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부산영상위 김휘 위원장
“영화 산업 핵심 인력인 20~30대 고용불안 시급히 해결해야”
국제영화제의 유명세와 《변호인》 《국제시장》 《범죄와의 전쟁》 등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의 흥행 성공으로 영화의 도시라는 타이틀을 얻은 부산은 각종 영화 인프라를 풍족하게 갖춘 준비된 도시다.
하지만 훌륭한 인프라에 비해 현재 대형 영화 제작사와 인력은 수도권에 집중돼있어 정작 지역에서 생산되는 콘텐츠의 힘은 약하다. 또한 빠르게 변하고 있는 영화산업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다.
이런 가운데 국제영화제와 함께 대표적 인프라인 부산영상위원회는 1999년 설립 이후 현재 까지 1300여 편의 영화, 영상물 촬영을 지원하며 영화산업도시의 중추적 역할을 해오고 있다.
2018년에는 장편극영화 33편이 부산에서 촬영됐고, 드라마· CF등 영상물은 총 91편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63%(35편)가량 증가했다. 특히 장편극영화 33편 중 8편은 부산제작사의 작품으로 올해도 활발한 활동이 기대된다.
작년 10월 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으로 선임된 김휘 위원장은 영상위원회에 대해 “제일 큰 문제는 조직의 혁신과 안정화이다. 또한 영상산업의 핵심인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전문인력을 양성해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 핵심”이라며 “임기내 이루고 싶은 성과로 부산에서 기획ㆍ제작한 대중영화의 성공 사례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포부를 밝혔다.
향후 영화산업의 변화에 대해 김 위원장은 “미래 영화 시장은 유통과 자본이 아닌 컨텐츠의 힘으로 좌우될 것이다. 결국은 기획 능력을 갖춘 주체들이 지역에 얼마나 있느냐가 문제다. 그러려면 인력에 대한 공격적인 유치와 R&D가 필요하다”며 영상위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영화의 도시, 부산’을 설계하고 구축하고 있는 김휘 부산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을 통해 부산 영상산업의 현재와 가야할 방향에 대해 물었다.
취임 한지 2달 정도 됐다. 취임 후 영상위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있다면.
“선임되기 전에는 영상위가 지역 영화인들의 민원이나 현안을 해결하는 창구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일을 해보니 중∙장기적 계획을 짜는 정책 기구로서의 성격이 더 강한 것 같다. 문제해결을 위한 시스템과 중·장기적인 계획수립과 정책기관으로서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 조직 편제가 시급한 것 같다.”
영상위원회가 생긴 이후 관련 인프라들이 많이 갖춰졌다고 보는데.
“국제영화제, 후반작업기지, 영화 펀드까지 자본과 인프라는 이미 다 갖춰져 있다. 부산에서 영화 기획부터 제작까지 이뤄지기 위한 핵심 요건은 콘텐츠 발굴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부산에서 다양성 영화나 독립영화는 연 평균 7작품 정도 꾸준히 제작되고 있지만 산업적인 가치는 미미하고 지원금이 끊기면 영화 제작 자체가 중단이 되는 상황이다. 이런 부분을 개선하려면 좋은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며 임기 안에 성과 사례를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다.”
영상위의 가용예산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는데,..
“그렇다. 일정 기준 이상 자본이 투입 돼야 안정적으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므로 이런 시각에서 보면 아직도 미미하다. 영화의 전당 운영비만 해도 120~130억, 영상위원회 운영비도 100억에 육박하고 부산영화제 운영비도 100억 정도 소모된다. 시설 인프라에 투입되는 자본은 매우 큰 반면, 실제 영화 제작비에 투입되는 자본은 10억이 채 안 된다. 상대적으로 불균형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현재 블록버스터 위주로 형성된 영화 시장에서 10억 정도의 돈이 실제 의미가 있나.
“극히 미미하다. 하지만 국내∙외 사례를 보면, 특히 호러나 로맨티 코미디 장르에서 3~4억 규모의 자본을 가지고 흥행에 성공한 작품들이 나오기도 한다. 작년에 개봉한 공포영화 곤지암도 순 제작비 10억 정도로 300만 관객을 동원했다. 그런 측면에서 기획 능력이 있는 주체들을 키워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올해는 여태 해오던 인력양성을 계속 진행하는 동시에 지역 외 작가 인력들을 부산으로 유치하는 신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기획∙개발비를 지급하거나 부산에 상주했을 때 체류비를 지원해주는 방법으로 기존 시나리오 작가들을 부산으로 유입시킬 계획이다.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영상벤처센터로 운영됐던 공간을 ‘스토리컨텐츠창작소’라는 명칭으로 작가 인력들을 위한 창작공간으로 운영하는 방안도 계획 중이다. 인력들을 유치해 좋은 시나리오를 1년에 7~10작품 정도 확보 하는 것이 목표이다.”
부산 영화 제작 과정의 문제점은.
