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책임·처벌 강화 ‘일보 전진’
엄격한 법 적용 있어야 ‘이보 후퇴’ 방지
소년은 충남 서산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에서 일하면 야간학교를 다니며 학업을 이어 나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상경을 결심했다. 1987년, 15살 때였다. 서울 영등포의 한 온도계 제조공장에서 일했다. 환기시설과 보호 장비는 없었다. 일을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전신 통증과 극심한 불면증이 찾아왔다. 건강했던 소년은 발작을 하기 시작했다.
중병이 생겼지만 의사들은 정확한 병명을 찾아내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은 소년에게 “귀신이 씐 것 아니냐”고 수군댔다. 굿까지 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서울대병원 의사로부터 “어느 회사를 다녔냐”는 질문을 처음 받았다. “온도계 만드는 회사”라고 답변한 후에야 병명이 수은 중독으로 밝혀졌다. 소년은 입원 치료를 받다 끝내 숨졌다.
김용균 전에 문송면·원진레이온 있었다
소년의 이름은 문송면이다. 1987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일했던 문송면은 그해 7월 급성 수은 중독으로 사망했다. 회사와 정부는 당초 산재 승인을 거부했다. 이런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된 후인 6월말 뒤늦게 산재 승인을 받았지만, 말 그대로 뒤늦은 일이었다. 소년의 죽음은 ‘직업병’ ‘산업재해’라는 말을 한국 사회에 불러왔다. 소년의 장례는 ‘산업재해 노동자장’으로 치러졌다.
문송면이 사망한 지 불과 20일 후인 7월22일 경기도의 합성섬유 공장 원진레이온에서 노동자 수백 명이 이황화탄소에 중독돼 수십 명이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원진레이온 노동자와 노동단체들은 직업병 피해자가 915명이며 사망자가 231명에 이른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내놨다. 대한민국 산재 역사상 최대·최악 사건의 시작이다.
이들의 고발은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일터의 안전을 지키는 게 왜 중요한지, 노동자들이 얼마나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렇게 1988년 노동자 투쟁이 시작됐고, 1990년 산업안전보건 관련 제도의 틀이 마련됐다. 1981년 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이 9년 만에 전면 개정되는 성과였다. 맞다. 김용균 이전에 문송면이 있었다. 그리고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다.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기득권은 힘이 셌고, 싸움은 계속됐다. 1990년 전면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들을 지키기에 충분치 않았다. 어떤 노동자들은 계속 죽어 나갔다.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분쟁은 11년을 끌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정비를 하던 노동자도 숨졌다.
‘어떤 노동자’들은 상당수가 ‘하청 노동자’들이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6~17년 중대재해가 발생한 686개 사업장 중 하청업체 노동자가 피해를 입은 경우가 248곳(36.2%)에 달했다. 하청, 재하청, 도급, 파견. 30년 전에는 듣기 어려웠던 말이 자꾸 생겨났고, 그 꼬리표를 단 노동자들은 자꾸 죽었다. 그렇게 ‘위험의 외주화’라는 유령이 한국 사회를 덮쳤다. 딱 하나만 변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을 지켜줘야 할 산업안전보건법은 28년간 제자리를 맴돌았다.
더 많은 ‘김용균들’ 살려낼 김용균법
산업안전보건법은 ‘김용균법’이라는 이름으로 깨어나 지난해 12월27일 다시 한번 전면 개정됐다. 문송면과 원진레이온의 비극으로 1990년 전부 개정된 지 꼭 28년 만이다. 김용균의 죽음, 김씨의 어머니 김미숙씨의 눈물겨운 호소와 헌신은 기업들과 정치권, 우리 시민들로 하여금 ‘위험의 외주화’를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를 두고 노혜경 시인은 “김용균의 원래 이름은 예수가 아니었을까. 김용균 어머니의 이름은 마리아가 아니었을까”라고 적기도 했다.
그럼에도 수많은 언론과 노동단체 등은 물론 김미숙씨조차 ‘김용균법’에 대해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사실이다. ‘김용균법’은 당초 정부가 제출한 안보다 후퇴했다. 김용균법은 산재에 의한 죽음을 완전히 막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28년 만의 ‘일보 전진’이다. 여야는 극명한 입장 차이를 줄여 합의에 도달한 ‘전례’를 만들어냈다. 청와대도 ‘김용균법’ 통과를 위해 한 발 양보하는 선례를 남겼다. 이렇게 역사가 만들어졌다. ‘김용균법’ 통과는 분명 더 많은 ‘김용균들’을 살려낼 것이 틀림없다. 역사는 이렇게 더디게 한 발 한 발 전진한다.
