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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읽는 시간》 펴낸 정신과 의사 문요한씨

“오랫동안 심리치료를 해 오며 지켜보니, 많은 분들이 상담하러 오는 주된 이유가 인간관계의 어려움이었다. 그런데 그 어려움은 상대와 멀어진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만나도 계속되는 경우가 많다. 그건, 자신도 모르게 반복되는 관계의 패턴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이성과 힘들게 헤어지고 나서도 또 자기를 무시하는 이성을 만나는 사람도 있고, 이게 마지막이라면서도 결국 노후자금까지 다 털려가며 번번이 자식의 카드빚을 갚아주는 부모도 있다.”

심리학 에세이 여러 편을 펴내 작가로도 이름을 알린 정신과 의사 문요한씨가 최근 인간관계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해법을 담은 《관계를 읽는 시간》을 펴냈다. 문씨는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생을 통해 사람으로 완성돼 간다”고 봤다. 그렇기에 사람의 변화와 발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2004년부터 이 시대 심리학의 과제는 ‘고통의 치유’를 넘어 ‘마음의 수양’과 ‘삶의 성장’에 있다고 보고, 정신과 임상의의 관점에서 벗어나 성장심리학자로서 글을 쓰고 상담을 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고 있다.

 
《관계를 읽는 시간》 문요한 지음·더퀘스트 펴냄·320쪽·1만6000원 ⓒ 더퀘스트 제공


“관계마다 ‘건강한 거리’ 되찾아 살아가라”

“사람들은 늘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면서 ‘내 맘 같지 않다’고 한탄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관계의 틀’ 때문이다. 일정한 모양의 빵을 계속 구워내는 빵틀처럼 인간관계에는 틀이 있다. 이 틀로 말미암아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비슷한 관계방식을 되풀이한다. 문제는 그 기본 틀이 어린 시절에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 기본 틀은 ‘아이-어른’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것이기에 ‘어른-어른’의 관계에는 맞지 않는다.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아이-어른’의 관계틀을 ‘어른-어른’의 관계틀로 바꿔야 한다.”

문씨는 상대와 거리가 가까워지면 전혀 의도하지 않았어도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인간관계의 본질임을 직시하라고 권한다. 누구나 그런 것이니 내버려두라는 식의 공허한 위로가 아니다. 문씨는 위로하기보다 필연적인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관계마다 ‘건강한 거리’를 되찾아 나답게 살아가라고 조언한다.

“여성의 경우 사회성의 뇌가 발달돼 있어 남성들에 비해 인간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이 점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관계 때문에 더 많은 행복을 느낄 수도 있지만 반대로 관계 때문에 더 많은 고통을 느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집단보다 개인에게 중점을 두는 시대의 흐름 속에 자아와 관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무척 중요해졌지만, 여성들은 둘 다 잘하려는 마음을 충족시키려다 결국 둘 다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남녀 공히 그렇지만 특히 여성의 경우, 자신의 감정과 관계 역량을 잘 파악하고 그에 따라 바운더리를 조절해서 자아와 관계의 균형을 맞춰가는 것이 무엇보다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필요하다.”

문씨의 해법은 ‘변화’의 심리학이다. 《관계를 읽는 시간》에서는 그 변화의 출발점으로 ‘관계의 틀’에 주목한다.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되풀이하고 있는 관계방식, 이것을 이해하고 바꾸지 않는 한, 관계에서 겪는 괴로움도 반복된다. 그러면 관계틀은 어떻게 알아보고 바꿀 수 있을까? 그 여정은 ‘바운더리’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바운더리’라는 말은 물리적 경계라는 의미로 많이 쓰지만 ‘심리적 바운더리’라는 말은 어쩐지 생소한 분들이 많을 것이다. 심리적 바운더리란 쉽게 말하면 우리의 피부가 내 몸과 몸의 바깥을 구분해 주는 것처럼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해 주는 자아의 경계다. 이 책에서 바운더리는 ‘경계(border)’의 의미와 함께 ‘통로(passage)’의 의미를 포함한다. 즉, 건강한 바운더리를 가진 사람은 ‘자기보호’와 ‘상호교류’가 조화를 이루지만, 건강하지 못한 바운더리를 가진 사람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거나 아니면 둘 다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아이-어른’ 관계틀 ‘어른-어른’으로 바꿔야”

인간관계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문제는 다양해 보이지만 결국 모두 하나의 출발점에서 시작한다. 바로 ‘바운더리’가 건강하게 세워지지 못했고, 그로 인해 ‘자아’와 ‘관계’가 균형을 잃었다는 것이다. 문씨는 바운더리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크게 두 갈래로 나눈다. 주로 애착 손상으로 인해 자아발달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와 인간관계의 교류에 왜곡이 일어나는 경우다. 자아발달의 왜곡(미분화, 과분화)과 관계교류의 왜곡(억제형, 탈억제형)이라는 두 변인을 따라 순응형·돌봄형·지배형·방어형이라는 4가지 역기능적 관계틀이 등장한다.

“바운더리는 사람이 태어나 어린 시절 양육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개별화’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건강한 바운더리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중 하나가 ‘애착’이다. 최근 심리서나 육아서에는 ‘애착’ 개념이 상당히 비중 있게 등장하다 보니 ‘안정적 애착이란 애착손상을 피하는 것’이라는 오해를 사곤 한다. 하지만 애착은 손상을 주지 않는 것보다 ‘복구’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안정 애착’의 신화에서 벗어나는 것부터가 관계의 틀을 재구성해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첫걸음이다.”

이 책의 부제는 ‘나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바운더리의 심리학’이다. 관계에서 번번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나의 관계틀을 재구성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 관계에서 ‘자기결정권’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문씨는 어느 관계에서든 ‘자신을 돌보면서 상대와 친해지고, 당신이 당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것처럼 상대를 상대의 모습대로 살아가도록 존중하고, 갈등을 피하기보다 갈등을 풀어갈 줄 알고, 상대를 염두에 두되 원치 않는 것은 거절하고 원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표현하라’고 주문한다.

“바운더리를 제대로 세운다는 것은 이기적인 것도, 폐쇄적인 것도 아니다. 솔깃하게 들리는 요즘 트렌드처럼 상처받지 않기 위해 늘 거리를 두겠다는 결심과도 다르다. 바운더리가 건강하면 관계는 내 편이 된다. 관계에 따르는 경험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고 자기표현이 가능한 관계를 회복할 때 우리는 진짜 건강하고 행복한 관계를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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