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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뿐 아니라 미국·한국에서도 경외의 대상
역대 최초 ‘10승-50홈런’ 달성 가능…베이브 루스 지워버려

최초의 프로야구팀인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가 1869년 창단된 이후,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는 베이브 루스다. 1910년 메이저리그는 공에 코르크를 넣었고, 더 딱딱해진 공은 더 멀리 뻗어나갔다. 그러나 변화를 무시한 타자들은 짧게 치는 타격을 고수했다. 하지만 1914년 데뷔한 루스가 변화를 불러왔다. 삼진을 두려워하지 않고 크게 휘두른 루스는 1918년 투수로 20경기에 등판하면서 외야수로도 59경기에 출전했다. 투타 겸업 탓에 남들보다 적은 382타석에 들어서고도 11개의 홈런을 날려 홈런왕이 됐다. 당시 팀당 130경기에서 한 시즌 팀 홈런이 고작 4개만 나오기도 한 상황에서 루스의 두 자릿수 홈런 기록은 가히 혁명이었다. 그때서야 타자들은 루스를 따라 하기 시작했고, 홈런은 야구의 꽃이 됐다. 루스가 야구를 재창조했다는 말이 생긴 이유다. 1918년 루스는 투수로 13승을 올렸고 타자로 11개의 홈런을 쳤다. 이듬해에는 투수로 9승을 올리고 타자로 29개의 홈런을 쳤다. 투타 겸업에 대해 “오래 할 게 못 된다”고 한 루스는 1920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되고 나서는 투수를 포기한 채 장거리포 위주의 타자로만 나섰다. 그렇게 루스의 투타 겸업 2년은 짧지만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전설이 됐다.
3월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WBC B조 본선 1라운드 중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2회초 일본 선발투수 오타니가 더그아웃으로 향하며 윙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발투수 등판 전날과 다음 날에도 타자로 출전

2012년 일본 고교야구 신기록인 시속 160km를 던진 오타니 쇼헤이는 졸업과 동시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홋카이도에 연고를 두고 있는 닛폰햄 파이터스는 오타니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감독이었던 구리야마 히데키는 단장에게 “오타니가 투타를 다 잘하는데 어떤 걸 시킬까요”라고 물었고, 단장은 “일단 둘 다 시켜봅시다”라고 했다. 최고의 투수가 되고 싶었던 오타니가 투타 겸업을 하게 된 건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체중을 늘리기 위해 고교 시절 하루 13공기의 밥을 먹었던 오타니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신체조건과 운동신경에다 엄청난 노력을 더함으로써 투타 겸업을 성공시키고야 만다. 오타니는 2016년 10승과 22홈런을 기록하고 일본리그의 MVP가 됐다. 오타니의 스타성을 알아본 메이저리그는 30개 팀 중 무려 26개 팀이 오타니를 영입하기 위해 나섰고, 오타니는 서류 전형으로 7개 팀을 고른 다음, 최종 면접을 통해 LA 에인절스를 선택했다. 2018년 오타니는 22개의 홈런을 날리고 아메리칸리그 신인왕이 됐다. 하지만 절반의 성공이었다. 투수 오타니는 10경기밖에 등판하지 못했고,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토미존)을 받았다. 2019년을 타자로만 보낸 오타니는 2020년 다시 투타 겸업으로 돌아왔지만, 타율 0.190과 ERA(방어율) 37.80에 그치며 둘 다 바닥을 찍었다. 처음부터 투타 겸업을 반대했던 장훈을 필두로 엄청난 비난이 일본에서 쏟아졌다.  하지만 오타니의 노력은 결국 통하고 만다. 2021년 오타니는 아메리칸리그 3위에 해당하는 46개의 홈런을 날렸고 투수로도 9승을 따냈다. 100안타 100타점 100득점 100이닝 100탈삼진은 베이브 루스도 하지 못한 최초였다. 오타니는 만장일치로 아메리칸리그 MVP가 됐고, 17년 만에 커미셔너 특별상을 받은 선수가 됐다. 그러나 놀라움은 그때부터였다.  지난해 오타니는 홈런은 34개로 줄었지만 15승을 따냄으로써 루스도 하지 못한 10승-30홈런을 달성했고, 규정 타석과 규정 이닝을 모두 달성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투수로 7이닝을 1실점으로 막고 역전 결승 투런을 날려 팀을 14연패에서 구해 내기도 했으며, 타자로 8타점을 올린 다음 날 투수로 13개의 삼진을 잡아낸 적도 있었다. 투수로서의 활약이 2021년보다 더 뛰어났던 오타니는 최고의 투수에게 주는 사이영상 투표에서 4위에 올랐다.  다른 선수들이 오타니를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투타 겸업을 하는 오타니가 하루도 쉬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선발투수는 한 번 등판하면 다음 등판까지 최소 4일을 쉰다. 반면 오타니는 등판 전날과 다음 날에도 타자로 출전하며, 투수로 등판하는 날에도 타석에 나선다. 지난해 오타니는 162경기 중 153경기에 타자 또는 투수 겸 타자로 출전했고, 나머지 9경기 중 4경기는 대타로 나섰다(5경기 휴식). 선발투수들이 100개가 넘는 공을 던진 다음 날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것과 달리, 오타니는 다음 날에도 타자로 나서 대형 홈런을 때려낸다. 야구선수들, 심지어 타 종목 선수들조차 오타니를 ‘상상 속의 동물’인 유니콘으로 부르는 이유다.
LA 에인절스의 선발투수로 맹활약하며 투타 겸업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오타니 ⓒAFP 연합
지명타자로 맹활약하며 투타 겸업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오타니 © AFP 연합