김용균법은 어떤 점에서 평가받을 수 있을까. 국회에 제출된 김용균법은 A4용지 기준 144쪽에 달할 만큼 방대하다. 핵심은 뭘까. 국회가 법안의 ‘제안 이유’라고 밝힌 부분을 보면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
“이 법의 보호대상을 다양한 고용형태의 노무제공자가 포함될 수 있도록 넓히고, 근로자가 작업을 중지하고 긴급대피할 수 있음을 명확히 하는 한편, 사업주가 긴급대피한 근로자에게 불이익 처우를 한 경우 형사적 제재를 할 수 있도록 하여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행사를 실효적으로 뒷받침하고자 한다.” 한마디로 법의 대상과 근로자의 재량은 넓히고, 원청의 책임을 강화했다는 뜻이다.
또 있다. “도금작업 등 유해·위험성이 매우 높은 작업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도급을 금지하고, 도급인의 관계수급인 근로자에 대한 산업재해 예방 책임을 강화하며, 근로자의 안전 및 건강에 유해하거나 위험한 화학물질을 국가가 직접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위험의 외주화’의 주범으로 지목받던 도급과 하청의 재하청을 금지한 것이다. 이른바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사태의 반복을 막기 위해 국가가 더 적극 개입하겠다는 의지도 담겼다.
전문가들이 평가하는 김용균법의 성과도 국회의 제안 이유와 대동소이하다. 우선 김용균법은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 대상을 ‘근로자’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확대시켜 산업안전의 사각지대를 줄였다는 점에서 평가받는다. 기존 법은 보호 대상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한정해 택배기사나 배달원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는 산업안전 체계 밖에 머물러야 했다.
사업주에 대한 책임 강화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전에는 원청 사업주(도급인)가 화재·폭발 등의 가능성이 있는 사업장 내 22개 위험장소만 안전보건의 책임을 지도록 했다. 개정안은 원청 사업주가 지정·제공하고 지배·관리하는 장소라면 하청 노동자라도 원청 업체가 원칙적으로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지도록 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허가를 받으면 가능했던 유해·위험 작업의 도급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긴 것도 ‘일보 전진’으로 인정받는다. 김용균법은 도금, 수은·납·카드뮴 등을 사용하는 작업의 사내 도급을 원천 금지하고 위반 시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위험 작업의 도급을 금지하는 조항이 산업안전보건법에 포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언론에서 많이 다루진 않았지만 화학물질 제조·수입과 관련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공개가 강화된 점도 김용균법의 큰 성과다. 앞으로 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하는 사업주는 MSDS를 작성해 고용부 장관에게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화학물질이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사업주가 아닌 고용부 산하기관인 안전보건공단에서 심사하게 된다.
김용균씨 했던 작업 여전히 도급 계약 가능
이런 점을 종합해 일각에선 김용균법 통과를 “패러다임의 전환”(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김용균법에 아쉬움을 갖고 있는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대책위)’ 박준선 상황실장도 “28년 만의 법 개정 자체는 분명한 진전이라는 게 기본적 생각”이라고 했다.
김용균법은 일보 전진이라는 성과를 이뤘지만 아쉬운 점도 많다. 실제 지난해 초 정부가 입법예고한 원안에서 상당 부분 후퇴했다. 입법 예고안에는 노동자 사망 시 사업주를 처벌하는 하한선(징역 1년)을 신설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지만 국무회의를 거치면서 하한선 규정이 없어졌다. ‘최대 징역 10년’으로 강화한 처벌 상한도 국회 논의 과정에서 “과도한 처벌”이라는 경영계 반발에 밀려 약화됐다. 여야는 현행과 같은 징역 7년 상한을 유지하되 5년 이내에 노동자 사망 사고가 재발할 때 그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하도록 하는 절충안에 합의했다.
이번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김용균씨가 했던 작업이 여전히 도급 계약이 가능하다는 점도 김용균법의 한계로 지적받는다. 김씨의 어머니가 “변한 게 없다”며 계속 싸우겠다고 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김씨의 동료 노동자인 김경진씨가 1월2일 기자회견에서 “(사고가 난) 태안화력 9·10호기는 정지돼 있지만 1~8호기 컨베이어벨트는 여전히 죽음을 향해 돌아가고 있다”며 “하청 노동자들은 오늘도 생명과 안전에 위협을 느끼며 일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한 이유이기도 하다.
노동자에게 부여된 작업중지권이 ‘죽은 권리’라는 지적도 여전하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중지권을 발동할 수 있게 규정됐는데, 우리 법조계는 그동안 ‘급박한 위험’을 노동자가 사망할 정도의 상황이 아니라면 급박하다고 보지 않았다”며 “작업중지권은 이전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일보 전진한 ‘김용균법’이 살아 움직이는 권리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엄정한 법 집행이 최우선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많다. 대책위도 입장문에서 “위험의 외주화, 죽음의 외주화라는 악순환의 사슬을 끊고 세계 최고 수준의 산재·직업병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정부와 법원의 엄정한 법 적용 의지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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