 국무총리만큼은 완급을 좀 조절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국무위원들이 ‘전사’가 돼 앞장서 대야공세를 펼치고 있는 건 ‘여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란 지적도 제기한다. 국정을 아우르고 국민을 ‘통합’해야 할 대통령실과 내각이 앞장서서 여당 몫을 하는 현 상황이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6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지금 여당의 역할이 없다. 지금 여당은 저쪽에 물러가 있고 대통령실이 싸움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며 “이쪽(대통령실과 내각)은 여야를 아우르는 국정을 책임지는 사람들로서 그런 대답을 내놔야 되는데, (국회에) 나와 이념전사, 뉴라이트 전사가 돼서 싸움질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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