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내 성범죄자 거주지와 초등학교 간 거리 전수 분석
426명 중 186명, 초교 반경 300m 내 거주…초등생 성폭력범도 포함
창밖에 하굣길 보이고 놀이터와도 인접…학원 건물에 거주하기도
“거주지 제한하고 격리 필요” “전국에 학교만 수만 곳, ‘안전한 공존’ 고민해야”
1.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5m 남짓의 좁은 도로. ‘어린이보호구역’이라고 크게 적힌 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A씨가 거주하는 빌라와 서울 B초등학교가 나란히 마주 보고 있다. A씨의 집 창밖으로 학교 운동장 전경과 아이들의 등·하굣길이 그대로 내다보인다. 50대 남성 A씨는 2014년, 13세 미만 여자아이를 대상으로 3회 이상 성폭행과 성추행을 저질러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2년 전 출소한 그는 곧장 이곳에 터를 잡았다. 전자발찌도 착용하지 않았다. B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반경 1km, 걸어서 10분 이내 거리에 거주하고 있는 성범죄자는 A씨를 포함해 무려 7명에 이른다.
2. 떠오르는 ‘학세권’(교육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으로 꼽히는 서울의 또 다른 지역. 여성 청소년에게 수차례 성폭력을 가해 5년을 복역한 후 최근 출소한 40대 남성 C씨가 이 지역의 한 오피스텔을 거주지로 정했다. 반경 500m 이내에 무려 9개 어린이집과 6개 초·중·고등학교가 위치해 있다. 가장 가까운 어린이집과는 불과 100m 떨어져 있다. 교육시설이 즐비한 만큼 자연히 그 주변으로 학원가도 넓게 형성돼 있다. C씨가 거주하는 오피스텔 건물 안에도 영어 학원과 피아노 학원, 태권도 도장 등이 들어서 있어 늦은 저녁까지 학생들의 출입이 활발하다. 이 일대 역시 C씨를 제외하고 출소 성범죄자 4명이 더 살고 있다.
‘성범죄자 알림e’에 공개된 범죄자만 총 3514명
교도소에서 출소한 성범죄자들의 거주지 논쟁이 우리 사회에 전쟁처럼 번지고 있다. 2020년 12월 조두순의 출소로 시작된 이 전쟁은 지난해 10월 연쇄 성범죄자 박병화가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조용했던 동네에 폭탄처럼 투하된 이들로 인해 일대는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됐다. 조두순이 이사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집주인은 쇠창살로 현관문을 막아버렸고, 인근 주민들의 생필품 목록에 침입 경보기와 호신용품이 추가됐다. 최근 박병화의 정착으로 가장 들끓고 있는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주민들은 두 달 동안 매일 그의 집 앞에서 퇴거 집회를 열기도 했다. 지금도 인근 골목마다 초소를 세워 경찰과 화성시 직원들이 24시간 지키고 서있다. 박병화의 외출을 막기 위해 주민들이 그의 집 문 앞에 밥과 김치를 놓아주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뉴스엔 조두순·박병화의 이름과 그들이 거주하는 지역만 주로 조명된다. 하지만 이미 전국 곳곳엔 수많은 조두순·박병화가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여성가족부 ‘성범죄자 알림e’에 신상과 거주지가 공개된 성범죄자만 1월5일 기준 전국 총 3514명에 이른다. 이 중 약 40%에 달하는 1378명(서울 426명·경기 722명·인천 230명)이 밀집도가 높은 수도권에 머무르고 있다. 올 한 해만 해도 성범죄자 66명이 추가로 출소를 앞두고 있어 언제, 어디에서 또 주민들과 전쟁이 발발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성범죄자들과의 ‘공존’에 주민들이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성범죄자의 거주지 인근에 어린이집부터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등 교육시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실제 봉담읍을 비롯해 성범죄자 퇴거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주민 가운데 미성년 자녀를 둔 학부모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엔 출소 성범죄자들의 거주지를 제한할 법적 근거가 전무하다. 따라서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저질러 수감됐던 성범죄자가 출소 후 교육시설 인근에 머물러도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다.성범죄자 82%가 초등학교 반경 500m 이내 거주
실제 출소한 성범죄자들은 아이들의 생활 반경과 얼마나 가까이 머무르고 있을까. 시사저널은 전국에서 면적당 성범죄자 밀집도가 가장 높은 서울시 내 성범죄자 426명의 거주지와 인근 초등학교 간 거리를 전수 분석했다. 그 결과 약 44%에 달하는 186명이 초등학교에서 반경 300m, 즉 거리상 ‘어린이보호구역’ 내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교와 걸어서 5~6분 거리인 반경 500m 이내로 범위를 넓히면 무려 82%(349명)에 달한다.
초등학교 등·하굣길과 사실상 맞붙어 살고 있는 100m 이내 거주자들로 좁혀봐도 35명에 이른다. 이들 중에는 실제 미성년자에게 수차례 가해를 저질러 복역한 후 전자발찌도 차지 않은 채 학교 인근에 머무르고 있는 경우도 상당하다. 강간 등의 죄로 징역 4년형을 받았던 D씨가 출소 후 정착한 빌라는 벽화가 가득 그려진 E초등학교와 병설 유치원 담벼락을 그대로 맞대고 있다. 빌라를 둘러싼 인근 도로가 전부 어린이보호구역일 뿐 아니라, 빌라 바로 앞 작은 도로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학생안전지역’으로도 지정돼 있다.
