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민주당에서 공개적으로 반(反)NY(이낙연 의원) 성향을 드러내는 인사는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주당 의원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정치인데 누가 유력한 대권주자와 각을 세우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김두관 의원이 우회적으로 이 의원의 당권 도전을 비판한 게 거의 유일하다. 김 의원은 6월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권주자가 7개월짜리 당권에 나서는 것도 당 운영의 원칙과 책임, 그리고 우리에게 닥친 엄중한 책임을 생각할 때 우리의 선택지는 아닌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의원이 당내 경선을 거쳐 민주당 대선후보에 오르기 위해선 민주당 지지층을 확실한 우군으로 만들어야 한다. 특히 전체 권리당원의 25~30%에 해당하는 강성 친문당원들의 지지가 필수다.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1980년 서울의 봄, 1987년 6월 항쟁,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이낙연 의원은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어떤 정치적 입장을 취했는지를 보면 답이 나온다”면서 “지금 친문이 미는 적자(嫡子)가 없어서 그런 거지, 대체 가능한 후보만 나오면 당내 이낙연 의원 지지세는 빠르게 약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남후보론 대권 잡기 힘들다" 주장도 나와
비호남 후보론도 이 의원이 넘어야 할 과제다.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대권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도 PK(부산·경남)를 정치적 고향으로 두고 있어서다. 어차피 진보진영 후보는 호남에서 압도적인 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득표력의 확장성을 위해서도 진보진영이 약세인 영남권 내지는 최소한 비호남권에서 후보가 나와야 한다는 논리다. 첫 정권교체를 이뤄낸 호남 출신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7년 대선 당시 충청권 맹주였던 김종필 전 총리와 손을 잡고서야 가까스로 대권을 거머쥘 수 있었다.
관가에서 불리는 이 의원의 별명은 ‘이 주사’ 또는 ‘군기반장’이다. 부드러운 대중적 이미지와 달리, 함께 일해 본 공직사회는 이 의원의 엄격함에 혀를 내두른다.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면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영남 후보론’,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노무현 정신을 이을 적통’이라는 정치적 자산이 있는 반면, 이낙연 의원은 현재까지 아무것도 없다”고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