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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원심력에 몸 푸는 민주당 잠룡들…친명계는 “그런 얘기 할 때 아냐” 불쾌감

“요즘 비명(非이재명)계 인사들이 아주 바쁜 것 같다. 이재명 대표 체제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판단하에 다음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웅크리고 있던 잠룡들도 하나둘 기지개를 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최근 분위기에 대한 한 민주당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이어 2021년 전당대회에서의 돈봉투 살포 의혹, 엎친 데 덮쳐 김남국 의원 60억 코인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당내 원심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고, 당 지도부를 향한 비명계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방점은 때를 기다리던 잠룡들이 몸을 풀고 있다는 데 있다. 정치에서 대부분의 혼란은 같은 조직 내 원심력에 이어 또 다른 구심력이 작동할 때 시작된다. 사실 비명계가 특정 인사들을 찾아 역할을 요청하는 등 구심점을 찾아 헤맨다는 이야기가 정치권에 떠돈 지는 오래됐다. 이제 당사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건 그 혼란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민주당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권력의 이동 혹은 기존 권력의 강화일까. 아니면 쪼개짐일까.

노무현재단 이사장인 정세균 전 총리가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 추도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친문계가 정세균에게 비대위원장직 요청”

최근 당내에서 정세균 전 총리의 존재감이 부쩍 높아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내 심리적 갈등이 오래 지속되는 가운데 크게 적이 없는 정 전 총리가 통합형 리더십에 적합하다는 시각에서다. 세력 역시 친노(親노무현)·친문(문재인) 등과 두루 가까워 현재로선 당내에서 가장 두터운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 두세 달 전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요직을 맡았던 한 친문계 인사가 정 전 총리의 측근 의원을 찾아 ‘이재명 대표가 직에서 내려오면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주셔야 한다’고 요청했다는 다소 구체적인 소문도 들렸다. 익명을 원한 한 친문계 인사는 시사저널에 “누군가 개인적인 견해로 얘길 했을 순 있지만, 우리가 계파적으로 움직이는 건 없다”고 부인했으나, 유사한 이야기들이 다수의 민주당 인사를 통해 반복해서 들렸다. 심지어 이 대표 측에서도 얼마 전 정 전 총리에게 역할을 요청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소문의 진위를 떠나 민주당 내 정 전 총리에 대한 수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해석이 나온다.    

6선 의원에 당대표, 장관, 국회의장, 국무총리까지 ‘대통령 빼곤 다 해본 정치인’이라는 조건, 흔들리고 있는 민주당의 텃밭 호남을 지지 기반으로 두고 있다는 점도 주요하다. 특히 민주당에서 정 전 총리를 부각시키고 있는 인사들은 그의 적통성에 주목한다. 그는 대표적인 친노 인사로 현재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데 그 상징성이 크다는 것이다.

정 전 총리는 노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를 맞은 5월23일 오전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 상황에 대해 묻는 질문에 “노무현 대통령 서거 14주기를 맞아서 많은 분들이 (추도식에) 오실 텐데 여야 정치인들이 자신의 권한과 책임을 좀 돌아봤으면 좋겠다. 노무현 정치를 기억하면서 국민을 위한 정치가 진정 무엇인지 좀 꼭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면서 “말로는 당리당략이 아니고 국민과 국가를 위한다고 말씀들을 하면서 실제로는 개인을 생각하거나 당리당략에 머무르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미국과 영국 명문대에서 강연을 하기도 했던 정 전 총리는 최근 공식 석상에 더욱 자주 모습을 드러내면서 본격적으로 몸을 푸는 모습이다. 최근 그는 ‘전북특별자치도 국민 지원위원회 및 이차전지 특별위원회’ 명예위원장을 맡았고, 5월18일엔 고양시 호남향우회연합회가 주최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강연회에 강연자로 나서기도 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선 추도사를 통해 “굽이쳐 흐를지언정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 강물처럼 지금 여기서 우리 모두 새로운 노무현이 되어 사람 사는 세상, 원칙과 상식이 승리하는 역사를 함께 만들어가자”고 호소하기도 했다.

정 전 총리 주변 관계자에 의하면 실제 그는 최근 적지 않은 시간을 서울 종로구의 노무현재단 사무실에서 가깝게 지내는 현역 의원, 지지자, 정부 관계자 등과 만난다고 한다. 그가 분주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논의를 하면서 다음 행보를 고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측근 인사는 시사저널에 “현재로선 정 전 총리님 본인이 어떤 역할을 자임하거나 나설 생각은 없으신 것 같다”면서도 “현실정치를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당이라고 하는 정당에 몸을 담았고, 역할을 했던 정치 대선배로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본다”고 개인 생각을 밝혔다.

장인상으로 잠시 귀국했던 이낙연 전 대표가 4월18일 다시 출국하며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이낙연, 기자간담회 열고 “할 수 있는 일 할 것”

당내에서 이재명 대표의 최대 정적으로 꼽히는 이낙연 전 대표의 귀국 일정은 민주당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2021년 20대 대선후보 민주당 경선에서 이 대표에게 패한 후 이듬해 6월 미국으로 떠나 조지워싱턴대 방문연구원으로 지내던 이 전 대표는 1년 만인 오는 6월 하순께 완전히 귀국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 4월 장인상을 당해 잠시 귀국하기도 했다.