성범죄자 재범률 26.8%…조두순 때 논의 지체가 박병화 사태 낳아
인구 밀집도가 높은 서울 안에서 성범죄자의 거주지와 교육시설 간 일정 거리 이상을 유지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울시 내 426명의 성범죄자 가운데 95% 이상은 거주지 반경 1km 이내에 2개 이상의 학교를 포함하고 있다. 거주지 1km 이내에 10개 초·중·고등학교가 위치해 있는 경우도 있다.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여성가족부를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내 미성년자 교육시설 중 83%가 성범죄자 거주지로부터 반경 1km 이내에 위치해 있다. 이렇다 보니 출소한 성범죄자가 시내 어디로 거주지를 정하든 주민들과 충돌을 빚는 일은 ‘정해진 미래’나 다름없다.
정해진 형을 모두 마치고 출소한 이들에 대해 이토록 사회가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이 언제든 재범을 저지를 수 있다는 걱정이 크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시 말해,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교화가 충분히 이뤄졌다는 믿음이 극히 부족한 탓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들도 존재한다. 실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13세 미만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의 재범률은 26.8%이며 13~18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재범률은 34.1%에 달한다.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 중 절반 이상이 가해자의 거주지 인접 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난 조사 결과도 주민들의 불안을 더욱 증폭시키는 대목이다. 이러한 불안은 성범죄자들의 거주지를 제한해야 한다는 강한 요구로 이어졌다. 2년여 전 조두순이 출소한 후 경기도 안산으로 돌아와 지역 일대가 몸살을 앓았을 당시, 이러한 내용들을 담은 ‘조두순 방지법’이 쏟아져 나왔다. 그때도 ‘조두순이 수감돼 있는 지난 12년 동안 무엇을 하다가 이제 와서 대책 마련에 나서느냐’며 늑장 대응에 대한 지적과 반성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후에도 논의는 어떤 방향으로든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채 또다시 지체됐다. 결국 조두순은 여전히 지역 주민들과 불안한 공존을 하고 있고 오늘날 박병화 사태로까지 진통은 옮겨 붙게 되었다.‘제시카법’ 도입 목소리 높지만 기본권 침해 등 반론도
박병화로 인해 불안에 휩싸인 지역 주민들이 행동에 나서자 다시금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의에 시동이 걸리고 있다. 이들의 학생 밀집 지역 거주를 제한하는 내용 등이 담긴 법안이 ‘박병화 방지법’이란 이름표를 달고 새롭게 발의되고 있다. 여기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신년사에서 “전과가 있는 아동 성범죄자가 40대에 출소하는 것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며 “미국의 제시카법을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할 때”라고 언급해 더욱 불을 댕겼다. 미국에서 목숨을 잃은 아동 성폭행 피해자의 이름을 딴 ‘제시카법’은 12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 출소 뒤 학교 등 아동이 많은 곳으로부터 특정 거리 내에 살 수 없도록 제한을 두고 있다. 하지만 성범죄자의 거주지 제한 논의에는 반사적으로 여러 질문과 반론이 따라붙는다. 성범죄자들에 대한 기본권 침해 논란이 대표적이다. 헌법상 기본권 중 하나인 이들의 이동·거주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거주지 제한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이나 인근 지역 주민들은 거주지를 제한하는 것이 공공의 이익과 헌법 가치에 더 부합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주거지 제한 법안에 대해 위헌 소지가 크다고 보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법의 효과성, 즉 이들의 주거지를 제한하면 정말 주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느냐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된다. 일단 정치권에서 벤치마킹하고 있는 미국의 제시카법은 땅 덩어리가 좁은 우리나라, 특히 수도권에 적용하는 데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현재 법안의 대부분은 미성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에게만 거주지 제한을 두는 것으로 조건을 달고 있다. 이 경우 당장 20대 여성 10명을 성폭행한 박병화부터 제외되는 빈틈이 노출된다.전문가들 “‘통제’만으론 재범 근원적으로 못 막아”
온전한 격리와 공존 그 중간 지점으로서 성범죄자에 대한 ‘보호수용 제도’도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일정한 기준에 따라 재범 위험이 높다고 판단된 성범죄자의 경우 출소 이후 일정 기간 별도의 수용시설에 머물도록 하는 방안으로,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도 이를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박병화 거주지 인근 주민들도 이 방안이 지역들 간 이른바 ‘폭탄 돌리기’를 막아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제도의 궁극적 목적인 성범죄자들의 재범 방지 효과가 미미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범죄 전문인 이은의 변호사는 “지금은 서울과 부산도 2시간이면 갈 수 있다. 즉 범죄 욕구가 있으면 당장 거주지 근처에 아동·청소년이 없어도 충분히 아동 밀집 지역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며 물리적 거리두기보다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보호수용 역시 성범죄자들의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할 뿐 아니라 동일 범죄에 대한 ‘이중 처벌’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보호수용이 또 다른 처벌로 인식되지 않도록 치료와 지원의 취지를 더욱 살리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열린 한 토론회에서 “성범죄자들의 행동을 ‘통제’만 하려는 정책으로는 이들의 재범을 근원적으로 막을 수 없다”며 “교도소와는 완전히 다른, 사회적 처우로서의 치료 대책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지원을 범죄자에 대한 과도한 특혜가 아닌, 사회 전체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비용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성범죄자 거주지 전수분석’ 특집 연관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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