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여전히 사랑이어서》 펴낸 ‘입양아들의 엄마’ 윤정희씨의 감동 실화
어느 가족은 온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며 ‘빽수저’라는 말까지 나오게 한다. 그러나 온정의 손길마저 줄어들어 우울한 세밑에도 ‘흙수저조차 가지지 못한’ 아이들을 입양해 잘 키워온 한 가족의 이야기가 있어 국민적 분노를 삭이게 한다.
가족해체와 아동학대 이야기 또한 끊이지 않는 요즘, 20년 동안 무려 10명의 아이를 입양한 김상훈·윤정희씨 부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아이를 입양한 가족이다. 한 아이도 키우기 어려운 시대인데 10명씩이나, 그것도 입양해 키우고 있다는 게 보통 사람은 아닌 듯하다. 양육비도 만만찮을 것 같고, 진심으로 사랑하기도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정희씨가 그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온 과정을 보면 동네 이웃 이야기 그대로다. 지지고 볶는 일상이 그렇다. 그런데 이들 가족 구성원 모두 하나같이 ‘우주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이라고 말한다. 신앙의 힘일까? 아니면 부자이기 때문일까? 무엇이 그들을 행복의 바다로 이끌었을까?
“우리 가족을 색안경 끼고 안 좋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정부 지원금 많이 받으려고 이렇게 사는 거 아니냐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왜 장애아로 등록해서 수당을 받지 않는지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대기업에서 몇 백씩 받는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한번은 어떤 공무원이 아동을 입양하면 지원금이 엄청 많은 줄 알고 몰래 뒤를 파헤쳤다가 사과한 적도 있었다. 왜 이런 핍박을 받아야 하는지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행복했고, 행복하고, 행복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혈연관계만 가족이라 생각하지만, 김상훈·윤정희씨 부부는 세상에 버려진 고아들도 내 가족임을 삶으로 말하고 있다. 사실 열 아이 중 심리적·육체적으로 아프지 않은 아이가 없었다. 한 가족이 되기 위해 많은 진통도 겪었다. 그러나 만날 안아주고 보듬어주고 같이 웃고 기도하는 가운데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고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하는 한 가족이 되었다.
“아이들은 다들 몸이 아팠다. 아이들과 살아온 20년의 시간을 보니까, 10년 동안은 아픈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느라 죽음보다 더한 고통의 터널을 지나온 것 같다. 다만 포기할 수 없었으니 걸어온 거다. 엄마니까. 그러다 다시 아이들이 건강해진 이후 10년의 시간을 돌아보니 모든 것이 의미가 있었다. 죽어가는 아이를 보면서 넌 나중에 간호사가 되어라, 이런 말 못하잖는가. 건강을 되찾은 아이들에게 앞으로 10년은 너희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라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지나서 보니까 아이들이 이렇게 멋진 모습으로 성장했다. 오늘이 존재하기 위해 지난 20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제는 단호하게 말한다. 사랑은 여전히 사랑이라고. 우리 가족은 행복했고, 행복하고,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이웃들과 더 많은 것을 나눌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거다.”
마음의 상처, 육체의 상처를 가지고 이 가정에 온 아이들은 점차 마음의 문을 열고 건강하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폐 질환으로 생사를 넘나들던 하선이가 대학생이 되고, 퇴행성 발달장애로 지능이 64였던 요한이가 아이큐 137의 수재로 자라고 있으며, 안짱다리라 정상적인 성장이 힘들 거라 진단받았던 사랑이가 쇼트트랙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이 사랑하기 때문에 일어났다. 자녀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스펙보다 사랑을 심어주고, 진정한 가족 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자녀들이 행복하며 건강하게 자라는지 보여준다.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낳는지라 이 가족은 주말이면 반찬을 만들어 함께 독거노인을 찾아가 섬긴다. 받은 사랑이 너무 많아 이웃과 나눠야 한다는 믿음에서다.
“아이들 스스로 서로를 보듬고, 상처나 아픔을 나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아이들은 먹을 것을 나누고, 옷을 나누고, 엄마를 나눈다.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면서 아이들이 자신의 정서를 아름답게 만들어가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러니까 한 명 있을 때에 비해 10명을 키울 때 엄마가 달라지는 거다. 아이들이 많을수록 선생님이 많은 거다. 많은 선생님 덕분에 내가 성숙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윤정희씨는 어려운 살림에도 더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를 쉬지 않으셨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중학생 때부터 봉사활동을 다녔고, 20대에는 중증 장애 아동들의 처녀 엄마로 살았다. 1992년에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 김상훈’과 결혼했고, 남편은 억대 연봉을 받는 토목기사로, 자신은 교회학교 부장, 교회 전도사로 교회를 섬겼다. 2002년에 남편은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했고, 2005년 대전 용두동에 ‘함께하는교회’를 개척해 4년간 사역했다.
“땅 팔고, 집 팔면서 어떤 정부 지원금도 없이 공부방을 운영하다가 우리 아이들 병원비가 없어서 건물 청소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아는 분이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어보기에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합법적으로 부끄럽지 않은 일이라면 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했다. 당당하게, 어떤 도움도 받지 않고 아이들을 잘 키워냈다는 것, 아이들이 그 사실을 알고 그것을 본받아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면 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들 하나하나가 나를 성숙하게 하는 선생님”
윤씨 가족은 뜻밖의 수입이 생기면 무조건 기부를 한다. 기부를 하려고 돈을 모으기도 하고, 소득 안에서 최대한 나누는 데 돈을 쓰기도 함은 물론이다. KBS ‘1회 감동대상’에서 ‘가족상’을 받고 탄 상금 1000만원은 ‘아름다운 가게’로 갔다. 아이들의 1000만원이 넘는 적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 갔다. ‘가족 이야기를 통해 생긴 수익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의 아이들과 나누겠다’는 가족의 약속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만 보려 한다. 그래서 불행하고 우울하다. 그러나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고, 현재 할 수 있는 선한 일을 한다면 더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