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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대에 한쪽 편을 요구받는 IT업계의 딜레마

실리콘밸리의 CEO들은 대체로 이제 막 돛을 올린 트럼프 정부에 등을 돌리고 반발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지금은 법원이 제동을 건 이슬람 7개국 출신 입국 제한 조치에 대해 주요 테크기업들은 “이런 정책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을 비치며 반대했고 항의했다. 

 

그런데 유독 기업가 2명의 움직임이 주목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고문을 자청한 우버의 CEO인 트래비스 칼라닉과 테슬라의 CEO인 일론 머스크였다.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두 CEO가 어떤 이유로 트럼프를 돕게 됐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머스크의 경우 “지구 온난화를 막겠다”며 청정에너지 사업체인 솔라시티를 인수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반면 트럼프는 온난화의 위험을 ‘동화같은 이야기’로 치부하며 지구온난화에 미온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 둘은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지만 함께 선 셈이다. 게다가 머스크는 대통령 선거 기간 중 트럼프를 이렇게 평가했다. “대통령 업무에는 부적격”이라고. 일각에서는 머스크가 운영하는 테슬라와 솔라시티, 그리고 우주 프로젝트인 스페이스X 사업이 갖는 특성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정부와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트럼프(왼쪽)가 당선인 시절 팀 쿡 애플 CEO(오른쪽)을 비롯한 IT업계 인사들과 뉴욕에서 간담회를 하는 모습. © AP 연합

"앱을 삭제하자“ 된서리 맞은 우버

 

반면 칼라닉은 왜일까. 그동안 정치권에 발을 들인 적이 없는 칼라닉은 이번에 처음 워싱턴과  접점을 만들었다. 이것 역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우버는 가장 큰 시장인 미국 내에서 행정당국과 잦은 마찰을 빚어 왔다. 우버의 데이터를 놓고 지자체들은 데이터 공개를 요구해왔다. 실제로 뉴욕 교통 당국은 승하차 지점과 시간 등에 관한 데이터를 요구했지만 우버는 승객들의 사생활 침해가 우려된다며 반대했다. 이런 갈등의 흐름을 고려해보면 최고 권력자와의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음직도 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현상은 이후에 나타났다. 트럼프가 이슬람 7개국 입국 금지 행정명령을 발동하자 우버에 즉각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트럼프와 함께한 우버에 배신감을 느낀 사람들 사이에서는 ‘#DeleteUber’, 즉 우버를 지우자는 운동이 시작됐다. “i never used it in NYC for a lot of reasons but they will not see a goddamned penny from me ever again”- @Lubchansky, January 29, 2017 (이런저런 사정으로 뉴욕에서 우버를 사용한 적은 아직 없지만 앞으로는 단 한푼도 우버를 위해 쓰지 않겠어)

 

우버 계정을 삭제한 페이지 스크린샷이 분노의 트윗과 함께 떠돌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트럼프가 행정명령을 발표하자 1만9000명 규모의 뉴욕택시노동자연합(NYTWA)가 항의하고 나섰다. 그들은 JFK 공항과 뉴욕 시내를 오가는 걸 중지하겠다고 했다. 반면 우버는 이 시기에 영업활동을 계속했다. 오히려 “수요가 높을 때 생기는 가격 인상은 없다”며 공세적으로 나섰다. 이런 배신의 영업과 칼라닉 CEO의 트럼프 자문단 참여가 합쳐져 시너지를 발휘하며 우버는 하나 둘 스마트폰에서 삭제됐다. “이민자 거부에 대한 항의를 이용해 돈벌이를 한 우버는 최악”이라는 이야기가 SNS를 타고 흘렀다.

 

트위터에는 한때 우버 앱을 삭제하는 인증샷 물결이 일었다. ⓒ 트위터 화면캡쳐

이것을 기회로 포착한 쪽은 리프트(Lyft)였다. 우버와 라이벌 관계인 리프트는 매번 우버에 밀린 2인자였다. 당장 리프트는 행정명령에 앞장 서 항의하는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에 100만 달러를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미국시간으로 1월30일 오후까지 리프트는 앱스토어 상위 무료 응용 프로그램 목록에서 4위까지 상승했는데 앱 분석기관인 ‘앱애니(App Annie)’에 따르면 이는 리프트의 평소 다운로드 수보다 두 배 정도 상승한 숫자였다. 불과 이틀 전 리프트가 기록한 순위는 39위에 불과했다. 리프트가 4위를 차지했던 1월30일, 우버는 13위에 이름을 올려 역전당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반(反)우버의 기세는 더욱 거세졌다.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이 잇따라 행정명령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와중에도 칼라닉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벼운 비판 정도만 내놓았고 이게 더 불을 지폈다. 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이 계속되자 결국 우버는 손을 들었다. 칼라닉은 2월2일 자문단에서 탈퇴했다. 그는 메일을 통해 “경제 자문단에 참여하는 것이 트럼프와 그가 추진하는 정책을 지지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비칠 수도 있다”며 탈퇴의 이유를 공개했다.

 

 

사용자와 정치권, 양쪽의 압박

 

IT 업계는 그동안 정치와 거리를 뒀다. 적어도 그런 이미지를 만들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글로벌 IT기업이 포진한 미국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했다. 이제 IT업계는 정치적 무관심을 접어야 할 시기가 됐을지도 모른다. 특히 7개 이슬람 국가 출신 입국 금지를 실시한 행정명령에 대한 시민들의 반대가 거세지면서 이들 역시 입장을 분명히 할 것을 강요받았다. 물론 테슬라처럼 양쪽 모두 살짝 발을 걸친 곳도 있었다. 일론 머스크 CEO는 트럼프의 자문단에 들어갔지만 행정명령에는 분명하게 반기를 들었다. 

 

IT업계가 정치와 가까워지는 건 단순히 이번 대통령의 호불호를 묻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올 기술이 정치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고 흥미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은 여기에 흔들릴 수 있다. 우려스런 대목이다. 예를 들어 IT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인 게 ‘망 중립성(net neutrality)’문제다. 망 중립성은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모든 데이터는 내용과 크기에 관계없이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내가 올린 동영상과 상대방이 올린 게시글 하나는 제공사업자나 기기 등과 상관없이 인터넷 상에서 모두 동등하게 처리된다. 이런 중립성을 기반으로 한 ‘개방성’은 국경과 장벽을 모두 뛰어넘어 자신들의 서비스를 인터넷을 통해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IT업계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인터넷을 마치 수도와 전기 같은 공공재로 보는 시각이다.

 

반면 트럼프는 이런 망중립성을 약화시키는데 관심이 있다. 망을 차별화해 가격에 따라 선택권을 늘리겠다는 게 그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그렇게 될 경우 콘텐츠나 서비스보다 중요한 건 망 이용가격에 따른 정책이 된다. 데이터 소비가 많은 넷플릭스 같은 동영상 서비스 회사는 이런 정책이 시행될 경우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트럼프 정부에 얼마나 협력하느냐에 따라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위험한 세상을 넘어, 좀 더 구조적인 위기를 겪을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게 지금의 실리콘 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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