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日, 슈퍼스타 영입…바라만 보는 韓
세계적인 스트라이커 디디에 드록바가 한국 무대에서 뛴다? 이 꿈같은 장면이 현실이 될 뻔했다. 프랑스의 스포츠 전문매체 ‘르 디스포르’는 최근 “K리그의 제주 유나이티드가 드록바에게 영입 제안을 했다. 연봉은 250만 유로(약 30억원)다”라고 보도했다. 결론만 보면 뒷북이었다. 이미 제주는 보도 시점에 아시아 국적 선수를 영입할 수 있는 아시아 쿼터를 제외한 나머지 외국인 선수 진용 편성을 마친 상태였다.
영입을 추진했던 건 사실이다. 제주의 조성환 감독은 보도가 나온 뒤 “드록바의 에이전트와 접촉했고 구체적인 계약 조건까지 주고받았다”고 말했다. 6년 만에 AFC 챔피언스리그에 나서면서 올겨울 K리그에서 가장 적극적인 전력 보강을 추진해 온 제주는 드록바를 주목했었다. 만 38세로 은퇴를 앞두고 있지만 화려한 경력과 ‘드록신(드록바+신)’으로 불리는 높은 인지도가 매력이었다.
유럽 무대를 떠나 2015년 후반기부터 1년 반 동안 북미 메이저리그사커(MLS)의 몬트리올 임팩트에서 뛴 드록바는 최근 자유계약 신분이 됐다. 이적료가 없어 제주로서는 연봉만 감당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는 유럽 최고의 무대는 아니었지만 MLS에서 21골을 넣으며 기량을 유지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올 시즌 초대권 근절을 선언하며 관중 동원과 마케팅에도 열을 올리는 제주에 드록바 영입은 경기력과 상품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카드였다.
제주는 드록바가 몬트리올에서 받았던 것과 같은 수준의 연봉을 제시했다. 지난 시즌 17억원의 연봉을 받으며 K리그 최고의 몸값을 자랑했던 레오나르도(당시 전북, 현 UAE 알자지라)의 2배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그러나 에이전트의 확답은 오지 않았다. 조성환 감독은 “다른 리그의 조건도 재는 것 같았다. 챔피언스리그를 위해 2월 중순까지 선수 등록을 마감해야 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숨겨 온 안타까움을 털어놨다.
세계적 별들이 아시아로 몰려오는데…
해프닝으로 끝난 제주의 드록바 영입설이 더 아쉬운 이유는 주변국의 상황 때문이다. 황혼기에 있는 드록바보다 더 젊고 비싼 슈퍼스타들이 아시아로 몰려오고 있다. 그들이 향하는 무대는 중국이다. 중국 슈퍼리그는 올겨울 이적 시장 최고 이적료를 기록했다. 상하이 상강이 브라질 국가대표 미드필더 오스카를 첼시에서 데려오며 858억원을 지불했다. 그들의 라이벌인 상하이 선화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박지성의 절친으로 유명한 카를로스 테베스를 590억원의 이적료에 영입했다.
더 큰 화제가 된 것은 테베스의 연봉이었다. 매주 9억원을 수령, 종전 세계 최고 주급을 받던 호날두와 메시(5억4000만원)를 가볍게 넘어섰다. 세계 최고 연봉을 받는 선수가 축구의 중심인 유럽이 아닌 중국에서 나왔다는 것은 전 세계에 충격파를 안겼다.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고속성장을 하고 있는 중국의 영향력이 축구를 강타한 것이다. 중국 슈퍼리그 팀들의 선수 영입을 둘러싼 과열 경쟁이 대표팀의 부진한 경기력과 대비되자 시진핑 주석이 나서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자 구단은 테베스의 연봉이 지나치게 부풀려졌다고 공식 해명해야 했다.
일본 J리그도 스타플레이어 영입전에 가세했다. 독일 국가대표였던 루카스 포돌스키가 비셀 고베, 네덜란드 국가대표 로빈 판 페르시가 히로시마로 이적할 수 있다는 설이 제기됐다. 최근 영국의 미디어 그룹 퍼폼과 초대형 계약(10년 2조2000억원)을 맺으며 자금력이 증가하자 팬들의 눈높이를 맞출 이름값 높은 선수 영입을 적극 추진하는 모습이다.
이런 흐름 앞에서 K리그의 현실은 초라할 뿐이다. 지난해 전북이 판 페르시 영입을 노린다는 루머가 있었지만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드록바 영입을 실제로 추진하며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지만 주변국의 적극성과는 비교할 수 없다. 잠재력이 충만한 진흙 속의 진주를 찾아 적절한 타이밍에 선수를 팔아 이적료를 챙기는 ‘셀링 리그’에서 제자리걸음 중이다. 올겨울에도 K리그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평가받았던 레오나르도(전북)와 아드리아노(서울)가 각각 UAE와 중국 2부 리그로 이적했다.
국내 축구 팬들은 셀링 리그의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화려함을 찾기 어려운 K리그에 점점 실망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매 주말 TV 중계를 통해 전파를 타는 유럽 최고 무대의 수준 높은 플레이에 눈이 향한다. ‘재미없는데 왜 보느냐’는 편견은 K리그가 흥행몰이를 하는 데 마주한 가장 벅찬 장애물 중 하나다. 중국과 일본이 하는데 왜 우리는 하지 못하냐는 상대적 박탈감도 커진다. 외국인 선수뿐만 아니라 대표팀의 간판들도 중국의 물량 공세에 끌려가고 있다.
자극제 필요한 K리그
구단들은 팬들의 이런 불만이 현실과는 한참 동떨어진 희망사항이라고 말한다. K리그 구단의 예산은 중국의 4분의 1 수준, 일본의 절반 수준이다. 오스카나 테베스의 이적료만 해도 K리그 최상위 팀 2~3년 치 예산이다. 선수단 전체 연봉에 해당하는 돈을 특급 외국인 1명을 위해 부담하긴 어렵다. 한 관계자는 “스타마케팅은 좋은 기폭제가 될 수 있지만 지금은 비용만 쓰고 끝나는 격이다. 당장 1년은 무리할 수 있지만 그다음이 문제다”며 현실을 토로했다.
스타마케팅의 효과를 실질적 수익으로 바꿀 수 있는 구조와 시장이 없다는 게 K리그의 문제다. 유럽은 수만 명의 평균 관중과 그 몇 배가 넘는 팬덤, 그들을 주목하는 기업의 후원이 뒤따르는 이익 창구가 있다. 1~2명의 선수 영입 실패는 금방 만회가 가능하다. 한국은 투자가 아닌 ‘지름’으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다 보니 “집은 월세인데 슈퍼카 몰라는 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만 하다가는 아무것도 못하고 선수 공급처로만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무리한 투자까지는 아니라도 팬들의 눈길을 끌 만한 선수 영입을 과감히 시도해 봐야 한다는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스포츠는 무형의 가치를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산업이고, 그 중심에는 반드시 스타플레이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주가 드록바 영입을 추진했던 것은 그 효과를 기대하면서 구단이 감당할 만한 비용이라고 판단해서다. 접점을 찾을 수 있다면 한두 명의 월드스타를 영입해 화제를 일으키는 것이 위축된 K리그의 현실에 필요한 자극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