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름장어 처세술과 모호한 화술로는 대한민국 맡을 자격 없다

11월29일 박근혜 대통령은 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3차 담화 역시 전혀 새로운 것이 없을 정도로 무미건조한 내용과 여전히 ‘난 잘못한 점이 없다’에 담화의 방점이 찍혀 있었다. 자신의 퇴진을 국회에 완전 위임하면서 정치권 역시 12월부터 대통령에 대한 탄핵 눈치 보기와 함께 본격적인 대선 국면으로 전환될 듯하다. 아이러니하게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보다 지난 29일 검색 사이트 상위에 오른 인물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었다. 참고로 올해 임기가 끝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내년 1월 귀국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현실적으로 부패 세력으로 국민들에게 각인되고 있는 새누리당으로 반기문 사무총장이 갈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치권 및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그 동안 반기문 사무총장은 꾸준히 친박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아왔고 외국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접촉하며 수많은 언론으로부터 설왕설래를 만들었던 인물이다. 특히 현재 대선 구도가 친문(문재인 세력) 대 반문(문재인 반대 세력)으로 프레임이 설정되면서, 잠재적인 민주당 후보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항하기 위해 일부 정치인들은 반기문 중심의 제3지대, 반부패세력이라는 모호한 지대로 헤쳐 모이고 있다.

 

©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파동 이후 가장 마음이 다급해진 건 결국 반기문 사무총장일 것이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그는 모든 언론사와 여론조사 전문업체에서 인정한 부동의 차기 대선 주자 지지도 1위의 외교관 또는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대통령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던 반기문 사무총장 역시 비선 실세와 국정 농단의 여파를 피하지 못하고 지지율이 급락했다. 그리고 결국 탄핵을 피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여전히 반기문 사무총장이 대선에 출마하면 막강한 파급효과 또는 영향력을 보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지난 2012년 대선의 안철수 후보와 현재 반기문 후보가 부각되는 이유는 한결같다. 기존 정치권이 부패하고 무능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대중이 참신한 인물, 때 묻지 않은 후보를 애타게 찾고 있기 때문이다. 4년 전 안철수 후보에게 국민이 열광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그가 걸어온 길과 과거의 흔적들이 사익을 추구하기보다 공익을 추구하고 굴뚝 산업이 아닌 정보통신, 미래가치창출형 리더의 이상적 모습에 부합됐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안철수 후보는 국민의 열망이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기존 정치권의 벽을 끝내 무너뜨리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그가 일으켰던 이른바 ‘안철수 현상’은 어느덧 흘러간 과거 이야기가 돼버렸다.

 

그렇다면 반기문 사무총장이 걸어온 길은 과연 어떠한가. 과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항상 ‘정치인의 미래를 보려면 과거 그가 걸어온 길이 어땠는지 살펴봐야 한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정치인의 성과는 상황에 따라서, 환경에 따라서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이 걸어온 길에는 그의 가치관, 철학, 신념 등이 일관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그간 친박 또는 새누리당 세력과 가까운 모습을 보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과거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의해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인물이었다. 그가 걸어온 길 일부를 살펴보자.

 

