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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이 지배했던 고종 시대…자신을 신비화하며 국정에 두루 개입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씨가 국정을 농단한 것으로 알려지며 그를 두고 두고 ‘한국판 라스푸틴’이라는 말이 나왔다. 라스푸틴은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 2세와 황후 알렉산드라의 마음을 사로잡은 후 비선 실세로 국정을 농락하던 제정러시아 정교회 이단 종파의 수도승이다.  그리고 또 ‘진령군(眞靈君)’이란 표현이 등장했다. 유성엽 국민의당 의원은 최순실씨를 ‘21세기 진령군’이라 표현했다.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한 이름, ‘진령군’은 누구일까? 진령군은 고종시대의 ‘비선실세’였던 무당 박창렬이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가 지난 2014년 작성한 ‘무녀 진령군’이라는 글을 보면 진령군이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다.  

# 1882년 임오군란이 발생하자 분노한 군인들이 자신들을 차별한 중전 민씨(명성황후)를 죽이기 위해 경복궁으로 쳐들어갔다. 이때 중전은 상궁으로 위장하고 시위 무관 홍계훈 등에 업혀 탈출을 감행해 장호원으로 도망갔다. 얼마 후 중전에게 한 무녀(巫女)가 찾아왔다. 그녀 꿈에 신령님이 나타나 중전이 장호원에 있다고 알려 주었다는 것이다. 이에 깜짝 놀란 중전은 무녀에게 “지금 궁전으로 돌아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무녀는 “지금은 때가 아니니 몇 달 후에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예언했다. 

  ‘환궁’이라는 예언을 맞춘 무녀 박씨를, 중전은 궁으로 데리고 들어갔다고 한다. 중전이 질병을 앓고 있을 때는 무녀가 손으로 아픈 곳을 어루만지면 증세가 사라졌고, 굿을 해주면 시름이 사라졌다. 중전은 무녀를 총애했고, 그 무녀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었다. 무녀를 왕자급 고위 작위인 ‘진령군’으로 봉하게 된 경위는 아래 등장한다.   

# 어느 날 무녀가 자기는 관우 딸이라고 하면서 관우 사당인 관왕묘(關王廟)를 건립하자고 청했다. 이에 중전은 즉각 관왕묘를 짓고, 그녀를 진령군(眞靈君)으로 봉했으며, 엄청난 재물까지 하사했다. 무녀가 봉군을 받은 조선 최초 사건이었다. 진령군이 된 무녀는 관우 복장을 하고 다니면서 자신을 신비화했고, 국정에 두루 간여했다. 그녀 말에 따라 관리와 장수들이 새로 임명되기도 하고 하루아침에 파직되기도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진령군 아들 김창렬이 조정 대관들과 같은 반열에 올라 조정의 숨은 실세로 활약하게 됐고, 그의 위세가 날로 커졌다는 것이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조정 고위 관리들은 진령군과 남매를 맺기도 하고, 심지어 의자(義子)가 되기도 하는 등 촌극이 빚어졌다. 그리고 진령군 모자로 인해 나라는 더욱 망가져 갔고, 고종과 중전 민씨는 정치적 악수만 두게 됐다.

  
10월24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주한 외교사절이 명성황후 등의 삶을 표현한 특별전시회를 관람하고 있다. ⓒ 연합뉴스
10월24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주한 외교사절이 명성황후 등의 삶을 표현한 특별전시회를 관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중전은 자신이 총애한 무녀에게 ‘진령군’이랑 칭호를 하사하고 막대한 재물까지 줬다. 또 그녀의 말에 따라 관리와 장수를 임명하고 파직했다. 고종 역시 무녀에게 미혹돼 북묘 완성 이후 비문을 몸소 지었다고 알려지고 있고, 완공된 북묘를 고종이 참배한 사실은 <승정원일기>에도 실려 있다. ‘진령’에도 자신들을 보호하는 수호신령 또는 수호진령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구한말 역사학자인 황현의 <매천야록>에 따르면, 진령군은 인사권을 비롯한 국정 운영에도 깊이 개입했다. 갑신정변 당시 북묘로 피신했던 고종과 명성황후는 이후부터 더 진령군을 심임했고, 진령군의 말은 곧 고종의 왕명이 됐다. 사간원에서 진령군을 탄핵하는 상소문을 쓴 선비는 귀양을 갔을 정도였다. 진령군이 비선 실세가 되자 권세를 노리는 사람들은 진령군의 주위에 접근했다. 진령군은 자신의 양자 등 주변 인물들을 고종과 명성황후에 추천했고, 그들은 진령군의 추천을 받았다는 이유로 고관대작에 임명됐다. 그러나 진령군의 권력은 명성황후의 권력이 몰락하면서 함께 무너졌다. 청일전쟁에서 일본군이 승리한 뒤 친일내각이 세워지고 갑오개혁이 일어나면서 진령군은 투옥됐다. 1895년에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났다.  최순실씨가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로 지목받고 있는 지금, 진령군과 비교되고 있는 이유는 비선실세 횡포를 담은 이 같은 역사 때문이다. 당시 김 교수는 “요즘 치솟는 세금과 늘어나는 가계 빚 때문에 국민은 고통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데도 각종 추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걸 보면 드러난 실세든 숨은 실세든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이가 분명 훈수를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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