“현장에서 작업을 하다보면 돌발적으로 인력이 필요할 때가 굉장히 많다. 수도권에는 인력이 풍부하기 때문에 작업을 하다가도 인력들을 바로 수급할 수 있는데 지역에서는 수급 자체가 힘들다. 전문 인력의 풀도 좁을뿐더러 그 풀들을 활용하는 방식도 아직 시스템화 돼있지 않아서 인력 수급의 문제가 가장 크다.”
부산의 인재들이 수도권으로 유출되고 있는 이유와 대책은.
“가장 큰 문제는 지역의 인재들을 안정적으로 고용할 수 있는 제작사가 없다는 것이다. 제작사의 경우 필수인력이 4~5명 정도 이고, 작품에 따라서 작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의 인력이 6개월에서 1년 정도 집중적으로 동원된다. 상업영화가 부산에서 만들어져야 지역 인재들이 영화작업에 집중 할 수 있는데,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제작사가 없어 수도권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순환시스템으로 바꾸려면 컨텐츠를 기획하는 인재들이 많이 창출돼야 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 수도권에 영상 산업이 집중돼 있는 것이 부산에게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부산에서 수도권에는 없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냈을 때 순식간에 인력을 유입시킬 수도 있다. 여태껏 수도권에 누적됐던 영화산업의 병폐를 거울삼아 우리는 그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 새로운 대안모델을 제시 할 수 있는 때가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전략 단위를 정책적으로 시에서 어떻게 흡수하느냐가 진짜 중요하다고 본다.”
선임 과정에서 생겼던 갈등은 봉합됐는지.
“특별한 해결책 보다는 위원장을 임명하는 절차의 문제이기 때문에 다음 위원장을 선출할 때는 지역 영화인들과의 협의를 거쳐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시스템을 찾아야 한다.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서 논의가 필요하고 모임에 대한 고민과 약속은 지난 연말 부산 지역 영화인들과의 미팅을 통해서 1차적으로는 교감을 나눴다.”
최근 이용관 사단의 부산영화계 대거 입성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이용관 이사장님의 제자들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의도된 조직화로 보는데, 제 판단에는 현재 각 기관의 장을 할 정도의 현장경험을 갖춘 분들이 경성대 연극∙영화과 출신 외에는 전무했다고 본다. 경성대 연영과와 시네마테크 24분의 1이라는 영화 관련 단체 두 곳을 통해서 배출된 인력들이 당시 그 두 기관에서 활동을 했던 이사장님과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본다. 그 외 영화 관련 교육기관이나 활동단체가 지역 내에서 전무했기 때문에 다른 이력을 가진 분들을 찾기가 어렵다.”
현재 위원회 내부 문제점이 있다면,..
“영상위에 와서 보니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것을 느꼈다. 임원들을 비롯한 간부급들은 정규직이고, 핵심적으로 일을 해야 할 20대 후반에서 30대 중후반의 인력들이 비정규직인 경우가 많다. 실제 미디어를 가장 많이 접하는 연령대의 사람들이 전략 수립을 해야 하는데 현재 대부분 계약직으로 고용 불안을 겪고 있다. 창의성을 발휘해야 할 문화콘텐츠기관에서 중추 인력인 20~30대들이 고용 불안에 놓여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문화정책이 나오기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임기 내 이루고 싶은 목표는.
“부산에서 기획되고 제작되어 대중적인 성과를 내는 대중 영화의 성공 사례를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다. 다양성 영화라도 대중적인 접점이 넓으면 성공하기도 한다. 예술적인 영역에서 창작자 중심의 결과물이 아니라 좀 더 관객 중심의 결과물을 내는 성과를 말한다. 부산에서 기획해서 제작되고 부산의 영화 인력들이 메인으로 참여해서 만든 작품이 멀티플렉스 극장을 통해 개봉해 100만 관객만 동원하는 정도만 돼도 성공적인 사례라고 본다.”
현재 드라마와 K-POP에 비해 영화의 한류는 부진한 것 같다.
“조만간 영화도 그렇게 되리라 본다. 지금 한국 영화는 할리우드와 비교해도 규모와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는다. 자본은 더더욱 경계가 없다. 마블의 히어로 캐릭터처럼 우리도 내수시장에서 통하는 캐릭터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따라잡을 수 있다고 본다. 결국은 콘텐츠를 기획하는 능력과 기획을 플로어화 시킬 수 있는 작가의 능력(작가풀)을 어디서 쥐느냐가 핵심이다. 할리우드는 전 세계적으로 작가의 처우가 가장 좋은 곳이다. 한국은 그에 반해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처우가 정말 열악한데, 부산영상위가 그 틈새를 잘 공략해서 작가인력을 부산에 유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산의 영화인과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먼저 영화인들이 한국영화 발전이라는 장기적인 목표에 같이 동참해 주시기를 바란다. 합리적인 비판은 언제든 겸허하게 수용하고 정책수립에 반영하도록 하겠다. 부산시민에게는 부산에서 기획·제작된 영화에 대해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져 주실 것을 간절히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