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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음악이 나를 위로하네》 펴낸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씨

“곡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콘서트홀을 가득 메웠다. 나는 인사를 한 뒤 벅찬 마음으로 객석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자리에서 하나둘 일어나더니 곧이어 모든 관객들이 일어났다. 기립박수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나는 오늘 그토록 바라던 ‘선한 영향력’으로 타인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했을까? 하지만 이 길고 긴 기립박수의 의미는 단순히 내 소망이 실현되었다는 증거가 아닐지 모른다. 오히려 이 박수는 음악을 통해 치유받고 누군가와 위로를 공유할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미래가 창대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할 것이다.”

 

어릴 때부터 심한 결핍감에 시달려

 

각종 국제 콩쿠르를 석권하고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들을 사사한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씨. 박씨는 2013년 세계적인 강연 프로그램 TED의 캘리포니아 롱비치 강연에 섰다. 여기서 그녀는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서 꿈을 키워가던 중 성공에 대한 집착과 완벽한 음악에 대한 지나친 중압감으로 우울증에 빠지게 된 과정, 급사할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은 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자신의 음악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기만을 바라는 ‘이타심’을 가졌을 때 새롭게 삶의 희망과 위안·열정을 얻게 된 과정을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끝내고 ‘사라방드’를 연주한 그를 향해 관객들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TED 총감독 크리스 앤더슨은 “최고의 7인 중 한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박씨는 이 강연을 계기로 집필한 자전적 에세이 《당신을 위한 음악이 나를 위로하네》를 펴냈다.

 

《당신을 위한 음악이 나를 위로하네》의 저자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씨 © 시공사 제공

가슴 한편이 뭉클해지며 마음 깊이 파고드는 전율, 온몸을 전율케 하는 강렬한 열정과 환희의 연주자. 정통 클래식 연주자이면서 록·가스펠·동요와 민요·트로트까지 넘나들며 틀에 얽매이지 않는 전천후 바이올리니스트. 이런 평가를 받기까지 박지혜씨는 독일에서 태어나 바이올리니스트 어머니의 영향으로 바이올린을 손에 잡은 후,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의 행보를 이어갔다. 독일 마인츠 음대 최연소 입학, 독일 총연방 청소년 콩쿠르에서 두 차례 1등, 루마니아 리멤버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 2등과 4개의 특별상 수상, 2007년 독일 라인팔츠주(州)를 이끌어 갈 연주자 선정 등이 그것이다. 독일 음악계의 거장 울프 횔셔의 지도로 독일 카를스루에 국립음대에서 최고 연주자 과정을 졸업했으며, 미국 인디애나주립대 대학원에서 전액 장학생으로 제이미 라레도 교수를 사사하는 한편 고토 미도리의 지도도 받았다. 오로지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정상의 자리에 올랐지만, 과정이 순탄치만 않았다. 우선 그는 어릴 때부터 심한 결핍감에 시달려야 했다.

 

“아빠가 있었으면 내 삶이 달라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물론 아빠가 고의로 나에게 결핍을 안겨준 게 아니라는 것은 안다.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도 명백하다. 그저 엄마는 자신의 의지와 의도대로, 아빠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게 예술가에게 필요한 두 가지를 선물한 것이다. 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지만 또한 결핍으로 텅 비어 있다. 한때는 그 사실이 못 견디게 힘들었지만, 이제 나는 두 가지 모두가 나라는 바이올리니스트를 이루는 큰 축이라는 것을 안다.”

박지혜 지음│시공사 펴냄│212쪽│1만3000원


“삶과 예술이 연결될 때가 진짜 음악”

 

자신이 가진 것은 ‘음악적 재능’이 아닌 ‘노력하는 재능’이었을 뿐이라고 말하는 박지혜씨는 하루에 많게는 16시간의 연습을 강행할 만큼 지독한 연습벌레이자 완벽주의자이기도 했다. 2003년부터 2014년까지 독일 정부로부터 국보급 바이올린 ‘페트루스 과르니에리(1735년산)’를 11년간 무상으로 대여받아 사용했으며, 이후 페트루스 과르니에리를 평생 사용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기쁨과 자부심으로 행복할 것만 같았던 그에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스스로 자신에 대한 기준점이 너무 높았던 것 같다. 욕심이 많았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 보니 내 자신에게 너무 엄격해진 나머지 나태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음악에 대한 압박으로 다가왔다. 순수하게 음악을 즐기기 위해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하고, 더 잘해야 하고,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너무나 커졌다. 그게 우울증의 원인이 되었다.”

우울증은 박씨를 피폐하게 만들었고, 급기야 의사로부터 급사할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았다. 관객들을 위해 음악을 연주하던 그가 정작 자신은 위로받고 치유받을 곳이 없다는 절망감에 휩싸여 살고 있었다. 그러던 그에게 다시 살게 해 준 경험이 찾아왔다. 교회·한센인 병원·복지시설·교도소 등 고통과 시련을 겪고 있는 청중이 있는 곳들을 찾아 연주하면서 음악이 주는 진정한 치유의 힘에 눈뜨게 되었고, 이후 기존의 클래식 무대만이 자신이 서야 할 곳이라는 편견을 떨치고 다양한 무대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10대 시절 내내 하루에 많게는 열대여섯 시간씩 연습하면서도 풀지 못했던 수수께끼들이 한 번에 풀려 나가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진짜 중요한 것은 사는 듯이 연주하고 연주하듯 사는 것임을. 그렇게 삶과 예술이 연결될 때 진짜 음악이 시작되는 것이다. 내 삶을 예술에 희생시켰던 그 시간에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것, 엄마와 교수님이 귀에 못이 박이도록 말했지만 듣지 않았던 것, 연습만으로는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를 큰 아픔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자신의 일과 삶을 타인에게 치유와 영감을 주는 통로로 만들면, 결국 자신의 삶에 큰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하는 박씨. 그녀는 자신의 연주와 메시지가 더 많은 사람들의 삶에 위로와 열정을 되살려주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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