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민소설’ 《태백산맥》의 조정래 작가가 제시하는 2019 대한민국의 길(中)
[편집자주]
올해로 창간 30주년을 맞은 시사저널은 ‘2019 혼돈의 대한민국, 원로에게 길을 묻다’란 특별기획을 연재합니다. 그 첫 회로 조정래 작가를 만났습니다. 조정래 작가와의 특별 대담을 통해 원로 작가가 제시한 우리 사회의 진단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上·中·下 3편에 걸쳐 나눠 소개합니다.
조정래 작가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빼고는 계속 반(反)정부 문화계 인사로 분류돼 왔다. 박근혜 정부가 만든 문화계 블랙리스트에도 소설가 이외수, 배우 문성근·명계남, 영화감독 이창동·박찬욱·봉준호 등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보수정권하에서 우리 사회가 권위주의 체제로 회귀할 기미가 보일 때마다 조 작가는 펜을 잠시 내려놓고, 거리로 나와 반대 목소리를 외쳤다.
보성에서 가진 독자와의 만남에서 그는 “순수문학이라는 것 자체가 현실을 외면하려는 일제시대 권위주의 산물”이라면서 “문학은 시대를 반영해야 하고 작가라면 모름지기 현실의 문제와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작가가 다음 작품을 쓰면서 국가의 존재 이유를 고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직 구상 단계지만, 그 이후 그가 고민하는 것은 ‘삶과 죽음’이라는 실존적 가치다.
■ 현 시국에 대한 작가의 생각
최근 정세가 위기라고 보시는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긴 힘듭니다. 위기적인 것도 있고, 현상적인 것도 있어요. 그 두 개가 병립(竝立)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위기 때 그걸 해결하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게 문화국가예요. 대한민국은 문화국가입니다. 위기라고 생각하면 해결합니다. 위기라는 소리만 하지 말고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경제문제가 심각할 뿐이지, 나머지 문제는 잘되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는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이념적 논쟁이 심하지 않습니까.
“민주사회에서 시위는 계속 있어야 합니다. 시위라는 게 국민의 ‘직접 발언’ 아니겠습니까. 왜 시위를 사회 불안요인이라 말합니까. 그게 보수 세력들의 잘못된 생각이에요. 미국 백악관에서는 매일 시위가 있습니다. 수가 적을 뿐이죠. 시위를 나쁘게 보는 건 군사정권 때 생각이에요. 그 시위가 없어지도록 노력하는 게 정권이 해야 할 일입니다.”
7080세대 노년층의 시국 시위는 어떻게 보시나요.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생각을 고쳐먹어야죠. 민주주의 사회가 뭔지를 몰라서 하는 소립니다.”
건국절 논란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이신가요.
“보수 세력이 ‘우리 국부(國父)는 이승만 대통령’이라고 말하는데 뭐가 잘됐는지 아십니까.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 8월15일 대통령에 취임할 때,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기념일’이라고 표기했어요. ‘건국’이 아니라 ‘수립’이라고 말이죠. 이승만 정권은 정부를 수립한 겁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상해 임시정부 때 만들어졌습니다. 우리 헌법 전문에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돼 있지 않나요.”
전작 《들꽃도 풀이다》에서 교육 세태를 꼬집었습니다. 이 문제 말고도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뭘까요.
“대한민국이 교육 때문에 이만큼 경제 발전을 이뤄낸 건 맞습니다. 교육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수단입니다. 교육이 없다면 인간은 짐승이에요. 지금까지 경제는 흉내 내기 위주였습니다. 남의 기술을 다 베끼고 말이죠. 지금부터 새롭게 제2의 도약을 하려면 창의적인 생각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대한민국도 이제 새로운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미국이 강국인 것은 무력만 세서가 아니에요. 세계 발명특허의 75%를 미국이 갖고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4차 산업 시대로 가려면 교육이 바뀌어야 합니다. 창의적 교육이 필요합니다. 암기로는 안 돼요. 암기는 베끼는 걸로 끝납니다. 그런 점에서 토론식 창의교육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암기는 기본일 뿐이죠. 여기에 창의가 더해져야 합니다. 미국이 그렇게 했기에 저렇게 된 겁니다.”
