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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비정규직 노동자 故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
“진상조사 아직 시작도 안 해…국민이 나서지 않으면 험악한 일터 바뀌지 않을 것”

엄마는 아들을 ‘햇빛’이라 불렀다. 탄가루가 날리는 고된 일터에서 수십 일을 보내도, 엄마 앞에서만큼은 장난기 어린 웃음을 잃지 않던 아들이었다. 엄마는 그런 아들이 세상을 떠난 날에야 알았다. 공기업에 다닌다던 아들은 ‘낭떠러지 끝자락’에서 일하고 있었고, 그런 아들을 지켜줄 법과 제도는 이 나라에 없었다. 엄마는 이제 이 ‘이상한 나라’에서 살고 있는 아들들을 지키기 위해, 기업·국회·정부와 싸워볼 심산이다.  지난해 12월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목숨을 잃은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24)의 어머니 김미숙씨(50)를 1월2일 서울 양천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씨는 1시간에 걸친 인터뷰 동안 한 번도 흐느끼지 않았다. 대신 그의 목소리에는 결기가 묻어났다. 김씨는 “용균이의 죽음 이후에도 진상규명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며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면 우리 아들들은 계속 끔찍한 일터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
ⓒ 시사저널 고성준

“‘김용균법’ 솜방망이 법안…정치인이 국민을 노예 취급”

김용균씨가 세상을 떠난 지 23일, 온 나라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실제 ‘김용균법’이라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안이 28년 만에 지난해 12월27일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는 유해·위험한 도금이나 중금속 제련 등의 작업은 사내 도급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도급인이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처벌 수준을 끌어올렸다. ‘제2의 김용균’을 막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국회의 응답에도 엄마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기대가 커서였을까. 비정규직을 위한다던 ‘김용균법’이 정작 우리 사회 ‘김용균들’의 요구사항을 담아내지 못했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김씨는 인터뷰 내내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 법안을 살펴보면 ‘위험 외주화’ 금지 대상에서 김용균씨가 참변을 당했던 발전 정비 업무가 제외되는 등 노동계가 요구했던 비정규직 보호 조항들이 신설되지 않았다. 김씨는 “(김용균법은) 이제 겨우 첫발을 뗀 거다. 그러나 법대로라면 상황은 나아진 게 없다. 지금도 발전소에 가보면 (위험한 작업 환경이) 달라진 게 없더라. 만약 같은 사고가 발생해도 기업이 빠져나갈 구멍이 여기저기 뚫려 있는 솜방망이 법안”이라며 “이렇게 되면 (김용균법이) 만들어지고 난 이후에도 또 다른 용균이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야당이 해당 법안을 후퇴시킨 주범이라고 토로했다. 앞서 정부는 사업주가 안전조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가 노동자가 숨지면 최소 1년 이상 징역형을 받도록 하는 처벌의 하한선을 두려 했지만, 경영계 등 보수진영의 반발로 포기했다. 김씨는 “야당이 법안을 가로막고 후퇴시키는 것을 보면서, 정치인들이 국민의 안전이나 생명이 아닌 기업의 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이어 김씨는 “이런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게 정말 창피했다. 권력자들 앞에 선 노예가 된 기분이었다”며 잡고 있던 종이를 움켜쥐었다.   온 국민이 김용균씨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청와대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앞서 지난해 12월28일 김의겸 대변인을 통해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는 김용균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태안 서부발전소 산재로 사망한 고 김용균님의 모친 등 유족을 만나 위로와 유감의 뜻을 전할 의사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김씨는 철저한 진상조사 계획이 수립되지 않는 한, 대통령을 만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경찰은 현재 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서부발전 관계자들과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 관계자들을 불러 사건 진상을 파악하는 중이다. 김씨는 사측의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한 조사는 의미가 없다며, 진상조사 과정에 유족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만남 시기상조…아들을 위해 싸울 것”

김씨는 “진상규명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무엇보다 회사를 믿을 수가 없다. 회사가 처음부터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정황이 너무 많고, 회사 측에선 ‘용균이의 잘못도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며 “우리 쪽에서 원하는 사람들이 합류를 해서 (진상을) 밝혀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한 (정부 차원의) 논의가 먼저 이뤄지면, 그 뒤에 (대통령이)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들어보고 싶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한 노동자의 죽음이 ‘특혜’가 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즉, 관련 법안이 통과된 상황에서 대통령과의 만남에 조건까지 내거는 것은 다른 산업재해 피해자들과 비교해 ‘역차별’이라는 것이다. 아들의 죽음을 온전히 슬퍼하지 못하는 엄마에게, 이 냉혹한 여론이 버겁지는 않을까. 이에 김씨는 “내가 뚫어야 할 문제다. 반드시 해내야 하고”라며 덤덤히 답했다. 이어 그는 “이제 그만하라고 하는데, 용균이가 겪은 일은 우리가 가만히 있어서 일어난 일이다. 가만히 있는 우리가 바보였다. 국민이 나서지 않는다면 험악한 일터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내내 김씨는 커피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건강이 많이 악화된 탓이다.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낼 때만 눈에 힘이 실릴 뿐, 아들 얘기에는 손을 연신 떨었다. 김씨는 찬물을 겨우 몇 모금 들이켠 뒤 “(입맛이 없어도) 최대한 물이라도 말아서 밥을 챙겨먹고 있다”고 말했다. “부모에게 자식은 햇빛이다. 그 빛을 이렇게 허무하게 잃고 나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다. 단지 이 느낌을 다른 부모가 겪지 않게 해 주고 싶은 게 지금의 바람이다. 아직도 우리 용균이보다 험악한 곳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들이 많이 있다. 나라가 왜 이렇게 굴러가나. 나는 정말 몰랐다. 우린 지금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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