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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블랙의 신부》, 해외에서 좋은 반응
자극적이지만 눈을 뗄 수 없는 막장의 새로운 가능성 보여
《블랙의 신부》, ‘넷플릭스판’ 아침 드라마 되나
《블랙의 신부》는 김희선이 주인공 역할이라 단연 주목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하지만 제작발표회에서부터 《블랙의 신부》는 어딘가 지금까지 넷플릭스가 내놨던 작품들과는 결이 다르다는 걸 드러냈다. 이 작품의 소개 문구만 봐도 그렇다. ‘사랑이 아닌 조건을 거래하는 상류층 결혼정보회사에서 펼쳐지는 복수와 욕망의 스캔들을 그린’ 작품. 어딘가 《펜트하우스》 같은 이른바 ‘막장의 향기’가 솔솔 피어나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블랙의 신부》는 첫 회부터 남편의 불륜 그리고 자살이 등장하고, 그 죽음에 음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내의 ‘복수극’이 예고됐다. 바로 그 음모를 꾸민 이는 남편과 같은 로펌에 다니던 내연녀 진유희(정유진)였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는 누군가와도 하룻밤을 아무렇지 않게 보내는 이 악녀는 비련의 여주인공 서혜승(김희선)의 남편을 유혹하고, 로펌 내에서의 비리가 밝혀지려 하자 모든 죄를 뒤집어씌워 자살에 이르게 만든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서혜승이 폭로하려 하자 그와 그의 딸까지 협박한다. 결국 가족을 지키고 진실을 알리려는 서혜승의 복수가 시작된다. 물론 《블랙의 신부》에도 소재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그건 국내 최고의 상류층 결혼정보회사 렉스라는 곳에서 벌어지는 ‘결혼 매칭’이 그것이다. 이곳에서는 회원들을 자산 조건에 따라 블랙(1000억원 이상), 시크릿(500억~1000억원), 다이아몬드(500억원 미만), 플래티넘(100억원 미만), 골드(50억원 미만)로 나눠 매칭하는데, 굴지의 게임회사 대표인 최고의 블랙 회원 이형주(이현욱)와 결혼하려는 여성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그중 필사적으로 결혼하기 위해 뛰어드는 진유희의 거짓을 알고 서혜승이 막으려 한다. 이 과정에서 아침 드라마가 그러하듯이 이형주는 점점 서혜승에게 빠져들게 된다. 게다가 결혼 전 헤어졌던 남자친구 차석진(박훈)도 서혜승을 잊지 못하고 구애를 한다. 불륜과 복수극, 악녀에 이어 아이가 있는 유부녀를 동시에 사랑하는 모든 걸 가진 두 남자의 구도까지, 전형적인 아침 드라마가 재연된다. 렉스라는 결혼 매칭 회사의 위계 구조를 좀 더 파고들어 갔다면 비판적인 사회극이 될 법도 했지만, 이 드라마는 그런 데는 관심이 별로 없다. 다만 아침 드라마식의 자극적인 포인트들만 예상대로 풀어놓을 뿐이다. 국내 반응이 좋을 수는 없다. 그것도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을 통해 K드라마의 진화된 버전들을 접해온 구독자들에게는 왜 넷플릭스가 《블랙의 신부》에 투자했는지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넷플릭스는 본래 자극적인 콘텐츠들로 정평이 나있었다는 사실이다. 다만 그렇게 보이지 않게 된 건, 자극적인 소재와 대본, 연출이 들어가지만 나름의 완성도와 메시지 또한 놓치지 않는 작품도 적지 않아서다. 실제로 넷플릭스 《브리저튼》의 경우 《오징어 게임》 다음으로 많은 구독자가 시청한 작품이지만, 시즌2로 오면 거의 막장 전개에 가까운 자극적인 이야기를 풀어낸다. 또 《펜트하우스》를 쓴 김순옥 작가는 애초에 이 작품을 넷플릭스를 겨냥해 썼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 작품의 색깔과 완성도가 넷플릭스와 맞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이 플랫폼에 대한 이미지가 그만큼 자극적이라는 것이다. 또 임성한 작가의 복귀작이었던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넷플릭스를 통해 서비스되면서 적어도 시즌1까지는 꽤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넷플릭스에 소개된 《블랙의 신부》는 나름 괜찮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이어 TV쇼 부문 2위를 차지하고 있고, 글로벌 차트에서도 전체 중 7위를 기록하고 있다(7월26일 현재). 평점은 높지 않지만 아시아권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고르게 상위 차트에 올라있을 정도로 보편적인 주목을 끌고 있다. 이런 흐름은 이 작품이 갖고 있는 자극적인 전개의 특징이 사뭇 텔레노벨라 같은 부류로 읽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찌 보면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한껏 주목받은 K콘텐츠가 시도하는 텔레노벨라라는 지점이 호기심을 자극했을 가능성도 높다. 즉 우리의 막장은 국내에서는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나름 먹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막장이 K컬처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
최근 넷플릭스에 소개된 《블랙의 신부》나 역시 최근 방영됐던 tvN 《이브》 등은 그간 ‘막장’이라 불렀던 자극적인 소재를 넘어 영상 연출이나 연기 같은 완성도에도 투자하기 시작했다는 걸 보여준다. 내용으로만 보면 어디선가 무수히 봐왔던 아침 드라마 버전의 클리셰들이 가득하지만, 이를 포장하는 방식은 더 이상 ‘막장’이라 말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블랙의 신부》에서 가면무도회 콘셉트로 상류 레벨의 남녀들이 파티를 하는 장면들은 연출에도 공을 들인 티가 역력하다. 또 설명이 필요 없는 김희선 같은 배우나 《마인》 같은 작품으로 주목받았던 이현욱,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후 《아무도 모른다》 같은 작품으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는 박훈 같은 배우들이 포진한 것도 이 작품이 그저 막 만든 드라마는 아니라는 걸 말해 준다. 과거 ‘막장 드라마’라고 표현할 때 그 의미는 두 가지 요소를 내포했다. 하나는 드라마가 다루는 소재가 너무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라는 의미에서의 막장이고, 다른 하나는 드라마의 개연성이 없거나 연출이 조악해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의미에서의 막장이다. 물론 최근 등장한 《펜트하우스》나 《결혼작사 이혼작곡》 같은 드라마들은 처음에는 나름의 완성도를 갖고 있어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라는 의미에서의 막장으로 불렸지만, 시즌을 거듭하면서 개연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완성도 부족의 막장으로 흘러간 바 있다. 물론 이 두 요소를 완벽히 나눌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자극적인 상황을 만들기 위해 동원되는 클리셰들은 그 자체로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요소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막장 드라마는 적은 제작비로 짧은 시간 안에 작품을 내놔야 하는 현실적인 조건들 속에서 탄생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제 만만찮은 제작비가 투입되는 작품도 나오고 있고, 막장이 아닌 ‘마라맛’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팬층이 생기고 있으며, 글로벌하게는 텔레노벨라 같은 장르가 세워지고 있다. 또한 우리에게는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가 해외에서는 그저 ‘자극을 즐기는’ 드라마로 소비되는 경향도 있어 여러모로 이제는 ‘막장’을 대체할 만한 표현이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아직 막장을 또 다른 K컬처라고 지칭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다만 이 특정 드라마들을 또 하나의 ‘장르’로 규정할 수 있을 만큼 나름의 즐길거리와 재미 요소와 함께 최소한의 완성도까지 갖춰 제시할 수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게다. 그건 어찌 보면 K컬처를 더 다양하게 만들어내는 일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