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2.75는 코로나19 팬데믹의 다크호스…예측과 달리 “스스로 소멸할 것” 전망도
8월초 현재 국내 코로나19 우세종은 BA.5라는 변이 바이러스다. 감염자 10명 중 6명 이상이 이 변이에 감염된다. 그러나 국내외 전문가들이 예의주시하는 변이 바이러스는 BA.5가 아니라 BA.2.75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종족인 ‘켄타우로스’라는 별명까지 붙여가며 이 변이에 주목하는 이유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7월21일 BA.2.75를 코로나19 팬데믹의 다크호스라고 표현했다.
BA.2.75는 이전 변이들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무엇보다 BA.2.75의 스파이크(돌기) 변이는 36개로, BA.2(일명 스텔스 오미크론)보다 8개 많다. 지금까지의 변이 중 가장 많은 숫자다. 스파이크는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들어와 세포와 결합하는 부위다. 스파이크 변이가 많다는 것은 우리 몸속의 중화항체가 바이러스 침입을 막기 어렵기 때문에 재감염 위험이 커진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백신이나 감염으로 획득한 면역을 피하는 능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7월7일 BA.2.75를 ‘우려 변이’로 지정한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PCR검사 양성 검체만 변이 분석 대상
BA.2.75에 대한 우려가 커진 또 다른 이유는 전파력이다. 미국 아칸소주립대의 한 연구자는 최근 3개월간 인도에서 BA.2.75의 확산 속도가 BA.5보다 3~9배 빠르다는 의견을 내놨다. 실제로 지난 5월 인도에서 처음 발견된 BA.2.75는 미국·영국·일본 등 12개국에서 빠르게 확산하는 중이다. 그러나 BA.5가 홍역 수준의 전파력을 보이는데, 이보다 3배 이상 강한 전파력이 나올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론상으로 BA.2.75는 전파력과 면역 회피력이 기존 변이보다 강하다. 이 변이는 인도에서 기존에 유행하던 BA.2를 몰아내고 우세종이 됐다. 그런데 미국·영국·한국의 실제 상황을 보면 양상이 조금 다르다. BA.5가 득세하고 있는 이들 국가에서는 BA.2.75가 BA.5를 밀어내지 못하는 형국이다. 이론과 달리 현실에서는 BA.2.75가 소멸할 가능성도 있다. 좀 더 지켜봐야 정확한 예측이 나올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내 BA.2.75 감염자는 최근 약 1개월 동안 14명뿐이다. 이들 중 11명은 인도·베트남·네팔에서 감염된 후 국내로 유입된 사례다. 그러나 최근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고 서로 상관관계도 없는 사람이 감염된 사례가 있는 만큼 BA.2.75가 지역사회에 이미 퍼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확인된 감염자가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변이 분석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방역 당국은 PCR검사에서 양성으로 나온 검체 중 무작위로 추출한 일부를 변이 분석에 사용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확진자의 10% 수준으로 표본을 추출해 변이 분석을 진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10% 비율로 하려면 너무 많은 검체를 확인해야 해 인력과 비용 측면의 한계가 있다. 변이 분석에 확진자 대비 1% 넘는 검체를 확보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분석을 적게 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변이 분석에 사용하는 검체의 한계도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7월31일 0시 기준 코로나19 확진자 7만3589명 가운데 60세 이상은 약 20%로 집계됐다. 이들 중 일부 검체를 변이 분석에 사용한다. 즉 약 80%를 차지하는 대다수는 변이 분석 대상이 아니다. 김우주 교수는 “확진자의 1% 정도만 변이를 분석한다. 게다가 이 분석 대상은 60세 이상과 해외 유입 환자다. 이렇게 편향적인 값은 지역사회에 퍼진 변이 상황을 대표한다고 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중증화율·치명률 판단할 근거 부족
그렇다면 BA.2.75의 중증화율과 치명률은 어떨까. 이에 대한 과학적 연구 결과는 아직 없다. 세계보건기구(WHO) 관계자는 최근 “BA.2.75의 심각성을 평가할 충분한 표본이 아직 없다”고 밝혔다. 데이터가 없다고 해서 BA.2.75가 기존 변이보다 덜 위협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중증화율과 치명률이 다른 변이보다 높은 것으로 확인될 경우, 코로나19 팬데믹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다.
