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언론상] 편견으로 고통받는 여성 중·노년층 성폭력 피해자, 2차 피해 심각

 
시사저널이 주최하는 대학언론상이 올해로 7회째를 맞았다. 올해는 사상 최악의 폭염 속에서도 짧은 바지를 입지 못하는 집배원의 현실적인 고충을 직접 체험한 르포 기사 ‘바지 속 열섬 부르는 집배원복’(경희대 오문영·조아라)이 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중·노년층 여성 문제에 대한 성범죄를 다룬 ‘피해자에게 질문하는 사회’(성균관대 권예진·김여진)와 과거 언론에 알려진 대구희망원 사태에 대한 후속 취재 격인 ‘대구희망원은 어떻게 됐을까’(이화여대 홍수민·김수현) 등이 장려상을 각각 수상했다. 
 “‘젊은 애가 뭐가 아쉬워서 아줌마를 건드리겠어요’라고 말했다는 거예요.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고 얘기하러 간 건데 경찰관 반응이 그러니까 피해자분은 울기만 하다 나오신 거죠.”


중·노년층 성폭력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마녀’라는 닉네임으로 알려진 이아무개씨를 만났다. 이씨는 8년째 성폭력 피해자와 연대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성폭력은 20대와 30대 등 젊은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노년층 여성에게 발생하는 성폭력은 오히려 외면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50대 여성 A씨는 가게 운영을 위해 고용한 아르바이트생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어렵게 찾아간 경찰서에서는 성폭행 피해를 주장하는 A씨의 말을 의심했다. “젊은이가 왜 나이 든 사람을 성폭행하겠냐”는 이유였다. 40대 여성 B씨는 가게의 단골 고객에게 성폭행을 당했지만 역시 피해를 주장하기 쉽지 않았다.  도움을 요청하러 간 성폭력상담소에서도 2차 피해를 겪어야 했다. 담당 의사를 여자로 바꿔달라고 요청했지만 “아줌마가 뭘 그렇게 가리냐”는 면박까지 들었다. 이씨는 “누구나 다 성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며 “하지만 사회적으로 중·노년층은 피해자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노년층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2차 피해


중·노년층 대상 성범죄는 이미 6년 전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12년 10월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한 병원의 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병원의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던 60대 여성이었다. 피해자는 법원이 가해자 원아무개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유서에는 “내가 아이거나 젊은 여자였다면 그놈이 구속됐을 것”이라는 문장이 남겨져 있었다. 

 가해자 원씨는 2015년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후 현재 출소했다. 당시 사건을 취재했던 평택 지역 신문사 강아무개 기자는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아가는 세간의 소문에 피해자가 모멸감을 느낀 것”이라며 “‘어머니뻘 나이의 여성을 성폭행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 많았다”고 전했다. 


중·노년층 성폭력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알린 직후부터 2차 피해에 시달린다. 가장 먼저 ‘나이 든 사람을 왜 성폭행하겠냐’는 의심에 직면하게 된다. 또 ‘아줌마, 할머니니까 수치심이 덜할 것’이라고 전제해 피해자의 고통을 유난스럽게 보기도 한다.


중·노년층 피해자가 겪는 2차 피해를 알아보기 위해 중·노년층의 성폭력 피해를 보도한 기사 18건의 댓글 총 417개를 분석했다. 90대 여성을 상대로 성폭행을 시도한 사건과 70대 여성을 성폭행하려다 숨지게 한 30대 남성에 대한 기사 등이다. 한국여성상담센터의 검토를 거친 결과 2차 가해 댓글이 총 댓글의 23%였고, 그중 68%에는 피해자의 나이에 대한 언급이 포함돼 있었다. 

 ‘할머니를 보고 성욕이 생기다니 신기하다’ ‘어디 여자가 없어서 할머니를 건드리냐’ ‘할머니랑 관계가 가능하냐’ 등 조롱이 대다수였다. 현혜순 한국여성상담센터장은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댓글이 일정한 어조로 나타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중·노년층에게 갖는 편견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사회의 왜곡된 시선은 비단 인터넷 댓글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편견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날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한샘 성폭행 사건을 변호했던 김상균 법무법인 태율 대표변호사는 “중·노년층 피해자의 경우 상담 중 재판을 포기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말했다. 수사 과정에서 피해 사실 자체를 의심받다 보니 수치심에 고소를 취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중·노년층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이 만연한 이유는 무엇일까.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은 연령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성범죄의 원인을 피해자에게서 찾는 데 익숙하다. 여성가족부가 2016년 7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폭력 관련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34.4%가 ‘성폭력(강간)을 당한 여성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응답했다. ‘여자들이 조심하면 성폭력을 줄일 수 있다’는 응답은 48.7%였다. 피해자 입장에 있는 여성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인식이 70%를 넘은 것이다. 모두 범죄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묻는 사회의 인식을 보여주는 지표로 2차 가해에 해당한다. 


현혜순 센터장은 이처럼 피해자에게서 원인을 찾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젊은 여자는 ‘짧은 치마를 입어서’, 중·노년층은 ‘그들이 꼬셔서’ 피해를 당했다고 합리화하는 것”이라며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는 나이에 상관없이 일반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노년층에 대해서는 나이와 신체 능력에 대한 2차 가해까지 추가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덧붙였다.


ⓒ 시사저널 임준선

 

중·노년층 성폭력 피해자, 의심받아 숨는다


중·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서 집계한 성범죄 통계를 분석한 결과, 40대 이상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2012년 약 2900건에서 2016년 4300건으로 1.5배가량 증가했다. 전체 성범죄에서 40대 이상 피해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14.9%에서 19.5%까지 늘었다. 성범죄 피해자 5명 중 1명은 40대 이상 중·노년층이란 의미다. 

 일각에서는 사회 분위기상 집계되지 않은 사건도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노년층 피해자의 경우 주변의 시선 때문에 피해 사실을 알리기 꺼린다고 말한다. 한국성폭력상담센터에 따르면, 40대 이상 피해자가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는 20, 30대에 비해 훨씬 적다. 조은희 상담사는 “중·노년층 피해자는 사람들이 피해 사실을 믿지 않거나 심지어 듣고 싶지 않아 한다고 느낀다”며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피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성범죄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더 큰 상처를 받는다. 인터뷰를 진행한 성폭력상담소 상담사들이 입을 모아 한 말이다. 중·노년층 성범죄 피해자는 그중에서도 취약한 존재다. 신고 단계부터 ‘나이 든 여성을 왜 성폭행하겠냐’는 막연한 의심을 견뎌야 한다. 나이를 이유로 한 수많은 2차 가해에도 무뎌져야 한다. 취재를 위해 연락한 세 곳의 성폭력상담소에서는 “중·노년층 피해자에게만 집중해 인터뷰를 하기는 처음”이라며 중·노년층의 피해는 언급도 제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중·노년층 성폭력 피해자를 향한 의심은 일관적이다. 대부분 그들의 나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노년층 피해자에게 쏟아지는 의문이 성범죄 피해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아줌마를 왜?”라며 피해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회다.

  

※연관기사

☞중·노년층 여성 성범죄 피해자에게도 관심을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