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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정약용·박세당 등 자상하고 따뜻했던 《조선의 아버지들》, 그 훈육법 전하는 백승종 교수

“조선의 아버지들에게는 시대를 초월한 보편의 가치가 존재한다. 그들이 애써 추구한 인생의 가치는 오늘날에도 상당 부분 유효하다. 그들은 힘써 현실사회의 문제를 극복하려고 했고, 매사에 성실한 태도를 견지했다. 성별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을 존중했으며, 비상한 인내심과 자상함으로 끝까지 가족을 보살피고 사랑했다.”

아버지의 정체성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이 시대 아버지들을 위해 역사학자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가 조선시대 아버지 12명의 삶에서 해답을 찾아냈다. 김숙자·유계린·이황·김인후·이순신·이항복·김장생·박세당·이익·정약용·김정희, 그리고 아들 사도세자를 죽인 영조까지. 오랫동안 미시사(微視史) 연구에 몰두해 온 백 교수는 다양한 자료를 섭렵해 면면이 독특한 선조들의 삶을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 사우출판사 제공

“엄격하거나 일방적인 권위 없어 ”

 

500년 전 지금과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산 아버지들의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백승종 교수가 조선의 아버지들에게 자문(諮問)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 변동이 심해지면 아버지와 아들은 운명적으로 대립한다. 그들은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 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시간이 흐르면 한때의 아들은 아버지가 되고, 그 역시 자신을 거부하는 아들과 부딪힌다. 무겁고 두려운 비극의 대물림이 아닌가.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 땅의 극심한 사회 변동 속에서 많은 시민들은 세대 간의 마찰과 갈등을 잇달아 겪는다. 사회문제가 가정의 위기로 비화되면서 가정 안에서 정서적 연결고리가 가장 취약한 ‘아버지의 위기’가 발생한다.”

 

아버지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조선시대의 가부장적 사고’를 끌어오는 건 아닐까? 백 교수는 조선시대의 사회를 움직인 아버지들의 내면으로 ‘한발 더 깊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놀랍게도 그들에게서는 21세기를 사는 지금의 우리들도 공감할 수 있는 점들이 많았다. 이 시대 아버지들은 정체성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 점에서 내가 만난 12명의 조선시대 아버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매력적이라고 본다.”

 

백 교수가 조선의 아버지들에게서 찾아낸 특징들은 이 시대 아버지들이 본받고 실천해야 할 덕목들이다. 우선 조선의 아버지들은 자상하고 따뜻했다. “아버지 이황은 일방적으로 지시하거나 명령하지 않았다. 자식이 잘못을 저질러도 마구 야단치지 않았다. 거듭해서 조용히 타이르고 훈계했다. 본인이 잘못을 깨닫게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리하여 집안에서는 큰소리 나는 법이 없었고, 화목했다. 영웅 이순신도 자식 걱정에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하루라도 자식을 곁에 두지 못하면 몹시 힘들어했다. 박세당은 어머니의 묘소를 지키는 아들들에게 예법보다 건강이 더 중요하다며 ‘예법을 무시하라’고 말했다.”

 

특히 대학자 박세당은 세상에 둘도 없는 따뜻한 아버지였다. 17세기 후반 성리학의 시대에 양반이 그렇게 생각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조선의 아버지들은 말로만 훈계하지 않고 몸소 모범을 보였다. 아버지 자신이 자식에게 가르친 내용을 몸소 보여주는 삶을 살았다. “천주교 탄압이 거세지면서 정약용 일가는 쑥대밭이 되었다. 가문이 해체될 지경인 데다 유배가 풀릴 기미는 보이지 않았으니 아버지 정약용의 시름이 깊어만 갔다. 앞길이 막혀 어깨가 축 처진 아들들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당부했다. ‘지금 너희들은 스스로를 천시하고 비루하게 여기지만, 그런 태도야말로 너희 스스로를 비통하게 만드는 꼴이다.’ ‘늘 심기를 화평하게 가져라. 벼슬길에 오른 사람들과 다름없이 당당하라.’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로 뜻하지 않은 불운에 대처하라는 가르침이다. 이런 훈계가 말에 그칠 뿐이라면 소용없는 일. 아버지 정약용은 18년간의 유배기간 동안 좌절하지 않고 학문에 정진해 500권이 넘는 저술을 남겼다. 아들들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폐족의 위기를 당당하게 헤쳐 나갈 수 있었다.”

 

백승종 지음 사우 펴냄 244쪽 1만4000원


“왕조보다 백성이 더 소중하다고 가르쳐”

 

백승종 교수가 내세운, 진정한 아버지다운 조선의 아버지들은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삶을 살았다. 밖에서는 물론이고 가정에서도 아내와 자식에게 권위를 부리거나 일방적으로 지시하지 않았다.

 

조선의 아버지들은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의리를 지키기 위해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벼슬자리에도 연연하지 않았다. 심지어 목숨을 내놓는 일도 망설이지 않았다. 백 교수는 그런 조선의 아버지들이 구하려고 했던 ‘충(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충은 자신을 포함한 일체의 사물에 진심을 다하는 것이다. 충성을 바친다는 것에 대해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은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충성을 바칠 최고의 대상은 백성이다. 다음은 나라이다. 임금은 그다음일 뿐이다.’ 기록에는 없는 대사다. 사실은 《맹자》에 바로 그런 말이 나온다. 이른바 ‘사서삼경’, 곧 유교 경전을 관통하는 사상이 바로 그것이다. 임금보다는 왕조가, 왕조보다는 백성이 더 소중하다는 것이다. 한발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유교적 교양을 추구하는 선비들에게는 ‘나(我)’가 제일 중요한 충성의 대상이었다. 군자가 되려면 결코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진심을 다해 자신에게 정성을 다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야 했다. 자신에게 정직하고자 하는 사람은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소신을 접거나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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