반기문 사무총장은 참여정부 시절 외교부 장관으로 2년 10개월간 근무했다. 그러나 2004년 이라크에서 발생한 김선일씨 피살 사태 때 그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위기 상황에서 수수방관으로 일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상황을 모면하려는 발언을 하며 당시 한나라당으로부터 공개적인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이후 2005년 북핵 문제, 2006년 북한 미사일 발사 사태 때도 외교력 부재를 드러내며 반기문 장관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에 의해 식물 장관, 무능한 장관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심지어, 2006년 동원호 선원들이 소말리아 해적에 의해 납치됐을 때도 그는 유엔 사무총장 선거운동에 골몰했고 급기야 청와대에서도 그를 교체해야 한다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10년 전, 반기문 외교부 장관의 성과 및 흔적에 대한 정치권의 평가는 여당과 야당을 가리지 않고 일관되다. 쉽게 말해서 ‘무능한 외교관’이라는 것이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그가 10년간 유엔 사무총장으로 있으면서 만들어낸 성과는 또 어떠한가. 2016년 3월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례적으로 ‘가장 둔하다(the dullest)’, ‘역대급 최악(among the worst)’이라는 원색적 비난을 써가면서 반기문 사무총장을 혹독하게 비난했다. 그가 있는 동안 유엔은 세계평화를 조성하지도 못했고 개혁도 부족했으며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성찰 의식도 부족하다고 이코노미스트는 꼬집었다. 심지어 미국에 의존했다는 비판까지 거론하며 반기문 사무총장의 리더로서의 자질과 능력이 현저하게 부족함을 이코노미스트는 질타했다. 이에 대해 반기문 측 역시 ‘이란의 대량학살’, ‘유럽의 외국인 혐오’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인권을 옹호했다고 반박했으나, 그가 주도적으로 외교적 사태, 국제적 분쟁을 해결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반기문 사무총장을 바라보는 외국의 시선은 놀라울 정도로 비난 일색이다. AFP통신에서는 ‘한국의 높은 지지율만 즐기고 있는 리더’라고 그를 비난했고, 영국 텔레그래프에서도 ‘유엔 역사상 최악의 사무총장이 대한민국의 차기 유력한 대통령 후보’라며 국내 정치권의 무능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리더의 부족한 인재풀을 비판한 바 있다. 아울러, 지나치게 미국에 의존적인 외교 정책을 펴왔음에도 불구하고 반기문 사무총장은 월스트리트저널에서 ‘투명인간 사무총장’, 워싱턴포스트에서는 급기야 ‘반기문이 이끄는 유엔은 무너지고 있다’는 식의 평가 절하를 당하고 있다.

 

인색한 평가를 넘어 학생으로 치면 F학점에 버금가는 최악의 평가를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반기문 사무총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인들이나 국내 사회의 지도자들과 논의하고 싶다’는 포부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외교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당시 박근혜 의원으로부터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아왔고 유엔에서 사무총장 직위로 재직하며 국제적으로 무능하다고 인정을 받아온 그는 자신의 별명 ‘기름장어’처럼 민감한 이슈 및 난해한 현안 질문은 일관되게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자신의 이미지 정치만을 즐겨왔다.

 

성과를 논외로 하고 반기문 사무총장의 인간 됨됨이를 살펴보자. 그가 유엔 사무총장에 출마하기 위해 2006년 외교부 장관직을 벗어 던졌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라크․알제리․아랍에리미트․코스타리카 등 변방의 국가들을 직접 방문하며 반기문 당시 사무총장 후보의 당선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나섰다. 그 시절 한나라당은 ‘세계 외교도 모르는 철부지들의 장난’이라는 비난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반기문 후보에게 쏟아냈다.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당선을 위해 헌신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 반기문 사무총장은 장례식 불참뿐만 아니라 추모 영상 메시지, 그 흔한 서면 메시지조차 보내지 않았다. 올해 5월 한국을 방문한 그는 관훈클럽 간담회, 제주포럼 만찬, 하회마을 오찬, 유엔 NGO 컨퍼런스에서 일관되게 청와대 및 여당의 주요 인사들만을 챙기며 선거유세에 가까운 행보를 보였다. 그가 왜 ‘기름장어’로 불리는지 가히 알만 하다.

 

최근 국정 농단에 대해서도 반기문 사무총장은 일본 특파원단과 뉴욕에서 만나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모호한 발언으로 또 다시 민감한 국내 정치 현안을 교묘히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동안 대한민국은 정치․외교적으로 ‘실패의 자산화’를 축적하지 못해 계속 ‘실패의 악순환’을 거듭해 왔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퇴임 후 국내에서 무엇을 기여할 것인지 깊이 고민하고 있다면, 자신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경험했던 ‘외교적 실패와 무능 그리고 극복방안’에 관해 후배 외교관들을 위해 지혜롭게 공유해주길 바란다. 실패의 노하우를 알려주고 향후 더 뛰어난 외교관을 육성하는 것이 반기문 사무총장이 마지막으로 조국을 위해 해야 할 일이다. 기름장어 처세술과 모호한 화술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을 자격이 없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