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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간 59개 대기업 자산·매출·당기순익 분석 결과…기업 내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 가속화

지난 10년간 국내 대기업의 자산이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월 공정위가 발표한 59개 대기업집단의 자산총액은 2039조753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인 1조6194억 달러(약 1954조6158억원, 세계은행 발표)를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명목 GDP(1893조4970억원)와 비교하면 차이는 더 벌어진다. 대기업 중에서도 상위권으로 올라갈수록 자산 증가율이 높았다.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부의 쏠림’ 현상이 기업 내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상위 3개 그룹 자산 34.50%→42% 급증

이 같은 사실은 시사저널이 대기업집단 59곳의 최근 10년간 자산총액과 매출, 계열사 수 등을 전수조사한 결과 확인됐다. 국내 대기업의 자산은 지난해 처음으로 2000조원대를 돌파했다. 국내 대기업집단의 자산은 2039조7530억원으로, 10년 전(1106조2130억원)과 비교할 때 83.4%나 급증했다. 같은 기간 한국의 GDP 성장률이 31%인 점을 감안하면 3배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한국 경제가 여전히 대기업 위주로 성장하고 있다는 방증인 것이다. 매출이나 당기순이익도 각각 1629조4540억원과 103조60억원으로 60.2%, 106.6% 증가했다. 계열사 수는 1222개에서 2104개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주목되는 사실은 자산은 증가하는데 매출 증가율은 주춤하고 있다는 점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주요 대기업의 자산과 매출은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삼성이나 SK, LG그룹의 경우 오히려 자산보다 매출이 더 높았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국내 대기업의 자산이 증가하는 동안 매출은 주춤하는 경향을 보였다. 자산이 83.4% 불어나는 동안 매출은 60.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 때문에 자산과 매출의 격차가 시간이 지날수록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한국 경제를 이끌었던 대기업과 제조업 위주의 ‘확장 경제’가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성장기 기업의 경우 자산보다 매출 증가 속도가 빠르다. 이후 이익이 유보되면서 자산이 증가하는 게 전형적인 확장 경제”라며 “제조업 위주의 국내 기업들이 최근 성장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미래 먹거리 개척을 위한 투자처 발굴도 지지부진하다. 이런 상태가 계속될 경우 자산까지 감소하면서 기업이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경제주체별 GDP’ 자료에 따르면 2010년까지만 해도 제조업의 성장률은 13.7%로 전체 GDP 성장률(6.5%)을 2배 이상 웃돌았다. 하지만 2018년의 경우 제조업 성장률이 3.6%로 전체 성장률(2.7%)을 간신히 웃돌고 있다. 국내 산업이 성숙기에 진입하면서 대기업의 자산 대비 매출 역시 크게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대기업 중에서도 상위권으로 올라갈수록 자산 증가율이 높다는 점이다. 2009년까지 삼성과 현대차, SK그룹 등 상위 3개 그룹의 자산은 381조1470억원으로, 전체의 34.50%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 상위 3개 그룹의 자산은 856조530억원으로 전체(2039조7530억원)의 42%를 기록했다. 최근 몇 년간 3개 그룹의 자산은 124.6% 불었지만, 나머지 56개 그룹의 자산은 63.3% 증가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10대 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만 두고 계산할 경우 격차는 더 벌어졌다.

그룹별로 보면 SK그룹의 최근 10년간 자산 성장률이 149.5%로 10대 그룹 중에서 가장 높았다. 2012년 SK텔레콤이 하이닉스(현 SK하이닉스)를 인수하면서 자산이 급증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2016년 삼성으로부터 화학과 방산 사업부를 잇달아 인수한 한화그룹이 148.7%로 뒤를 이었다. 현대자동차그룹(121.8%), 삼성그룹(115%) 등은 각각 3, 4위를 차지했다.

재계 11위인 신세계그룹과 19위인 미래에셋그룹의 약진도 눈에 띈다. 신세계는 최근 센텀시티 등 대형 프로젝트를 잇달아 안착시키며 10년간 자산이 192.4%나 증가했다. 재계 순위 역시 22위에서 11위로 11계단이나 뛰었다. 미래에셋의 경우 주요 그룹 중에서 자산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최근 10년간 자산은 5조7530억원에서 16조8900억원으로 193.6%나 증가하면서 재계 순위는 42위에서 19위가 됐다. 

반면 재계 4위인 LG그룹과 5위 롯데그룹, 6위 포스코, 8위 GS그룹, 10위 현대중공업그룹의 경우 자산 증가율이 각각 64.2%, 71.5%, 48.1%, 57.6%, 36.4%를 기록했다. 항공업계 양대 산맥인 금호아시아나와 한진그룹 등은 10년 만에 재계 10위권에서 물러났다. 2010년 재계 순위 9위, 10위였던 이들 그룹은 지난해 각각 28위와 13위를 차지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실상 금융그룹으로 전락한 DB그룹(옛 동부그룹)의 경우 재계 순위가 20위에서 43위로 23계단이나 추락했다.

범삼성·현대·LG家 자산 처음 1000조 돌파

조사 범위를 범(汎)삼성가와 범현대가, 범LG가로 확대해도 결과는 비슷했다. 59개 대기업집단 중에서 범삼성가는 삼성과 신세계, CJ그룹 등 3곳이다. 하지만 자산은 475조6860억원으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뒤를 이어 범현대가(322조3090억원)와 범LG가(215억1730억원) 순이었다.

삼성과 현대, LG 등 세 가문의 자산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범삼성가와 범현대가, 범LG가의 자산은 218조3110억원, 175조6870억원, 138조181억원을 기록했다. 상대적으로 차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범삼성가의 자산이 117.9% 상승하는 동안 범현대가와 범LG가의 자산은 각각 84.5%와 55.7% 성장하는 데 그쳤다. 향후에도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될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누가 먼저 진화에 성공하는지가 향후 순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재벌 기업들은 그동안 ‘땅 짚고 헤엄치기식’ 사업을 해 왔다. 부를 독식한 후 2세나 3세들에게 물려주다 보니 상위 기업으로 갈수록 경제력 집중 현상이 커졌다”며 “하지만 이 같은 사업 방식은 이제 한계에 돌입했다. 늦었지만 제조업 혁신에 나서야 한다. 과거 독일과 일본이 제조업 혁신을 통해 위기에서 벗어난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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