WBC 출전 자원해 일본 우승 이끌어 

2년 동안의 투타 겸업으로 피로감이 극에 달했을 오타니는 또 한 번의 놀라운 결정을 한다. 자신의 투타 겸업에 큰 도움을 준 구리야마 전 닛폰햄 감독이 일본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자, WBC 출전을 결정한 것이다. 오타니가 나온다고 하자 너도나도 대표팀 참가를 희망했고, 일본은 최고의 대표팀을 만들었다. 3월에 열리는 대회 참가에 몸을 사리는 메이저리그 스타 선수들에게 경종을 울린 선택이었다. WBC는 오타니가 일본을 넘어 야구의 아이콘이 된 무대였다. 대다수의 메이저리그 에이스가  페이스를 일찍 끌어올렸다간 시즌을 망치게 된다며 출전을 고사한 반면, WBC에서 전력을 다한 오타니는 리그에서도 던져본 적이 없는 시속 164km를 던졌고, 미국과의 결승전에는 마무리투수로 나서 현역 최고의 타자이자 미국팀 주장인 마이크 트라웃을 삼진으로 잡아내며 대회 MVP가 됐다. 결승전에 앞서 “오늘 하루만 메이저리그 선수들에 대한 동경을 멈추고 승리만 생각하자”고 했던 오타니가 일본의 우승을 이끄는 순간, 야구에서는 국적의 벽이 무너졌다.  오타니로 시작해 오타니로 끝난 WBC 이후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다음과 같다. 6일마다 등판하는 것으로 투수 등판을 더 늘린 오타니는 WBC 피로감에 시달리기는커녕 지난해 애런 저지보다도 더 빠른 홈런 페이스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저지는 62개의 홈런을 날려 비(非)약물 선수의 최고 기록인 1961년 로저 매리스의 61개를 경신했는데, 현재 오타니는 최대 63개에도 도전할 수 있는 페이스다. 데릭 지터 이후 스타 부재에 시달리고 있던 메이저리그는 새로운 스타를 동양에서 찾아냈다. 그것도 그냥 스타가 아닌 지난 100년간 없었던, 앞으로 100년 동안에도 없을지 모르는 존재다. 베이브 루스 이후 아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일을, 오타니가 루스보다도 더 잘 해내자 많은 어린 선수가 꿈의 한계를 지워버렸다. 베이브 루스가 홈런을 위해 처음으로 방망이를 길게 잡았던 것처럼, 야구의 르네상스가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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