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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사각지대’ 국내 베이비박스 두 곳
10년간 정부 지원 없이 1600여 명 보호
분리 위기의 母子 위한 국가 지원 ‘0원’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다.” 이종락 목사는 지난 10년 기억에 대해 가장 먼저 이렇게 밝혔다. 아내와 둘이 신생아 13명을 돌봐야 했을 땐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육체적 피로보다 10년간 이 목사를 더 힘들게 한 건 베이비박스 아기들을 기다리고 있는 이후의 절차들이었다. 베이비박스에 아기가 들어오면 주사랑공동체는 곧장 ①112에 신고를 해야 한다. 이내 ②관할 지구대의 방문 조사가 끝나면 ③며칠 내 구청 공무원이 방문해 아기를 병원으로 인도한다. ④서울시립아동병원에 가서 여러 차례 꼼꼼한 건강검사를 받고 나면 ⑤일시보호소에 머물다가 ⑥자리가 나는 보육원에 순차적으로 보내진다. 장애 판정을 받은 아기의 경우 별도의 장애아동시설로 배정된다. 그 후 ⑦보육원 원장의 재량에 따라 입양 가능 여부가 정해진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베이비박스에서 입양까지 6개월 이상 소요되기도 한다. 군포 베이비박스의 경우 시청에 담당 인력이 부족해 교회에서 119구급차량을 불러 아기를 병원까지 데려가야 한다. 인근에 신생아를 다루는 병원이 없어 차를 타고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병원으로 향한다. 수개월의 기간 동안 아기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병원 검진비를 제외하고 모두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두 교회에서 지출한다. 생필품 등 각종 비용에 대한 정부나 해당 지자체의 예산은 ‘0’이다. 군포 새가나안교회 김은자 권사는 “밤새 아기를 돌봐줄 인력이 없으면 외부에서 급하게 사람을 쓰기도 하는데 그 사례비도 교회에서 지급한다”며 “장애아동을 시설로 보낸 경우에도 아이를 받아준 대가로 그에 필요한 물품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종락 주사랑공동체 교회 목사 역시 “최근 정부가 유기견 보호를 위한 예산으로 100억원 이상 편성했다는 얘길 들었다.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분리될 위기에 처한 엄마와 아기를 위한 예산이 하나도 없는 건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10년째 합법과 불법 사이 사각지대 머물러
이처럼 베이비박스가 10년 내내 명확한 개선도 지원도 없이 법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온 까닭은 무엇일까. 익명의 산모로부터 아기를 위탁받아 보호하는 베이비박스는 현재 불법으로 규정돼 있다. 해당 관할 경찰도 이를 금지하거나 처벌할 경우 별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그동안 용인해 온 것이다. 이 때문에 베이비박스에 대한 정부의 지원 논의가 몇 차례 진행되다가도 위법성 논란에 부딪혀 번번이 좌절되곤 했다. 베이비박스를 합법화하는 데 있어서도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힌다. 10년간 1600여 명의 아기들이 베이비박스를 거쳐 갔음에도 여전히 영아 유기를 조장하는 곳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실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인권위원회, 미혼모연대 등 주요 관련 단체에서 베이비박스를 ‘영아 유기를 방조하고 아동복지법을 위반한 불법시설’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베이비박스 운영자들은 베이비박스를 ‘산모와 아기의 생의 끝에 놓인 마지막 선택지’라고 거듭 강조한다. 새가나안교회 김은자 권사는 “2017년 한 산모가 우리 쪽에 아기를 두고 돌아갔다가 경찰에 적발돼 아기와 함께 다시 돌려보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 결국 엄마가 아기를 살해하는 일이 발생했다”며 “열 달 내내 피 터지는 고민 끝에 택한 결정이지 결코 쉽게 유기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주사랑공동체 교회 이종락 목사 역시 “2018년 베이비박스를 운영 중인 12개국이 모여 일본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그곳에서 독일 관계자를 만났는데, 독일엔 베이비박스가 100여 개 있고, 한 해 각각 아기 7명 정도밖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런데도 한 생명이라도 더 제대로 보살피기 위해 계속해서 베이비박스를 늘려가고 있다는 말을 듣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베이비박스는 영아가 유기되는 곳이 아니라 영아를 살리는 곳”이며 “이곳 아기들은 부모에 의해 버려진 게 아니라 지켜진 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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