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에 없던 모던함은 K팝 진보성의 상징으로 평가
활발한 솔로 활동으로 아이돌 커리어의 모범 되기도

1990년대 중반 K팝 산업이 본격적으로 닻을 올린 이래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중요한 ‘순간’들이 몇 있었다. 그중에서도 보이그룹 샤이니의 등장은 적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한 결정적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결정적인 사건이란 단순히 대중적인 인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K팝을 듣는 사람들, 팬덤, 평단, 나아가 이 산업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에게 준 충격과 영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만큼 샤이니의 등장은 신선했고 충격적이었으며, 여러 면에서 감히 혁신이라고 부를 만했다. 그리고 15년, 샤이니를 통해 처음 제시된 K팝의 여러 음악적 문법과 상업적 전략, 산업적 비전은 이제 이 세계의 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 샤이니는 그들이 미리 내놓은 길을 후배들과 묵묵히 함께 걸어가는, 하지만 여전히 경쟁력 있는 아이돌로 남아있다.
ⓒ뉴시스

K팝의 새로운 패러디임을 열다

많은 사람이 비슷하게 느꼈겠지만 필자는 2008년 샤이니의 데뷔곡 《누난 너무 예뻐》를 처음 듣는 순간, K팝 아이돌 음악이 전과는 다른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일찍이 듣지 못했던 어떤 ‘모던함’이었다. 그리고 이 세련된 모던함은 곧 샤이니의 전매특허이자 K팝의 진보성을 상징하는 요소로 자리 잡았다. 커리어 초반을 장식한 샤이니의 히트곡들, 그러니까 《산소같은 너》나 《줄리엣》은 얼핏 들어도 당대에 들을 수 있었던 가장 현대적인 사운드와 작법을 담고 있었다. K팝은 단숨에 한 단계를 뛰어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샤이니는 초창기 스타일에 안주하지 않으며 혁신을 거듭했다. 《링딩동》 《루시퍼》 《Dream Girl》 등 일렉트로닉 성향이 강한 파격적인 댄스곡들을 잇달아 내놓기 시작했다. ‘청량’과 ‘관능’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다채로운 매력과 정교한 프로덕션은 대중적 인기는 물론 이들을 가장 ‘영향력 있는’ 그룹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평단에서 샤이니를 언급할 때 종종 ‘진보적’이라는 단어를 쓰곤 한다. 지금이야 K팝 신이 낳은 아이돌들이 전 세계 차트를 동시에 점령하고, 수많은 외국 뮤지션이 K팝 산업과 함께 일하기를 고대하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샤이니가 첫 전성기를 누리던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K팝의 이미지는 대중음악의 변방인 한국이 낳은 독특한 하위문화 그 이상을 돌파하지 못했다. 심지어 2012년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를 점령했을 때도 그 같은 이미지가 변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됐다. 샤이니는 그 시절 K팝에서 f(x) 등과 함께 ‘진보적’이라는 표현을 망설이지 않아도 될 몇 안 되는 실험적 그룹이었다. 하지만 대체 대중음악이 진보적이라는 평가는 어떤 근거에서 내릴 수 있을까. 그것은 우선 장르나 스타일의 발 빠름을 전제로 대중성에 대한 리스크를 각오한 채 과감한 음악적 시도와 파격을 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서 일차적으로 결정이 된다. 그들의 대표곡인 《셜록》과 《Everybody》가 주었던 충격은 아직 생생하다. ‘대중’음악이되 결코 대중적이라고만은 볼 수 없는 파격, 종잡을 수 없는 구성과 한두 개의 단어로 쉬이 정리되지 않는 장르의 복잡다단한 믹스앤매치. 어디까지나 음악이지만 사운드적인 미학을 뛰어넘는 비주얼적인 완성도와 퍼포먼스까지. 샤이니의 음악적 행보는 그야말로 평론가를 기대하게 만들고 긴장시키는 무엇이었으며, 그들이 인기 그룹을 넘어 ‘평론가의 아이돌’로 불리는 이유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중음악을 실험적이라고 말하는 것에 의아함을 느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봤자 회사가 만들어낸 기획이고, 지극히 상업적인 대중가요일 뿐이지 않냐고 불편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겠다. 일정 부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한번 바꿔 생각해 보자. 서구와 일본에도 K팝 아이돌과 유사한 오랜 ‘보이밴드’의 전통이 있다. 흔히 이들의 음악은 ‘버블검 팝(bubblegum pop)’이라는 장르로도 불리는데, 쉽고 달콤한 음악과 단순한 메시지(주로 사랑하는 소녀에 관한)로 대표되는 그야말로 가장 ‘쉬운’ 대중음악의 한 가지다. 이런 음악들과 샤이니의 음악들을 비교해 본다면 여기서 말하는 실험성이 무엇인지는 비교적 명확해진다. 샤이니의 음악에도 분명 대중성은 존재한다. 누구나 좋아하는 음악이라는 뜻이라기보다는 상업적인 성공을 위한 ‘의도’가 있는 음악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하지만 샤이니가 서구의 버블검 팝처럼 쉽고 친숙함을 상업적인 매력으로 삼는 그룹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2015년에 그들이 내놓은 앨범 ‘Odd’는 대중성의 첨단에 서있어야 할 K팝 아이돌 그룹의 음악이 동시에 얼마나 실험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도 여전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K팝에 남아있던 그 어떤 일말의 유치함과 저열함을 극복한 수준 높은 심플함이 담긴 《Odd Eye》와 《View》는 물론이요, 가요에서는 물론 동시대 팝에서도 흔하게 듣기는 어려운 진보적이며 파격적인 코드 진행과 멜로디가 담긴 《Romance》 등은 K팝 팬들에게 여전히 회자되는 걸작들이다.  

데뷔 15주년, 샤이니의 실험은 ‘현재진행형’

15년간 이어온 샤이니의 활동은 K팝 아이돌 산업의 모범이 됐다. 멤버 개개인의 솔로 활동 역시 그 중요한 일부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종현을 비롯해 태민, 키, 온유, 민호 등 샤이니의 멤버들은 모두 솔로 아티스트로서도 유의미한 족적을 남긴 바 있으며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중에서도 막내인 태민은 그룹 샤이니에서는 보여주지 않았던 관능적이고 복합적인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솔로 활동에 녹여내면서 그 자체로 샤이니에 버금가는 성과를 이끌어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괴도》를 시작으로 《Move》 《Advice》 등의 실험적인 곡을 내놓으며 태민은 어느덧 K팝의 가장 스타일리시하고 중요한 퍼포머 중 한 명이 됐다. 얼마 전 발매된 샤이니의 정규 8집 ‘HARD’를 들으며 묘한 기분을 느꼈다. 완전히 신곡만으로 이루어졌으나 흥미롭게도 마치 샤이니의 베스트 앨범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동시에 SM과 샤이니가 함께 만들어온 SM 스타일 K팝의 앤솔로지(선집)를 듣는 것 같은 착각을 주기도 했으며 가장 샤이니적이지만 동시에 K팝 보이밴드의 어제와 오늘이 함께 조명되는 듯한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가 K팝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 K팝적이라고 부르는 많은 요소가 이미 그들의 활동을 통해 구축됐기 때문이다. 단 한 가지가 바뀌었다. 그 시절 그들은 유일한 존재였지만 이제는 또 다른 샤이니를 표방하는 수많은 그룹이 있다는 것. 그 가운데서 샤이니가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새로움은 무엇일까. 아쉽게도 ‘HARD’는 그 해답을 명쾌하게 제시하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이 앨범이 현재 K팝 보이그룹이 들려줄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앨범임에는 의심 할 여지가 없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