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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까지 고인플레이션과 경기 후퇴 이어질 전망
역동성 부족하고 변화에 대한 대응 느리다는 약점 드러나

40년 만에 몰아닥친 인플레이션은 낮은 물가와 저금리로 상징되는 기존 경제체제의 기본 틀을 붕괴시키면서 세계경제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당초 공급망 문제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평가되기도 했지만 현재 인플레이션은 임금 인상이 물가를 상승시키는 구조적인 상태로 전환되면서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파격적인 금리 인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미국을 제외한 대다수 국가들은 금리 인상에 따른 경제적 부담과 위축을 우려해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금리 격차가 벌어지면서 달러를 제외한 대부분의 통화는 약세로 전환했다. 이는 다시 달러로 표시되는 각종 수입물품과 에너지, 원자재 등의 가격을 끌어올려 물가 부담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원자재 대란으로 유럽 경제가 전례 없는 위기에 빠졌다. 사진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유럽중앙은행에 있는 유로화 조형물ⓒXINHUA

러시아의 저렴한 에너지에 의존하다 ‘타격’

인플레이션과 더불어 6개월 동안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 경제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상대적으로 값싼 러시아의 에너지와 원자재를 통해 경쟁력을 유지하던 유럽의 산업은 러시아의 천연가스 통제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몇 배로 상승한 천연가스 가격은 대폭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유럽의 가정과 기업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 역동적이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경제구조와 탄탄한 복지 시스템, 환경 및 기후변화 등 인류 공통의 과제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통해 미국과는 다른 모델을 추구하던 유럽이 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시티그룹은 영국의 인플레이션이 2023년 1월에는 18.6%를 기록할 것이며, 이는 거의 반세기 만에 가장 높은 최고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통계청의 추정에 따르면 이러한 수치는 17.8%를 기록했던 1979년 2차 오일 쇼크 이후 인플레이션의 최고점보다 높을 것이다. 이렇게 높은 인플레이션의 원인에는 난방 및 전기요금의 급등이 자리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에너지 및 도매시장의 가격 급변동을 가계가 모두 부담하지 않도록 별도의 소매 에너지 가격 상한선을 설정하고 있는데, 2021년부터 계속 상승해 2022년 현재 상한선은 연간 1971파운드(약 311만원)에 이르고 있다. 내년 1월에는 4567파운드(약 720만원)를 거쳐 4월에는 5816파운드(약 920만원)로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 영국과 유럽의 천연가스 도매가격은 이미 정상 수준의 10배 가까이에 이르면서 가계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대폭적으로 증가하게 됐다.

민간 경제부문 활동의 척도인 종합구매관리자지수 역시 7월 52.1에서 8월에는 50.9로 낮아졌다. 이는 2021년 2월 코로나19로 인한 봉쇄조치 발령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특히 제조업은 2020년 5월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으로 전환했다. 수요 감소, 상품 및 원자재 배송 지연, 인력 부족 등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영국 중앙은행은 경기 침체가 장기화돼 2025년 3분기까지 계속되면서 2019년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에너지 가격 급등, 공급망 붕괴, 노동자 부족 및 가뭄의 영향 등은 유럽의 나머지 지역에도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경제연구기관들은 단기적으로는 에너지 부족과 지속적인 물가 상승으로 인해 2022~23년 겨울 유럽의 경기 침체가 예상된다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2023~24년 겨울 역시 상황이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에 따라 유럽 지역은 적어도 2024년까지 높은 인플레이션과 경기 후퇴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큰 경제력을 보유한 독일 역시 ‘폭풍의 중심’에 들어 있다.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보여온 독일은 현재 심각한 에너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최근 줄어든 강수량으로 인해 산업물류의 핵심인 라인강 내륙수운이 큰 타격을 받으면서 공장 가동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일의 경제 성장은 2분기에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향후 몇 달 안에 마이너스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은 그동안 러시아의 저렴한 에너지와 원자재를 활용해 인건비가 낮은 동유럽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이를 중국에 판매해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해 왔는데 이 모델이 붕괴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독일은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지만 이러한 전환은 향후 몇 년 동안 독일 제조업에 큰 어려움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美 경고 있었지만 무시

에너지 위기에 대응해 독일 정부는 10월부터 2024년 4월까지 가계에 추가적인 가스 부담금을 부과할 것임을 결정했다. 아울러 물가 상승으로 인한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300유로(약 40만원)의 일시금 지원과 복지 대상자에 대한 추가 지원, 휘발유 및 경유세 인하 등 300억 유로(약 40조원) 규모의 에너지 지원 패키지를 마련했지만 춥고 어두운 겨울을 보내야 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프랑스는 전력 생산의 70% 이상을 원자력이 차지하는 구조로 다른 국가에 비해 에너지 위기가 덜할 것으로 여겨졌지만 노후 원자로의 결함과 가뭄에 따른 냉각수 부족 등으로 원자력발전소 가동 중단이 이어지면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프랑스 경제는 2분기에 0.5% 성장했지만 내수 소비가 현저하게 약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경제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정부는 휘발유에 대한 세금 감면을 포함해 200억 유로(약 26조원) 상당의 긴급 지원 패키지를 마련했으며, 에너지 거대 기업인 EDF의 국영화를 통해 전기 가격 인상을 4%로 제한하는 등 긴급 대응에 나서고 있으나 효과는 제한적이다.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경제적 위기는 기본적으로 예상치 못한 에너지 가격의 급등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석탄과 석유 비중을 낮추고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를 높이는 데 대해 미국이 안보적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속적으로 경고했음을 고려하면 현재의 어려움에 대한 원인을 모두 외부적 요인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최근 유럽의 위기는 어쩌면 역동성이 부족하고 변화에 대한 대응이 느리다는 내부적인 약점이 에너지 가격 급등이라는 외부 요인으로 인해 노출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럽 경제가 이번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다면 유럽은 급격히 쇠퇴할 수 있으며, 유럽 주요 국가에서 내부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정치적 불안을 극대화시키면서 또 다른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위기는 과거 유럽 재정위기 등과 다른 국면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유럽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본격적인 변화와 혁신에 나설 것인지, 아니면 계속 분열과 위축으로 이어질 것인지를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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