평소 작품의 주제를 정할 때 기준이 있으신가요.
“인간을 위한 문학을 하자는 게 제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문학은 곧 인간에 대한 관심사입니다. 인간에 대한 탐구죠. 그런 점에서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제 소설의 소재가 됩니다.”
독자들의 호응이 좋은데, 젊은 독자들과 호흡이 잘 맞는 이유는 뭔가요.
“치열하게 현실에서 뭐가 필요한지를 찾고자 노력해서가 아닐까요.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찾으려 노력합니다.”
■ 한반도 통일
젊은 층의 통일관이 약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거예요. 당연할 수 있는 기억상실, 망각을 깨우쳐주는 게 역사교육입니다. 그건 지식인들의 책무예요. 일제 강점기가 뇌리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서 기념식을 하지 않나요. 단순히 젊은이들을 책망할 게 아니라 다시 환기할 수 있도록 사회, 국어, 역사교육을 제대로 시켜야 합니다. 80년대 운동의 치열함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2000년대 들어와서는 젊은이들이 의식이 약해졌다고 비난합니다. 그건 비난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선배들이 만들어준 혜택이에요. 역사의 DNA는 어느 순간 약해질 뿐이지, 다시 그런 시대가 오면 더 증폭돼 폭발합니다. 역사는 그냥 흘러가는 게 아닙니다. 항상 DNA 속에 응축돼 남습니다. 그게 역사의 힘이죠.”
왜 통일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우리가 한민족을 이뤄 5000년을 살았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우리와 말이 통하는 곳이 있나요. 북한밖에 없어요. 그게 동질성입니다. 통일이 되면 우리 삶이 두 배, 세 배 좋아집니다. 경제적인 부분도 그렇고, 민족적으로도 지금 불구 아닙니까. 5000년을 갈이 살던 사람들이 70년을 따로 살고 있잖아요.”
조심스러운 질문이지만 언제쯤 통일이 올까요.
“통일을 서두르면, 탈이 나고 병이 납니다. 북한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 우리가 서두르는 겁니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이렇게 본다고 해요. 두 개의 대립된 정치집단이 만들어낸 갈등과 모순의 문제점은 오늘부터 해결하려는 그 시점부터 지나온 시점까지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죠.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위원장에게 ‘우리 평화롭게 함께 삽시다’라도 해도 70년이 흘러가야 가능합니다. 자유왕래를 하고, 얼마 남지 않은 이산가족들이 개성이나 금강산에서 자유롭게 만나야 합니다. 남남북녀가 자유롭게 결혼을 하는 건 어떨까요. 정치적 통일을 당장 해야 하나요. 문물, 문화를 교류하고 자유왕래하면 되지, 통일을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5000년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5000년을 살아가야 하지 않습니까. 통일을 해야 한다는 필연성만 갖고 있으면 됩니다.”
남북 양 정상이 함께 백두산에 올라 손을 잡는 모습을 보면서 《태백산맥》 작가로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소설 《아리랑》을 쓸 때, 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일제 강점기로 돌아간다면 나는 총칼을 들고 일본과 싸우리라.’ 《태백산맥》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이 완성시켜야 하는 과제인 건 틀림없습니다. 언젠가 통일이 되면 내 사랑하는 손자들과 그들의 친구들과 함께 걸어서 백두산 꼭대기까지 가고 싶어요. 우리 민족 전체의 삶이 강건하게 다시 말해, ‘예수적 부활’을 하는 길은 통일밖에 없거든요. 전 우리 국민이 하루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아니 이게 너무 많다고 생각되면 한 달에 한 번쯤은 통일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최근 문단에서 통일을 소재로 한 작품이 줄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분단 소설은 70년대 제일 강력하게 많이, 80년대 중반까지 다뤄졌어요. 그러고는 점점 적어지고 있는데요, 70년대 중반 발표되는 소설의 70%가 분단을 소재로 했어요. 지금은 거의 없는데, 이유는 많이 다뤄서일 거예요. 각 분야에서 이야기를 총체적으로 거의 했기 때문에 후대 작가들은 더 이상 쓸 게 없는 게 아닐까요. 분단 문제에 대해서는 소설적으로 완성된 셈이죠. 이는 필연적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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