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45년간 외과 수술 2만 건’ 양정현 건대병원 유방암센터장의 苦言
양정현 건국대학교병원 유방암센터장의 손은 두툼하고 부드러웠다. 40년 넘는 기간 외과 수술 2만여 건(그 중 유방암 수술 1만여 건)을 집도한 손이다. 인터뷰 중에는 손가락이 다소 수줍고 어색한 듯 움직였다. 평생 환자를 위해 쓰인 손은 유려한 제스처와 거리가 멀었다.
"의사, 환자에게 시혜한다는 자세 버려야"
양정현 센터장은 최근 신간《"나 유방암이래"》를 내놨다. 2010년작 《유방암, 진료실에서 못다한 이야기》의 업데이트판으로 유방암 진단과 치료, 수술 후 관리 등이 주요 내용이다. 2019년 망팔(望八, 71세)을 맞는 양 센터장이다. 일반 직장인이었다면 은퇴하고 한참 지났을 나이에 내놓은 책. 게다가 자서전이나 회고록도 아니다.
12월27일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지난 책이 나오고 유방암 치료법 등에서 많은 변화와 진보가 있었다"면서 "그런데도 환자들이 8년 된 책을 그대로 참고하는 모습을 내버려둬선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사로서의 인생을) 정리해가는 나이라 글 쓰는 게 점점 더 쉽지 않아지는 가운데 '오늘이 제일 젊을 때'란 생각으로 얼른 책 원고를 마감했다"며 웃었다.
새 책에서 혹시 유방암보다 '양정현' 이름 석자가 부각되는 부분이 있는지 뒤져봤으나 찾을 수 없었다. 양 센터장은 "의사는 가끔 본인이 시혜(施惠)한다는 식으로 진료와 환자 등을 대할 수 있는데, 그런 자세가 안 되도록 자꾸 채찍질할 필요가 있다"며 "환자의 한마디 한마디에 소홀했다간 큰코다친다. 환자를 스승이라 생각하고 모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유방암이래'라는 책 제목부터 의사가 아닌 환자의 말이다. 그는 "내가 유방암에 걸렸다는 심정으로 환자들이 어떤 게 궁금하고 필요할 지를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양 센터장은 성공한 의사다. 유방암 분야 전문가는 물론 명의(名醫)로도 가장 먼저 거론된다. 1973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를 거쳐 일반외과 전문의가 됐다. 국립의료원에서 12년간 일한 뒤 1994년 삼성서울병원 개원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유방암 연수는 미국 최초 암센터가 있는 로즈웰파크기념병원과 스웨덴 노벨 생리의학상 심사기관인 카롤린스카연구소 부속 단더레드병원에서 받았다. 양 센터장이 무혈수술센터장, 암센터장, 진료부원장, 외과과장 등을 맡는 동안 삼성서울병원은 국내 최고 병원으로 성장했다. 63세가 되던 2011년 양 센터장은 17년간 몸담은 삼성서울병원을 떠나 건국대병원에 둥지를 틀었다. 이후 8년간 의료원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유방암센터장으로 근무 중이다.
《SKY캐슬》 언급 "교육·의료 세태 문제 있어"
요즘도 양정현 센터장은 쉴 새 없이 환자를 마주한다. 매일 오전 7시쯤 집을 나서 병원에 출근해 진료와 수술을 반복한다. 하루 12시간 근무가 일상이다. 피곤할 법도 하지만 오히려 "환자들에게 미안하다"고 양 센터장은 전했다. 그는 "환자마다 의사와 충분히 얘기하고 싶을 텐데, 밖에도 같은 심정의 환자들이 대기한다"면서 "물리적으로 1명 당 2~3분밖에 못 보고 짧게 몇 마디만 말하려니 미안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책 속 몇몇 부분에서는 환자들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양 센터장은 커피가 유방암에 나쁜 영향을 미치진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설명하며 이렇게 외친다. "유방암 환우들이여! 구수한 커피 향내를 맡으며 커피를 음미하면서 하루를 계획하는 즐거움을 누려 봅시다." 유방암 수술을 마치고 퇴원한 뒤 집에서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 지를 놓고는 마치 환자 맘 속에 들어간 것처럼 세심하게 서술했다. 아울러 유방암 치료 이후 삶의 태도에 관해서까지 조심스러우면서도 따뜻하게 조언했다.