호남 기반으로 5선 의원에 전남지사, 국무총리, 당대표 등을 지내며 당의 대권주자로 꾸준히 평가됐던 이 전 대표는 지난 대선 경선에선 이 대표에게 패했지만, 결과론적으론 미국 잠행 시간을 통해 기회를 마련했다는 평이 나온다. 그는 미국에서도 꾸준히 강연 등을 통해 국내의 외교적 현안 등에 대해 메시지를 내며 존재감을 알렸고, 귀국을 앞두고 저서 《대한민국 생존전략-이낙연의 구상》을 출간했다.

이 전 대표는 이례적으로 미국에서 출판기념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현지시간으로 5월22일 기념회 직후 진행된 특파원 간담회에서 그는 “대한민국이 국가로서 통일된 목표를 잃고 있는 것 같다. 정치는 길을 잃고 국민들은 마음 둘 곳을 잃은 상태”라며 “기존 주요 정당이 과감한 혁신을 하고 알을 깨야만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는 귀국 후 구체적인 역할을 묻는 질문에 “정치가 길을 찾고 국민이 어딘가 마음 둘 곳을 갖게 되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자세한 설명은 아꼈다.

정치권에선 그가 귀국 후 적극적으로 정치 행보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귀국 전 국내 정치권을 향한 메시지를 담은 책을 내고,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것을 두고 철저히 귀국 후 행보를 염두에 둔 전략적 판단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고문을 맡고 있는 박지원 전 국정원장도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인터뷰에서 “이 전 대표가 지금 돌아오면 뭐를 하겠나, 배운 것이 정치인데”라며 “정치에 복귀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확신했다. 이 전 대표 역시 당내 친낙(親이낙연)계 의원들과 최근 들어 더 자주 연락하며 소통 빈도를 높이고 있다는 전언도 들렸다.

두 사람과 함께 ‘포스트 이재명’으로 항상 거론되는 또 다른 인사로 김부겸 전 총리가 있다. 그는 민주당에서 손꼽히는 합리적 인사란 평을 받을 만큼 계파색이 옅고 통합적이면서 개혁적 행보로 무게감을 더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마지막 총리 임기를 끝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한 후 정치 행보에 나서지 않고 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14주기 추도식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 전 총리의 한 측근 인사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갈등과 분열의 정치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김 전 총리는 현실정치 참여를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2021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오른쪽), 정세균 전 총리(가운데), 이낙연 전 대표 (왼쪽)가 당시 경선 후보 공명선거 실천 서약식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박지원·정대철 등 원로들 역할론도

당이 최대 위기에 빠졌고, 자칫하면 언제든 권력투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원로급 정치인들이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주장도 당내 일각에선 제기된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 문희상 전 국회의장, 정대철 헌정회장,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 등의 이름이 거론된다.

친명(親이재명)계에선 ‘포스트 이재명’이 거론되는 것 자체를 상당히 불쾌해하는 모습이다. 익명을 요구한 친명계 의원은 “지금은 하나로 뜻과 마음을 모아 수습해 나가야 할 때지 권력에 대한 이야길 할 때가 아니다. 그런 얘길 지피는 쪽은 당을 와해시키려는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밝혔다.

한편 민주당이 6월 중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는 당 혁신 기구와 관련해 “이재명 지도부가 혁신위에 전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비명계로부터 나와 주목된다. 해당 주장이 현실화되면 혁신위가 비대위에 준하는 권한을 갖고, 혁신위원장이 비대위원장 역할을 하게 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을 내놓은 윤건영 의원은 구체적으로 비(非)현역, 외부 인사가 혁신 기구의 수장을 맡아야 한다는 방안을 꺼내 놓기도 했다.  

 

■여권에서도 거론되는 정세균 카드?…정계개편설도 ‘솔솔’

최근 거리 곳곳에 내걸린 국민의힘 정치 현수막에는 ‘총체적 난국 민주당’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돈봉투 의혹과 김남국 코인 사태 등으로 위기에 빠진 민주당의 당내 원심력이 커지자 여권 주변에서는 정계개편을 염두에 둔 듯한 여러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그중 하나로 ‘정세균 카드’를 여권에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한 유력 인사가 정세균 전 총리를 만나 ‘함께하자’고 제안했다는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도 나온다. 기존 여야 판을 뒤엎는 정계개편을 염두에 둔 이야기가 오갔다는 것이다.

정 전 총리 측과 해당 여권 인사 측 모두 이와 관련된 시사저널 질의에 “사실무근”이라고 답했다. 다만 한 민주당 관계자는 “만약 그런 구상이 실제로 있었다면 지금의 여야 지도부 모두에게 위협적일 수 있는 일”이라며 “분명한 건 지금과 같이 당내 원심력이 커지면 그러한 얘기들이 계속 나올 수밖에 없고, 실제 정치 지형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른다는 점”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국제신문도 5월25일 윤석열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최근 PK(부산·울산·경남) 지역의 민주당 재선 의원을 국민의힘에 영입하려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해당 의원은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앞으로도 원심력이 커진 민주당의 빈틈을 여권과 제3지대 등 다른 진영에서 계속 파고들 수 있다는 당내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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