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보수 신당’ 깃발 들고 대선 출정
새누리당 비박(非박근혜) 대선 주자인 유승민 의원이 16년 정치인생 최대의 승부수를 던졌다. 2000년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으로 발탁된 이후 줄곧 보수당에 몸담았던 유 의원이 12월21일 탈당을 선언했다. 그것도 34명에 달하는 여당 의원을 이끌고서다. 당장 교섭단체를 구성해 4당 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규모다. ‘진정한 보수’란 깃발을 든 유 의원은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정계개편의 중심에 섰다. 김무성 전 대표는 유 의원의 든든한 우군으로 지원사격하고 있다. 두 사람은 보수 신당 창당에 의기투합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중도보수 인사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기로 했다. 제3지대 구축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것이다.
유 의원은 탈당 결단을 내리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국민적인 반감이 거세지자, 김 전 대표는 11월23일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하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겠다고 선언했다. 이때만 해도 유 의원은 김 전 대표의 탄핵 주장에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새누리당 식구로서 탄핵이다, 하야(下野)다 이런 말을 지금 입에 담기보다는 대통령께서 국가를 생각해 어떤 결단이든 하실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일단 탄핵소추를 추진하기보다는 박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자는 게 유 의원의 입장이었다.
“정의롭고 따뜻한 新보수 만들고 싶다”
유 의원의 소극적인 태도를 두고선 TK(대구·경북) 출신의 태생적 한계를 드러낸 것이란 지적이 당내에서 나왔다. 유 의원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박 대통령 탄핵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높은 TK지역 정서를 감안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입장은 일주일 만에 180도 바뀐다. 박 대통령이 11월29일 3차 대국민담화에서 “임기단축·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묘수를 던지면서다. 김 전 대표는 12월1일 당론으로 결정된 ‘내년 4월 퇴진과 6월 조기 대선’을 지지하며 입장을 급선회했다. 반면 유 의원은 박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이라는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를 신중히 검토했고 이를 토대로 탄핵 추진으로 돌아섰다. 그는 “여야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탄핵에 참여할 것”이라며 강경론을 폈다. 유 의원은 결국 비박계 모임인 비상시국위원회 의원들을 설득하고 탄핵의 열쇠를 쥔 김 전 대표까지 끌어들여 12월9일 탄핵 가결을 주도했다.
탄핵의 고비를 넘은 유 의원에겐 당 잔류 여부란 2차 관문이 버티고 있었다. 탄핵 가결에 기세가 오른 비박은 최순실 게이트로 위기를 맞은 당을 수습하기 위해 비상대책위를 조속히 구성해야 한다고 친박(親박근혜) 지도부를 압박했다. 하지만 이정현 당시 대표는 지도부 공백을 명분으로 내세워 사퇴불가로 버티기로 일관했다. 그러던 차에 정진석 원내대표가 전격 사퇴했다. 이번엔 차기 원내대표 경선이 양 계파의 당 주도권 싸움의 장으로 변했다. 비박은 탄핵을 가결시킨 만큼 자파 원내대표의 신승을 점쳤다. 하지만 뚜껑이 열리자 친박이 지원한 정우택 의원이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그러자 친박 지도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일괄 사퇴했다. 이젠 비대위원장 선출을 놓고 양 계파가 2라운드 대결에 돌입했다. 정 원내대표는 비박이 합의해 비대위원장을 추천하면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당 화합을 위한 일환인 셈이다.
이에 유 의원은 ‘전권 비대위원장’을 요구하며 당에 남아 개혁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비상시국위에서 탈당론이 나오는데도 유 의원이 당 잔류를 선택하자 당 일각에서 친박과의 모종의 거래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유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 잔류 개혁과 관련해 “이번에 탈당하는 의원들 중에 마지막까지 당 개혁에 대해 0.1% 가능성만 있더라도 끝까지 당에 남아서 개혁하겠다는 입장을 제가 제일 강하게 가졌었다”고 설명했다. 오랜 전통을 가진 여당을 지지하는 당원과 국민을 위해 당을 환골탈태시키는 데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 여당 의원의 도리라는 생각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 원내대표는 12월19일 기자간담회에서 “당의 갈등과 분열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사람은 안 된다”며 유 의원의 ‘조건부 비대위원장’ 수락을 거부했다. 이로써 유 의원은 탈당과 잔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서게 됐다. 유 의원 탈당의 결정타는 12월20일 비대위원장 선출을 논의한 의원총회였다. 2시간 넘게 진행된 의총에서 정 원내대표와 친박 의원들은 “유 의원이 비대위원장을 하겠다면 어떤 방향으로 당을 이끌 것인지 발표하라”며 일종의 정견 발표를 요구했다. 경선도 아닌데 정견을 발표하라며 유 의원을 자극한 것이다.
이에 유 의원은 “의총에 나와서 정견 발표를 하라는 것은 모욕으로 받아들인다”며 강한 불쾌감을 표했다. 유 의원이 당 잔류의 마음을 접는 순간이었다. 그는 “새로운 보수를 위한 개혁이 당 안에 남아서는 친박들의 저항이 워낙 세서 도저히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최종 판단했다”고 당시 심정을 설명했다.
당 개혁을 포기한 유 의원은 김 전 대표를 만났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서 “(12월)21일 비박계 모임에서 동반 탈당을 결의하고 최대한 세력을 규합하고 당원들에게 보고한 뒤 다음 주 중 탈당 절차를 마무리하자”고 합의했다.
유 의원은 친박의 패권주의를 깨뜨리지 않으면 바로 세울 수 없는 ‘불파불립’(不破不立)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탈당의 변에서 “낡고 부패하고 기득권에 집착하는 보수를 버리고 정의롭고 따뜻한 신(新)보수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비박계는 12월27일 집단 탈당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한 뒤, 2007년 1월21일 신당을 창당하기로 했다.
경제사회정책은 ‘진보’, 안보는 ‘보수’
유 의원은 보수 신당의 구상도 밝혔다. 그는 “반기문 사무총장도 환영하고, 당에 있다가 먼저 탈당한 남경필 경기지사나 원희룡 제주지사 등 많은 분이 보수 신당에 모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개혁적 보수 세력을 규합하겠다는 의지를 표시했다. 그는 “우리가 개혁 보수로서의 노력을 굉장히 열심히 하면 신당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그럼 좋은 후보가 다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의원은 신당에서 김 전 대표와 역할 분담을 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표는 창당 작업을 맡고 유 의원은 대선을 본격적으로 준비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 의원의 ‘따뜻한 보수’ 기조를 신당의 정강 정책으로 만들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사회 분야에선 경제민주화와 복지 강화 등 개혁을 표방하고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한·미 관계 강화와 북한의 핵 도발 억제 등 보수의 정체성을 지킨다는 구상이다.
이 정책은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사이에서 차별적 정책 공조를 이끌어내고 중도 보수층을 끌어안기 위한 전략으로 받아들여진다. 유 의원 측 관계자는 “경제사회정책은 진보로 하고 안보는 보수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유 의원이 김 전 대표에게 이야기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