양 센터장에게서 여느 드라마 속 자기중심적이거나 겉 다르고 속 다른 유명 의사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혹시 바쁜 와중에 드라마도 챙겨보는지 물었다. 그는 요즘 장안의 화제인 JTBC 드라마 《SKY캐슬》을 지난주에 한 번 봤다고 했다. 해당 드라마에서 주요 남성 인물들은 명문 대학병원에서 교수로 있다. 드라마가 그리는 의사는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대한민국 상위 0.1%다. 의사의 아내들은 자녀 교육을 통해 기득권을 대물림하려 애쓴다. 이를 위해 서울대 의대는 필수 스펙으로 여겨진다. 인성, 직업적 소명 등이 낄 틈은 없다. 시청률 대박 행진 중인 이 드라마는 현 세태를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최우수 학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의대에 들어가도 부·명예와 더불어 저위험, 워라밸(일과 개인 삶의 균형)까지 담보할 수 있는 소위 '인기과'에 대부분 지원한다.
이에 대해 양 센터장은 "(성적순으로) 의대 정원을 일단 다 채우고, 그 다음 학생부터 공대 등에 들어간다. 최고 엘리트들이 의대로 향하는 게 사회에 도움 된다고 보지 않는다"며 "더군다나 (의대에 들어간 수재들이) 기초의학 연구, 신약 발명 등에 매진한다면 공헌하는 측면이 있을테지만, 그게 아니잖나. 사람 생명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 쪽만 원하는 현상은 분명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노의사의 눈빛이 단호하게 바뀌었다.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갔다.
그는 "편하고 수입이 좋은 과와 보람 있는 과는 다른 차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의대 재학 시절 양 센터장은 수술에 따른 '드라마틱'한 치료 과정에 매료돼 외과를 택했다. 그의 전공의 수련 기간 말미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된 이래 외과는 점차 외면받았다. 혹독한 트레이닝 과정, 수술실에서 살아야 하는 고됨 등에 비해 금전적 보상이 따라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양 센터장은 '외과 하길 잘했다'고 되뇌인다. 언젠가 외과가 바닥을 치고 비상(飛上)할 날이 올 거라 믿는다고 했다. 양 센터장은 자식들에겐 의대 진학을 강권하지 않았다. 그의 딸과 아들은 각자 원하는 길을 스스로 찾아 사회에서 활약 중이다.
"성실하고 존경받는 의사像 되는 게 남은 꿈"
양정현 센터장은 70대 나이에도 유방암 치료법 발전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다. 그는 초기 유방암에 대한 '침 정위 생검'(1986년)과 겨드랑이 부위에 내시경을 넣어 수술하는 '겨드랑이 임파절 내시경 수술'(1994년)을 국내 최초로 시행했다. 1996년엔 '감시림프절 생검'을 도입(1996년)해 환자들의 통증과 후유증을 크게 줄였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는 '여성 유방에 흉터를 남기지 않게 해 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와 있다. 국내 승인 절차상 문제로 '진공흡인 유방 생검'이 퇴출 위기인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진공흡인 유방 생검은 흉터를 최소화하고 빠른 회복도 도모하는 유방암 검사·치료법이다. 양 센터장은 이런 움직임에 지지를 보냈다. 환자의 신체·정신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은 그의 유방암 의사 생활 내내 지향점이자 숙제였다.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와 끝없는 탐구. 두 가지를 유지하자 유방암 치료의 1인자 타이틀은 저절로 따라왔다. 로봇, 인공지능(AI) 등을 도입한 첨단 의료기술에도 양 센터장은 항상 눈과 귀를 열어두고 있다. 그는 "절대 시대에 뒤떨어지는 의사가 되면 안 된다"면서 "앞서가는 지식을 빨리빨리 흡수해야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또 노력과 목표는 '환자'로 수렴된다.
양 센터장에게 남은 꿈은 뭘까. 그는 다시 조용히, 느릿한 말투로 말했다. "명예나 경제적인 건 원치 않는다. 과연 될지 모르겠지만, 가장 성실하고 존경받는 의사상(像)이 되고 싶다. 후배 의사들이 '나도 저 사람이 걸어온 길을 가보고 싶다'고 한 번쯤 생각할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