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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와 분노 공존 분위기 속 여권 대선 판도에도 변화 전망
총선 압승 이후 여권 악재 이어져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7월10일 새벽 서울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시민운동의 대부’로 불리며 역대 최장수 서울시장으로 재임 중이던 박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에 대해 수사 중이다. 전날인 9일 오전 10시44분쯤 서울 가회동 서울시장 공관을 나오면서 그는 가족에게 메모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직 정확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극단적 선택의 원인과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8일 경찰에 접수된 박 시장의 전 비서 A씨의 ‘성추행 의혹’ 고소 사실이다. 박 시장을 고소한 당사자는 2015년부터 서울시청에서 일했던 전 공무원 A씨다. A씨의 고소장에는 박 시장으로부터 당한 피해 정황이 자세하게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신중하게 고소장 검토에 나섰고,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TF팀 구성까지 고려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경찰은 고소장이 접수됐다는 사실만 확인할 뿐 그 내용에 대해선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SBS는 “A씨는 자신이 당한 피해가 한 차례가 아니라 지속적인 성추행이었다고 경찰에 밝혔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박 시장에 대한 소환조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이 고소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종결됐다. 하지만 정확한 내용이 드러나지 않은 채 묻히게 되면서 자칫 루머만 정치권에 난무할 가능성이 커졌다. 일단은 망자에 대한 추모 분위기 때문에 표면 위로 드러나지 않겠지만, 자칫 정쟁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충격에 빠졌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시청 여직원 성추행 사건으로 인한 시장직 사퇴 파문이 채 가라앉지도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여권 유력 인사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오 전 시장과 박 시장은 그 파장에서 비교가 안 된다. 박 시장은 지난 2017년 대선 때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고, 지금까지 여권의 유력 대선후보로 거론됐다. 최장수 3선 서울시장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의혹의 당사자인 박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 충격 여파가 고스란히 여당은 물론 문재인 정부에까지 전달될 것으로 보인다. 21대 총선에서의 ‘180석 압승’은 민주당에 독이 든 성배였을까. 마치 일부러 시나리오를 짜기라도 한 듯 총선 이후 여권의 악재가 계속되고 있다. 오 전 시장 사퇴 파문 이후 윤미향 의원 후원금 유용 의혹이 불거졌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가 이어졌다. 최근에는 부동산 논란에 이어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충돌까지, 그야말로 집권 5년 동안에 있을 법한 악재들이 총선 후 3개월 만에 몰아치듯 나오고 있다. 그러는 사이 한때 60%대를 찍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어느덧 40%대로 추락하고 있었다. 여기에 박원순 시장 사건까지 터졌다. 기자가 박원순 시장을 만나 대화를 나눈 것은 약 두 달 전인 5월12일이었다. 이날 박 시장은 시청 자신의 집무실에서 시사저널과 1시간여에 걸쳐 인터뷰를 했다. 코로나19 방역으로 분주한 상황에서도 박 시장은 좀 더 큰 꿈을 향해 상당한 의욕을 보였다. 때마침 4·15 총선에서 박 시장 측근 인사들이 대거 원내에 입성했고, 서울시청 내에 보좌진 등 참모진도 대거 충원된 상태였다. 박 시장은 기자와의 인터뷰 자리에 배석한 서울시 간부들에게 “서울시가 행하고 있는 많은 성과를 언론 등에 제대로 알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시장 집무실에 설치된 도시현황판을 가리키며 세계 대도시들 가운데서도 가장 디지털화된 서울시의 최첨단 IT 시스템을 기자에게 한참 동안 자랑하기도 했다. 대선후보 지지율이 다소 부진한 데 대해서도 그는 “2011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5%의 지지율로 시작했지만, 지금 최초의 3선 서울시장이 됐다”며 “시장 재임 동안에도 수없는 지지율 변화가 있었지만 거기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좌고우면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일을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박 시장, 최근까지 강한 의욕 보여
당시 박 시장의 모습 그 어디에서도 고민하거나 주저하는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여전히 자신감에 차 있었고, 새롭게 충원된 참모진도 활기가 넘쳐 보였다. 그로부터 불과 두 달 만에 이런 불행한 사태를 겪으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분위기였다. 물론 박 시장 자신도 전혀 짐작조차 못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여권은 여론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당 독주 일변도의 국회 운영도 일정 부분 궤도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남북 문제나 부동산 정책 등 경제 문제와 달리 민주당 고위 인사들의 도덕성 논란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어 박 시장까지 계속 불거지는 성추문 논란은 여성들의 분노, 나아가 권력의 도덕성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를 계기로 미래통합당이 국회 파행을 더욱 부추기는 정쟁 일변도로 나온다면 야당에 역풍이 불 수도 있다. 그 때문인지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일단 소속 의원들에게 ‘입조심’을 당부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이 지금처럼 무조건 ‘총선 민심’ 운운하며 단독 국회를 몰고 가기에도 사뭇 부담이 될 전망이다. 정의당은 더더욱 민주당과 거리 두기를 할 가능성이 커졌다. 향후 대권 판도에도 큰 변화가 따를 전망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빅3’로 꼽힐 만큼 여권의 유력 대권주자였다. 상대적으로 이낙연 의원이나 이재명 경기지사에 비해 지지율이 다소 낮게 나오는 상황이긴 하지만, ‘소통령’으로 불리는 서울시장인 만큼 잠재력이 높게 평가됐다. 더욱이 이번 4·15 총선에서 박 시장 사람으로 불리는 이른바 ‘박원순계’가 대거 원내에 진입하면서 향후 박 시장이 본격적인 대권 행보에 나선다면 상당한 파워를 발휘할 것으로 주목됐다.여권 대선 판세에도 큰 변화 불가피
이번 사건이 여권 전체에 악재가 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여권 지지층이 갑자기 야권 지지로 돌아서진 않겠지만, 상당수 지지층이 여론조사에서 ‘지지 후보 없음’이나 ‘무응답’ 쪽으로 입장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현재 대선후보 지지율 1·2위를 달리고 있는 이낙연 의원이나 이재명 지사가 반사이익을 얻기보다는 오히려 지지율이 하락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전망했다. 상대적으로 열세를 면치 못하던 통합당 등 야권은 모처럼 반전의 기회를 노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계속 전개됐던 민주당 잠룡들의 절대 우세 분위기는 사라지고, 다시 안갯속 정국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상황에 따라서는 이 문제가 내년 4월에 더 크게 불거질 가능성도 크다. 내년 4월에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재보선이 동시에 치러지게 됐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민주당 소속 시장들의 도덕성 문제로 인해 치러지는 재선거인 데다 대한민국 제1, 제2 도시에서 치러지는 사실상의 ‘미니 지방선거’니만큼 통합당은 집권여당의 도덕성을 집중 공략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침 2022년 대선을 1년 정도 앞두고 벌어지는 중요한서 선거여서 그동안 민주당에 당했던 전국 단위 선거 4연패의 수모를 설욕하기 위해 이 문제를 집중 공략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고인에 대한 추모 분위기가 나오겠지만, 한편으로는 민주당 단체장들의 연이은 성추문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요구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