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통령의 품격…“국민과의 소통과 공감 능력도 필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나면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은 더없이 커졌고, 그로 인한 배신감과 분노는 수십, 수백만 명의 시민들을 대거 촛불항쟁에 나서게 만들었다. 두 달을 약간 넘는 기간 동안 전개됐던 촛불항쟁에 참여한 연인원이 1000만 명을 넘었다고 하니, 그동안 대규모 항쟁을 여러 번 경험해 왔던 우리조차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나라나 대통령에 대한 국민 감정은 그 기복이 크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그 기복은 더욱 크다. 이를테면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의 경우 그들은 임기 초반에는 높은 지지도를 기록하지만, 임기 말에는 그 지지도가 바닥을 헤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임기가 끝났을 때 대통령은 쫓겨나다시피 그 자리를 떠난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에는 임기도 마치지 못한 채 쫓겨날 판이다.
사실 대통령은 국민 전체가 참여해 선출한 유일한 공직자다. 그렇다 보니 대통령 일거수일투족에 국민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이지만 동시에 국가원수이기도 하다. 따라서 국민은 국가를 대표하는 원수인 대통령에게 그에 상응하는 품격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 품격이 무너질 경우 국민은 더 이상 대통령을 우러러보지 않는다.
대통령 품격 무너지면 우러러보지 않는다
‘콘크리트 지지’라고까지 지칭됐던 강한 지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4%까지 떨어지고 당장 하야를 요구받는 사태가 벌어진 것은 단순히 비리에 대한 분노 때문만은 아니다. 어떤 점에서 국가원수에게 요구되는 이 같은 품격을 대통령 스스로 무너뜨린 데 대한 실망과 배신감이 국민 분노의 더 큰 원인인지도 모른다. 한낱 아낙에 불과한 사인(私人)에 의해 대통령이 조종돼 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국민들이 ‘이게 나라냐’고 항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대통령, 특히 차기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전국적으로 선출된 유일한 공직자로서 그리고 국가를 대표하는 원수로서 이에 상응하는 태도를 갖추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것이 아닌가 한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무엇보다도 국민에게 인간적인 모범과 매력을 보이는 한편, 최고 공직자로서 분명한 공적인 마인드를 갖추는 것이 될 것이다.
물론 과거 대통령들은 인간적인 면모보다는 리더로서의 권위와 카리스마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나 과거처럼 대통령이 군림하는 시대가 아닌, 보다 민주화된 지금의 현실을 감안할 때 오히려 국민과의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인간적인 면모의 덕목을 갖추는 것이 대통령에게 더욱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한다. 국민들과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들로부터 존경받고 사랑받는 그러한 모습의 대통령 말이다.
한편,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의 정치인과 관료에게 가장 부족한 덕목은 공적 마인드다. 정치는 권력의 추구이고, 권력의 획득은 곧 정도 차이는 있지만 권력의 사유화로 이어져 왔던 것이 우리 정치의 전통이자 문화였다. 우리가 공직을 통해 ‘출세’하고자 했을 때, 사실 그 동기 중의 하나는 권력을 사유화하고 싶은 욕망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권력 사유화는 자주 부정부패로 이어졌는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그 극단적인 사례다.
따라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공과 사를 분명하게 가리는 것, 바로 그 점이 선출직이든 비선출직이든 모든 공직자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특히 대통령의 경우 그가 행사하는 권력은 국가 최고 권력이다. 따라서 그것을 사유화할 때 그것은 대규모 부정부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차기 대통령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공과 사를 분명하게 가릴 수 있는 분별력이다.
이상이 차기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개인적 차원의 덕목이라 한다면, 국민들과의 관계에서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또 다른 덕목은 소통과 공감 능력이다. 권위주의 시대라면 자신의 판단 아래 위로부터 국민들을 이끌어가는 것이 대통령의 중요한 역할일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 시대에 대통령이 수행해야 할 보다 중요한 역할은 국민의 의사와 요구에 적극 부응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우선적인 덕목은 국민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삶과 처지를 이해하는 공감 능력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의해 현재 정보의 유통은 거의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알려지면서 이에 항의하는 촛불항쟁이 순식간에 확산됐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마당에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 청와대에서조차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어도 너무 시대착오적이다. 또한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타인에 대한 대통령의 공감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질 것임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다.
모든 공직자, 公과 私 분명하게 구분해야
대통령이 인간적인 면모의 모범을 보이는 것과 공과 사를 분명하게 하는 것, 그리고 국민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 이 같은 덕목들은 사실 특별한 것이 아니다. 어떤 점에서 그것은 지극히 평범하기조차 하다. 그럼에도 대통령에게 이러한 덕목이 요구되는 것은 그 평범한 덕목조차 박 대통령이 전혀 지키지 못했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태도, 최순실 국정 농단에 대한 태도 등은 그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물론 차기 대통령에게는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 예컨대 경제침체에서 벗어나고 양극화를 해소하는 일, 일자리를 마련하고 복지를 강화하는 일 등의 과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요구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과제 해결의 능력 이전에, 차기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덕목은 이상과 같은 품격이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실망하는 것은 대통령의 무능 탓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대통령의 품격 자체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거나 그것이 무너진 탓이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