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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이 지배했던 고종 시대…자신을 신비화하며 국정에 두루 개입
# 1882년 임오군란이 발생하자 분노한 군인들이 자신들을 차별한 중전 민씨(명성황후)를 죽이기 위해 경복궁으로 쳐들어갔다. 이때 중전은 상궁으로 위장하고 시위 무관 홍계훈 등에 업혀 탈출을 감행해 장호원으로 도망갔다. 얼마 후 중전에게 한 무녀(巫女)가 찾아왔다. 그녀 꿈에 신령님이 나타나 중전이 장호원에 있다고 알려 주었다는 것이다. 이에 깜짝 놀란 중전은 무녀에게 “지금 궁전으로 돌아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무녀는 “지금은 때가 아니니 몇 달 후에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예언했다.
‘환궁’이라는 예언을 맞춘 무녀 박씨를, 중전은 궁으로 데리고 들어갔다고 한다. 중전이 질병을 앓고 있을 때는 무녀가 손으로 아픈 곳을 어루만지면 증세가 사라졌고, 굿을 해주면 시름이 사라졌다. 중전은 무녀를 총애했고, 그 무녀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었다. 무녀를 왕자급 고위 작위인 ‘진령군’으로 봉하게 된 경위는 아래 등장한다.# 어느 날 무녀가 자기는 관우 딸이라고 하면서 관우 사당인 관왕묘(關王廟)를 건립하자고 청했다. 이에 중전은 즉각 관왕묘를 짓고, 그녀를 진령군(眞靈君)으로 봉했으며, 엄청난 재물까지 하사했다. 무녀가 봉군을 받은 조선 최초 사건이었다. 진령군이 된 무녀는 관우 복장을 하고 다니면서 자신을 신비화했고, 국정에 두루 간여했다. 그녀 말에 따라 관리와 장수들이 새로 임명되기도 하고 하루아침에 파직되기도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진령군 아들 김창렬이 조정 대관들과 같은 반열에 올라 조정의 숨은 실세로 활약하게 됐고, 그의 위세가 날로 커졌다는 것이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조정 고위 관리들은 진령군과 남매를 맺기도 하고, 심지어 의자(義子)가 되기도 하는 등 촌극이 빚어졌다. 그리고 진령군 모자로 인해 나라는 더욱 망가져 갔고, 고종과 중전 민씨는 정치적 악수만 두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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