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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회복한 부안 상서중 송경진 교사, 공무상 사망 인정…성추행 혐의 벗어

학생 성추행 누명을 쓰고 교육 당국의 강압적인 조사가 이어지자 스스로 죽음을 택한 중학교 교사가 3년 만에 명예를 회복했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전북 부안 상서중학교에서 재직했던 고 송경진 교사(56)의 유족이 인사혁신처장을 상대로 “순직 유족 급여를 지급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업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학생들과의 신체접촉에 대한 조사를 받으며 극심한 스트레스로 불안과 우울 증상이 유발됐고, 결국 사망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아울러 “망인의 사망은 죄책감이나 예상되는 징계의 과중함에 대한 두려움 등 비위 행위에서 직접 유래했다기보다는 학생인권교육센터의 조사 결과 수업 지도를 위해 한 행동들이 성희롱 등 인권 침해 행위로 평가됨에 따라 30년간 쌓아온 교육자로서의 자긍심이 부정되고, 더 이상 소명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상실감과 좌절감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로써 송 교사는 성추행 의혹에서 벗어나 명예를 회복했다. 하지만 유족들의 억울함이 풀린 것은 아니다. 송 교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3년 동안 유족은 하루하루가 악몽을 꾸는 듯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2017년 8월31일 전라북도교육청 앞에서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송경진 교사의 사망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8월31일 전라북도교육청 앞에서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송경진 교사의 사망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학생인권센터의 강압적인 조사

전북 부안군 상서면에 있는 상서중학교는 남녀공학으로 전교생 수가 19명인 작은 시골학교다. 송경진 교사는 30년 교직생활 중 이곳에서 6년째 근무하고 있었다. 송 교사는 평소 학생들을 끔찍하게 아꼈다고 한다. 특히 가정이 불우한 아이들은 자식처럼 챙겼다. 그러나 송 교사는 전혀 예상치 않았던 ‘성추행 의혹’에 휩싸인다. 지난 2017년 4월 같은 학교에 재직 중인 학생부장(체육교사)은 송 교사가 “여학생 7명에 대한 성추행이 의심된다”고 학교장에게 알렸다. 송 교사가 여학생들의 허벅지와 어깨를 주물렀다는 것이다. 학교 측은 같은 달 19일 송 교사를 경찰에 신고했다. 현행법상 교사는 학생의 성범죄 피해 사실을 인지할 경우 학교장에게 보고하고, 학교장은 즉시 경찰에 고발 조치하도록 돼 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이지 피해 학생들은 “선생님은 죄가 없다”며 조사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내사 종결하고 부안교육지원청에 고지했다. 4월24일 부안교육지원청은 경찰의 내사 종결에도 “2차 피해가 우려된다”며 송 교사를 직위 해제하고 전북교원연수원으로 대기발령 조치했다. ‘성추행 혐의’가 있는 송 교사를 학생과 학부모, 학교로부터 사실상 격리 조치한 것이다. 첫 신고가 접수된 지 열흘 만인 4월29일 피해 학생들은 송 교사의 무고함을 호소하는 자필 탄원서를 교육청에 냈다. 학생들은 탄원서에서 “선생님과 야자시간에 불거진 서운함이 이렇게 하면 빨리 해결될 줄 알았다”며 “선생님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A양은 “다리 떨면 복 떨어진다고 무릎을 친 것을 주물렀다고 적었다”며 “허벅지를 만진 것은 절대 아니다”고 밝혔다. B양도 “수업에 집중하라고 어깨를 토닥인 것을 주물렀다는 표현을 했다. 죄송하다”고 적었다. 학생들은 처음 체육교사에게 신고할 때의 진술을 번복했고, 표현이 과장됐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었다. 학생과 학부모 등 25명도 전라북도교육청에 송 교사의 오해를 풀어 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송 교사에 대한 조사는 계속됐다. 전북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는 송 교사를 여러 차례 불러 성추행 혐의에 대해 추궁했다. 5월2일에는 약 3시간에 걸쳐 1차 문답 조사를 벌였다. 그 후 몇 차례 더 조사를 진행했고, 7월18일 송 교사의 혐의가 인정된다는 결정통지문을 발송했다. 센터는 송 교사의 성희롱과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인격권 침해 등이 인정된다며 신분상 제재 처분을 권고했다. 사실상 송 교사의 ‘성추행 혐의’를 유죄로 본 것이다. 이후 전북 지역 지상파 방송에 이 내용을 토대로 한 뉴스가 보도됐다. 결국 송 교사는 성추행 신고가 접수된 지 약 4개월 만인 8월5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죽기 전 그는 노모와 마지막 식사를 하고 학교로 가서 짐을 정리한 후 가족에게 남기는 유서를 썼다. 그리고 자택 차고에서 마지막을 보냈다. 발견 당시 제대로 눈도 감지 못한 상태였다. 송 교사의 부인은 “남편이 모욕감과 치욕감을 견딜 수 없어 했다”고 전했다. 장례식장에는 졸업생을 포함해 200여 명의 학생들이 문상을 다녀갔다.
성추행 의혹으로 강압적 조사를 받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고 송경진 교사 ⓒ유족 제공
성추행 의혹으로 강압적 조사를 받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고 송경진 교사 ⓒ유족 제공

유족들, “사과도, 책임질 줄도 모른다” 분개

송 교사의 장례를 치른 유족들은 “고인의 억울함을 반드시 풀어주겠다”며 교육 당국을 상대로 싸움을 시작했다. 유족 측은 경찰의 내사 종결과 학생들의 진술 번복 탄원 후에도 조사가 강행됐다며 이것이 송 교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실제 학생인권센터의 결정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제기됐다. 피해자인 학생들이 처음에 했던 진술을 번복하고 “선생님은 죄가 없다”고 탄원서까지 냈는데도, 센터가 성추행이 인정된다고 결정한 것에 의문이 생겼다.

학교에서 경찰에 신고하기 전 학교폭력자치위원회를 통해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송 교사의 진술 등 소명 기회를 주지 않은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특히 학생인권센터는 학생들이 진술을 번복했는데도 이에 대한 재조사를 하지 않았다. 학생들에 대한 면담이나 조사를 통해 진술 번복 이유를 조사해야 하는데도 그런 절차를 생략했던 것이다.
경찰의 내사 종결과 학생들의 탄원서가 접수된 후 송 교사에 대한 직위 해제와 대기발령 조치가 내려진 점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당사자인 학생들과 송 교사가 서로 “죄가 없다”는 주장을 했는데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징계가 이뤄진 셈이다.

이에 대해 인권센터 측은 “학생들의 탄원서는 참고했지만, 재조사를 하지 않은 것은 송 교사에 대한 조사 내용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송 교사의 부인은 남편이 숨진 뒤 당시 부교육감과 해당 학교장, 학생인권교육센터장 등 10명을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와 강요·사자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검찰은 “조사 과정에 강압은 없었고, 법령과 지침도 지켰다”며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송 교사의 죽음에 아무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던 것이다.
전북도교육청은 지금까지 송 교사의 유족에게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유족들은 “사과도, 책임질 줄도 모른다”며 분개했다. 결국 죽은 송 교사와 유족들만 억울한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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