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불태워 버리겠다”는 중국 왜 못 할까?

8월3일 저녁 6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떠났다. 펠로시 의장은 대만에서 철저히 자신의 정치적인 계산과 목적에 따라 움직였다. 출국 직전 대만·중국·홍콩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중화권 인사들과 함께 타이베이 교외의 정치범교도소를 찾았다. 또한 자신이 주도해 7월말 미국 의회에서 통과시킨 ‘반도체산업진흥법안’을 적극적으로 마케팅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TSMC의 창업자와 회장도 만났다.

펠로시 의장이 대만에 머무르는 동안 중국은 격노했다.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미국과 대만을 향해 “불장난을 하면 반드시 불에 타 죽는다”고 경고했다. 이런 경고는 공수표로 끝나지 않았다. 펠로시가 대만을 떠난 다음 날부터 중국은 ‘대만 포위’ 군사훈련에 들어갔다. 훈련 첫날인 8월4일 하늘에는 군용기 100여 대가 동시에 투입됐다. 전투기·폭격기·수송기·공중급유기 등 다양한 기종이 동원됐고, 스텔스 전투기인 J-20도 참가했다. 게다가 적지 않은 군용기가 중국과 대만 사이의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어갔다. 대만의 방공식별구역(ADIZ)만 침범했던 이전보다 더욱 도발적인 행태다.

일상화되어 버린 중국의 무력시위

중국의 무력시위는 바다에서도 대범했다. 10여 척의 구축함과 호위함을 출동시켜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게 했던 것이다. 중국 국영 CCTV는 “함대가 합동 소해 및 경계를 벌이며 사격훈련을 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날 훈련의 하이라이트는 대만의 동서남북 해역으로 발사된 미사일과 장거리포였다. 미사일은 둥펑(東風) 탄도미사일로 11발이 발사됐다. 이 중 5발은 대만 영토를 통과해 일본이 설정한 배타적경제수역(EEZ)까지 날아갔다. 중국군은 로켓 발사 장면을 SNS를 통해 공개했다.

이렇듯 실전을 방불케 하는 군사훈련은 예고했던 8월7일까지 이어졌다. 그 기간 동안 대만해협은 사실상 봉쇄 상태에 놓였다. 마지막 날에도 중국은 군용기 66대와 군함 14척을 대만해협으로 보내 합동훈련을 벌였다. ‘대만 포위’ 훈련이 지속되면서 대만을 오가는 민항기는 대폭 줄어들었고 선박의 출·입항도 감소했다. 그런데 중국의 군사훈련은 8일 이후에도 지속됐다. 군용기와 군함의 합동훈련이 이어졌고, 대만해협 중간선을 계속 넘었다. 이렇게 군사적인 위협이 지속되자, 대만도 맞불을 놓았다. 9~11일 남부에서 대규모 포사격훈련을 벌인 것이다.

중국의 도발은 온라인에서 심리전으로도 진행됐다. 8월8일 대만 국방부는 “중국이 1일부터 대만에 가짜뉴스를 퍼뜨리려는 시도를 272회 적발했다”고 밝혔다. 가짜뉴스의 유형은 군인과 민간인의 사기 저하용 130건, 무력 통일의 분위기 조성용 91건, 대만 정부의 권위 공격 51건 등이었다. ‘대만 포위’ 훈련을 통한 무력시위로 중국군의 위세를 보여준 뒤 대만군과 대만인의 저항 의지를 꺾으려는 포석이 분명했다. 게다가 8일 이후에도 중국의 군사적 위협은 지속되어, 단시일 내에 대만을 침공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중국 언론은 이번 무력시위를 “통일 작전의 리허설”로 규정했다. 8월4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글로벌타임스’는 “중국군이 대만을 완전히 봉쇄해 중국의 절대적인 통제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8일에는 인민해방군 기관지 ‘해방군보’의 SNS 매체가 올 하반기 징병 지침을 소개하면서 “당장 전쟁·전투 대비에 필요한 기능 인재의 입대를 우선 승인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중국의 움직임과 반응에 대해 대만군은 “중국군이 대만을 공격하는 모의훈련을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중국의 대만 침공은 실제 현실화될까? 대다수 중국인조차 그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변호사인 왕리밍(가명)은 필자에게 “중국이 무력으로 통일전쟁에 나서면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 중인 미군이 즉각 개입할 것”이라며 “짧은 시일 내 압승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력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수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1주일 내 승리를 결정짓지 못한다면 국제사회의 엄청난 비난과 제재에 직면하게 된다”며 “경제 성장에 매진해야 할 중국 입장에서는 재앙적인 결과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일부 중국 네티즌은 “정부의 장담처럼 대만을 불태워 죽여라”라고 성화를 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무력시위로 경고를 계속 보낼 뿐 군사적 충돌은 피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 군용기와 군함이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었지만, 대만 영공과 영해까지 침범하지는 않았다. 무력시위의 주체가 인민해방군 전군이 아닌 5대 군구 중 동부전구 차원으로 국한됐다. 또한 당초 훈련 참가가 예상됐던 항공모함과 만재 배수량 4만 톤의 강습상륙함은 제외됐다. 항공모함과 강습상륙함은 대규모 군대를 대만으로 상륙시키는 데 반드시 필요한 전략무기다.

“반도체 제재는 중국이 자기 발 내려찍는 꼴”

이뿐만 아니라 대만에 대한 경제 제재도 솜방망이에 그쳤다. 8월3일 중국은 대만산 자몽·오렌지 등 감귤류와 냉장 갈치, 냉동 전갱이 등 해산물의 수입을 금지했다. 또한 30여 개 과자와 음료 등 대만 가공식품의 수입을 막았다. 중국산 건설자재, 반도체 웨이퍼 원료 등의 대만 수출도 금지했다. 비록 유해물질 검출, 행정등록 규정 위반 등 여러 이유를 들었지만, 펠로시 의장의 방문 직전에 취한 수출입 금지 조치이기에 한국에 취했던 ‘사드 보복’과 같았다. 수입 금지 품목은 대중(對中) 의존도가 큰 탓에 대만 농민과 어민이 받을 타격이 막대하다.

그러나 대만 경제와 산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등 IT 핵심 부품은 제외됐다. 특히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동맹인 ‘칩4 동맹’에 대만이 참여 의사를 밝혔는데도 제재하지 않았다. 지난해 대만의 대중 수출액은 1888억 달러로, 전체 수출 중 42.3%에 달했다. 중국으로 건너간 수출 품목의 절반이 바로 반도체였다. 대만 반도체의 중국시장 점유율은 34.2%에 달했다. 그에 반해 대만 농수산식품의 중국 수입시장 비중은 0.23%에 불과하다. 대만이 지난해 6.3%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한 데도 급증했던 반도체 수출의 힘이 컸다.

중국이 반도체 수입 금지로 제재를 가하면 대만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 피해는 중국도 고스란히 입게 된다. 중국 산업 현장에서 사용되는 핵심 반도체가 대만에서 공급되기 때문이다. 특히 TSMC에서 제조한 첨단 미세공정 적용 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하면, 중국은 첨단 제품의 생산을 중단해야 한다. 중국의 유명 경제학자 훙하오는 이런 상황을 “대만에 대한 중국의 반도체 제재는 돌을 들어 자기 발을 내려찍는 꼴과 같다”고 비유했다. 중국이 대만을 “불태워 죽이겠다”면서도 그러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