또 중증화율과 치명률이 낮더라도 확진자 수가 급증하면 피해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7월3일 6253명이던 하루 확진자는 약 1개월 만인 8월2일 11만9922명으로 급증했다. 이에 따라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도 증가하는 추세다. 8월3일 하루 위중증 환자는 310명으로 5월말 이후 약 2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입원환자 수도 7월2일 65명에서 8월3일 479명으로 7배 이상 증가했고, 사망자도 하루 20~30명씩 발생한다.
앞으로 확진자 수는 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는 최근 ‘수리모델링으로 분석한 코로나19 유행 예측’ 보고서를 통해 현재의 유행 상황이 악화하면 8월 중 하루 확진자 수가 30만 명에 육박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여름휴가철을 맞아 인구 이동이 늘어나면 확진자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발생 첫해인 2020년 여름과 이듬해인 2021년 여름 모두 휴가철이 지난 후 확진자 수가 증가했다. 올해 여름휴가철은 거리 두기까지 사라진 상황이어서 확진자 수 증가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우주 교수는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사람 4명 중 1명은 베트남으로 간다고 한다.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은 변이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그곳에 BA.2.75가 얼마나 퍼졌는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여름이 끝나면 해외에서 유입된 감염자로 국내 확진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따라서 BA.2.75 감염자가 아직 적은 것은 초기 현상일 수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검출률이 60%를 넘어 우세종이 된 BA.5도 초기 3개월은 1% 아래였다가 4개월째부터 치솟았다. BA.1이 유행하던 올해 초 BA.2가 유입돼 서로 상승작용이 일어났고, 결국 3월17일 62만 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BA.5와 BA.2.75가 경합하는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다.
또 BA.5와 BA.2.75가 시차를 두고 우세종이 되면 코로나19 유행이 연속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 방역 당국은 이렇다 할 방역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최근 “예방접종 확대와 치료제 처방 확대, 취약 시설 보호 등 고위험군 중심의 방역 대응을 강화해 중증과 사망 피해를 최소화하는 전략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치료제 사용 후 재확진되는 ‘리바운드’ 이슈
BA.2.75가 우려되는 또 다른 이유는 치료제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도쿄대 연구 결과, 원조 오미크론 변이인 BA.1에 효과가 좋은 항체 치료제 11개 중 5개가 BA.2.75에 아예 듣지 않았고, 나머지도 훨씬 많은 양을 써야 효과가 있었다. 스파이크 변이로 기존 치료제의 중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바이러스 증식 자체를 억제하는 치료제(라게브리오와 팍스로비드)의 BA.2.75 대응 효과는 연구 중이다. 방역 당국은 7월21일 치료제가 BA.2.75에도 효능이 있는지에 대해 실험 중이라고 밝혔다. 김우주 교수는 “BA.2.75는 많은 스파이크 변이가 있어 대다수 항체치료제가 효과를 보이지 않는다.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는 치료제의 효과는 연구 결과가 나와 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라게브리오와 팍스로비드의 리바운드(rebound·재발)가 이슈다. 팍스로비드를 5일 동안 복용한 사람이 무증상 상태에서 아이와 놀았는데 그 아이가 감염된 것이다. 약물 내성은 아닌 것 같은데 약물 농도가 낮거나 감염자의 면역이 약한 탓인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팍스로비드 리바운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연병연구소(NIAID) 소장의 재감염을 계기로 의학계의 관심사가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7월21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후 경구용 치료제 팍스로비드를 복용했고, 이후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7월30일 재확진 판정을 받았다. 파우치 소장 역시 코로나19 감염 후 팍스로비드 치료를 받고 리바운드 증상을 보인 바 있다.
제약사 화이자에 따르면 1만3644명 가운데 5%가 30일 이내 다시 양성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리바운드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폴 오워터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교수는 현지 언론을 통해 “리바운드를 경험한 사람 중 많은 이가 오미크론 하위 변이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염성과 면역 회피력이 강한 오미크론 하위 변이는 더 오랜 기간 체내에 남아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미크론 하위 변이 BA.2.75는 큰 위협이 되지 않고 소멸할 수 있다. 그러나 우려할 만한 변수가 많은 만큼 안심할 일도 아니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BA.2.75를 주의 깊게 추적·관찰하고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