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본선 48개국 체제로 확대…규모 확장 vs 경기력 저하
단일 종목으로는 세계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인 축구 월드컵이 21세기 들어 가장 극적인 변화를 맞는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1월10일 스위스 취리히의 FIFA 본부에서 열린 위원회에서 월드컵 본선 진출국을 현재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안을 만장일치로 가결시켰다. 이 변화가 적용되는 시점은 오는 2026년 대회부터다. 지난해 2월 부패 스캔들로 물러난 제프 블라터 전 FIFA 회장을 대신해 세계 축구의 수장이 된 지아니 인판티노 회장의 중요 공약이었다. 유럽축구연맹(UEFA) 사무총장 시절 유럽선수권의 참가국 확대와 전 유럽 동시 개최의 파격적인 변화를 현실화시킨 그는 FIFA에서도 비슷한 안으로 개혁의 첫발을 내디뎠다.
현재 월드컵은 32개국이 본선에 참가한다. 여기서 16개국이 늘어나기까지 38년이 걸렸다. 월드컵은 5회 대회인 1954년 스위스 월드컵부터 28년간 16개국 본선 체제를 유지했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때 24개국 체제로 증가했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부터는 32개국 체제로 돌입했다. 16개국 체제는 유럽과 남미만의 잔치였다. 24개국 체제는 조별 리그와 녹아웃 토너먼트를 하기에 불편함이 있었다. 외형적 규모가 가장 오래 유지된 32개국 체제는 그만큼 안정적인 시스템이었다. 아프리카·북중미·아시아 팀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8개 조에 4개국씩 배정해 조별리그를 치르고 각 조 2위까지 토너먼트에 돌입하는 16강전 시스템은 깔끔했다. 인판티노 회장은 이런 검증된 시스템에 왜 손을 대는 것일까.
그들만의 월드컵에서 모두의 월드컵으로
첫 번째는 명분이다. FIFA 회원국 211개국 중 월드컵 본선 출전 경험을 누린 곳은 77개국이다. 그중 2회 이상 참가 경험은 57개국이고, 5회 이상은 29개국에 불과하다. 20회의 월드컵을 치르는 동안 본선 출전을 경험한 팀은 극히 제한적이다. 세계 축구의 축제라는 월드컵이 실제로는 그들만의 월드컵이라는 지적을 부정할 수 없는 기록이다. 48개국 체제로 돌입할 경우 아프리카·아시아·북중미는 많게는 4장, 적게는 3장의 출전권 확대를 노릴 수 있다. 그동안 월드컵에서 외면받은 국가들이 초대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이번 결정에 제3세계권 대륙이 대체적으로 환영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다음은 실익이다.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는 월드컵의 상업적 가치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FIFA 내부보고서에 따르면, 출전국 확대로 거두게 될 2026년 월드컵(개최국 미확정)의 예상 수입은 7조7000억원에 이른다. 이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의 예상수입보다 20%나 증가한 수치다. 늘어난 참가국의 중계권료 수입이 핵심이다. 특히 FIFA에 미개척 시장으로 통하는 중국과 인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중국은 한국과 일본이 공동개최로 예선에 참가하지 않은 2002 한·일월드컵 외에는 본선에 나선 적이 없다. 축구굴기라는 국가 차원의 정책을 앞세워 축구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도 A조 최하위다. 참가국 확대로 월드컵 본선행 가능성이 가장 커질 수 있는 케이스다. 인도는 최근 자국 프로 리그를 재편하고 유명 선수를 영입하며 흥행몰이에 도전 중이다. 총 25억 명에 달하는 새로운 거대 시장이 월드컵 본선으로 유입된다면 월드컵은 새로운 성공 시대를 맞을 수 있다. 인판티노 회장은 이 수입을 다시 각국 축구협회에 재분배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지지를 얻어냈다.
경기력 저하 예고, 월드컵 가치 무너진다?
확실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이번 개최국 확대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독일 분데스리가 등 200여 개 클럽으로 구성된 유럽클럽연합(ECA)은 이미 이번 결정에 반발했다. 월드컵 대회 기간과 경기 증가로 휴식기가 줄어 그 여파가 리그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이다. FIFA는 이런 반발을 줄이기 위해 연 단위의 A매치 일정을 사전에 예고하고 열흘간의 A매치 윈도 동안 동일 대륙 내에서의 경기만 가능하게 하는 등 보완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대표팀 차출 동안 부상을 입는 선수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48개국 체제는 월드컵 기간만 열흘 이상 증가시킨다. 소집 기간을 포함하면 리그 운영에 타격이 커진다.
언론과 팬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보내고 있다. 새로운 기회를 얻은 팀들의 월드컵 참가는 긍정적인 의미지만 전반적인 경기의 질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열린 유로 2016은 개최국 확대로 인한 경기력 저하를 예고한 대회였다. UEFA의 전체 회원국(55개국) 중 절반에 가까운 24개국이 참가한 유로 2016은 수비 일변도의 축구를 펼치는 약팀들의 증가로 재미가 떨어졌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전체 51경기 중 무승부가 14경기였고, 아예 득점이 나오지 않은 경기도 6경기였다. 챔피언 포르투갈은 90분 기준으로 단 1승6무를 거두고도 정상에 올랐다. 지난 브라질 월드컵 당시 4.5장이 배정된 아시아 참가국들은 본선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며 유럽을 중심으로 한 언론들의 비판 공세를 받았다.
48개국 본선 시스템의 한계도 지적된다. 조편성이 3개국 16개조로 나뉘어 예선을 치를 경우 그 재미가 떨어진다. 조 2위만 차지하면 되기 때문에 최약체를 상대로 1승을 거둔 뒤 비기기 작전으로 돌입할 수 있다. 1·2위 팀이 3위 팀을 떨어트리기 위한 일종의 보이지 않는 담합을 할 수도 있다. 24개국 체제로 치른 1982년 스페인 월드컵 당시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다. 상업적 이득을 앞세운 인판티노 회장의 노골적인 표심 잡기라는 분석도 있다. FIFA의 주요 정책과 입안은 각 회원국이 1표씩 행사하는 FIFA 총회를 통해 결정된다. 이번 48개국 확대는 세계 축구계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만 공평하게 1표를 갖고 있는 아시아·아프리카·북중미의 지지를 이끌 수 있는 결정이다. 결국 인판티노 회장은 주앙 아벨란제, 제프 블라터 등 전임 회장들처럼 장기 집권을 꿈꾸기 위한 우군을 포섭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