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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권 국정원 작성 ‘98 강제퇴직 진상조사 결과보고’ 단독 입수…“폐기처분했다던 보고서 재판부가 3번에 걸쳐 지시하니까 내놔”

국가정보원이 ‘1998년 대량 해직 사태’와 관련해 진상 조사를 벌인 결과, 대기발령자 선정, 명퇴 권유, 직권면직 등 강제퇴직 및 소송 과정의 위법·부당 사실을 확인하고, 해당 퇴직자들에 대한 명예회복 및 피해보상 방안 등을 마련키로 약속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원 대량 해직 사태’는 DJ(김대중 대통령) 정권 때인 1998~99년 국정원(당시 안전기획부)이 정보·수사관 581명을 해직한 사건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98 강제퇴직 진상조사 結果報告(결과보고)’에 따르면, MB(이명박 대통령) 정권 출범 후인 2008년 11월13일 국정원은 ‘98 강제퇴직 조사위원회’ 및 ‘실무 T/F·산하 조사반’을 구성했다. 이들이 2009년 1월31일까지 80일간 관련 자료검증 및 전·현직 직원들에 대한 면담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기발령자들의 자발적 퇴직이 저조하자 순화담당관을 구성해 회유(특별격려금)·강압(연구비 지원 중단)·직권면직 강행방침 통보 등 조직적·강제적으로 퇴직을 유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명예퇴직을 끝내 거부한 직원들의 경우 직권면직을 위해 필수적 심사기준인 업무실적은 전혀 고려치 않고, 발전가능성 항목을 임의로 추가해 명퇴 거부자 전원을 최하로 평가해 직권면직을 강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院(국정원)은 강제퇴직 강행이 위법·부당한 처분임을 잘 알고도 院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퇴직직원들의 명예 및 권리회복을 위한 소청심사·행정소송 등 절박한 최후의 구제수단을 보안성 등을 내세워 조직적으로 차단’한 것으로 나와 있다.

 

 

송영인 회장이 국정원 ‘98 강제퇴직 조사 실무T/F’가 작성한 조사활동 소명자료를 보여주며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시사저널 포토

‘살생부’ 증언에 유력 정치인들 이름 등장

 

‘최후의 구제수단’은 해직자들이 ‘국사모’ 또는 ‘국강투’ 등 모임을 만들어 소송에 나선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국정원은 보고서에서 ‘면직 일자·유형별로 구분해 명예회복 및 피해보상 대상자 선정’과 ‘국사모·국강투 등 유관단체 대표 등과 간담회를 개최해 명예회복 방안 협의·시행’을 조치 의견으로 내놨다.

 

그런데 조사보고서가 작성된 후 부임한 원세훈 국정원장은 해직자들이 조사결과를 수차에 걸쳐 요구했는데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보안상의 이유로, 나중에는 폐기처분했다며 자료를 내놓지 않았다는 게 해직자들의 주장이다. 이들에 따르면, 국정원은 재판이 진행 중이던 올해 2월에야 폐기처분했다던 진상조사 보고서를 재판부의 증거제출지시에 의해 제출했다.

 

해직자들은 “MB 정권뿐 아니라 현 정권 출범 후인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원장 재임 중에도 조사결과 보고서를 당사자인 해직자들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송영인 국정원강제퇴직진상규명촉구위원회 회장은 “강제퇴직을 당한 지 18년이나 지나고 조사가 끝난 지도 7년이 됐는데 이제야 그것도 재판부가 세 번에 걸쳐 지시를 하니까 내놓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정치권을 의식해 그랬다면 이건 무책임한 직무유기다”고 지적했다.

 

해당 보고 문서에는 그동안 해직자들이 주장해 온 정치권과의 연계 의혹과 관련된 내용도 포함돼 있다. 당시 ‘대기발령자 선정 기준이 부재’했고 또 ‘자의적’이었다는 판단과 함께 ‘특히 정치권과 연계된 일부 직원들이 자의적으로 작성한 소위 살생부(4종)에 등재된 직원 중 44%가 대기발령자에 포함된 사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나와 있다. 당시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도 증언을 통해 등장한다.

 

이와 별개로 그동안 대기발령 중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이들은 ‘수사국으로 하여금 대기자들의 명퇴 단서를 만들기 위해 지하 조사실로 주요보직 간부들을 소환해 체육복으로 갈아입히고 잠도 안 재우면서 욕설 등 인권유린의 밤샘조사를 하는 등 강압적 수사’, ‘국장급 고위간부 경우 지하실에 감금해 팬티까지 벗기고 갖은 모욕과 폭압적인 고문 자행’ 등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인사청문회 때마다 해결 약속해 놓고 외면”

 

국정원이 2004년 국강투와의 1심 소송에서 패하자 직권면직자의 변호를 맡아 승소한 적 있는 변호사에게 항소심을 맡겨 국정원 승소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게 했다는 대목도 나온다. 여기에는 당시 국정원 최고위 인사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무조건 승소해야 한다’는 지시에 대책회의를 개최했고 ‘퇴직자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 영입’ 등 조직적 대처방안을 논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책회의 후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대처방안 보고서에는 변호사뿐 아니라 재판부도 접촉해 협조를 당부하라는 지시 사항도 나와 있다. 내용을 요약하면 ‘서울고등법원 및 중앙지법 지휘부를 ○○단을 통해 접촉해 재판 동향을 파악하고 (국정)원 입장을 고려해 줄 것을 요구’, ‘법무법인 ○○의 임○○ 변호사에게 담당 재판부의 신원사항을 작성·전달해 (국정)원 관련 소송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와 협조 당부’ 등이다.

 

국정원 해직자들은 “MB 정권에서 국정원이 진상조사를 실시해 불법을 밝혀내고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함께 해결 약속을 하면서 믿고 기다려 달라는 요청에 기다려 왔으나 이는 해결 거부를 위한 지연 전략과 기만행위였다”고 비판하고 있다. “원세훈·남재준·이병기 원장 등이 인사청문회 때 해결 약속을 해 놓고 이를 외면했다”는 것이다.

 

이병호 현 원장은 지난해 3월16일 인사청문회 때 “98년에 많은 직원들이 강제퇴직을 당해 18년간 소송과 투쟁을 하고 있는데 직원들 화합을 위해 조치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알고 계시냐”는 질문에 “예, 알고 있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이 원장은 그해 8월6일 ‘강제퇴직 대표 5명’과의 면담 과정에서 해결의 뜻으로 “알겠다고 답변하지 않았느냐”는 항의에 “알아보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당사자들은 이를 ‘해결 거부’ 의사로 받아들였다. 한편 국정원은 해당 사안과 관련해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어서 입장을 밝히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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