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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승부조작 KBO·선수협은 뭐하고 있나… “책임지는 이 없고 유체이탈 화법이나 구사”

지금 하나의 유령이 프로야구를 배회하고 있다. 유령의 이름은 승부조작이다. 2012년 KBO리그를 뒤흔든 박현준-김성현 사태 이후 불과 4년 만에 재연되는 악몽이다.

 

유령은 태양빛을 받으며 깨어났다. 전 NC 다이노스 투수 이태양이 승부조작 혐의로 창원지방검찰청의 소환조사를 받으며 사건이 시작됐다. 검찰수사 발표는 충격적이었다. 현역 선수인 문우람(넥센 히어로즈, 상무 소속)이 승부조작을 설계한 것으로 드러났다. 먼저 브로커에게 승부조작을 제의한 것은 물론, 이태양을 브로커와 연결하고 금품 전달까지 도맡아 했다는 게  창원지검의 발표다. 이에 대해 이태양은 혐의 대부분을 인정한 반면, 문우람은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이후 수그러드는 듯하던 승부조작 사태는 KIA 투수 유창식이 한화 시절 승부조작 사실을 자진 고백하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당초 이 사건은 경찰이 내사를 진행하다 중단한 사건이었다. 경기북부경찰청은 지난 2월 불법 스포츠토토 운영업자와 도박 참여자를 내사하던 중 이들이 프로야구 승부조작에 개입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이에 관련자 진술을 토대로 승부조작 가담자로 추정되는 선수들을 내사했다. 그러나 뚜렷한 증거를 찾지 못해 북부경찰청은 소득 없이 내사를 종결했다.

 

미제로 묻힐 뻔한 사건의 진상은 언론의 집요한 취재를 통해 세상에 드러났다. 유창식의 승부조작 정황을 포착한 ‘엠스플뉴스’의 취재가 시작되자 유창식은 구단 측에 승부조작 가담 사실을 자진 신고했고, 구단과 KBO도 마지못해 이를 공개적으로 알려야 했다. 유창식은 7월25일 경찰청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고, 그 결과 당초 자진 신고 내용과 달리 승부조작 경기는 2경기였다는 사실이 새로 드러났다.

 

유창식(KIA)

 

 

 

KBO, 자체 진상조사 대신 사태 관망

 

유창식 승부조작이 공개되면서, 다른 선수들의 승부조작 의혹이 동시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유창식에게 승부조작을 제의한 브로커의 정체는 현역 프로 투수의 친형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브로커는 고교 시절 유망한 좌완 투수였고 대학 때까지 야구를 하다 최근에는 대전 지역의 야구교실 등에서 강습 활동을 해 온 인물이다. 동생의 소속팀 선수들과도 친분이 두터웠다는 게 야구인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이에 경찰 측은 추가 연루 선수가 있는지를 계속 수사하는 중이다. 거론되는 선수는 3~4명으로, 이 중에는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거물급 선수도 포함돼 있어 수사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주목된다.

 

이처럼 승부조작 사태가 불과 4년 만에, 1차 때보다 더 큰 규모로 재연되면서 KBO와 선수협의 안일한 대처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한 야구인은 “2012년에도 2016년에도 KBO와 선수협은 동일한 수뇌부가 이끌고 있다”며 “임기 내에 승부조작이라는 중대한 사태가 두 차례나 터졌는데도 누구도 책임을 지겠다는 이가 없고 유체이탈 화법이나 구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장 큰 비판을 받는 곳은 프로야구의 최고기관인 KBO다. KBO는 4년 전 승부조작 사태 때도 사후약방문식 처방과 사태 축소에 급급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번에 승부조작 사태가 재발하자 KBO는 2012년 버전을 ‘복사-붙여넣기’ 한 듯한 대책을 급조해서 내놓았다.

 

문제는 이런 대책이 4년 전에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던 데다, 지난 4년 동안 전혀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직 경찰관을 구장마다 배치하겠다던 ‘암행감찰관’ 제도나 ‘공정센터’는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12년 이후 열린 모든 경기를 전수조사 하겠다는 KBO의 방침이 나오자, 서울 구단의 한 코치는 “눈앞에서 보고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승부조작을 전수조사로 잡아낼 수 있다는 발상이 우습다”며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꼬집었다.

 

게다가 KBO는 이번 승부조작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이미 몇몇 선수가 승부조작 혐의로 수사 혹은 내사를 받고 있음을 인지한 상태였다. 엠스플뉴스 보도에 따르면, KBO 고위 관계자는 이미 7월14일 경기북부경찰청에 출석해 승부조작 조사에 대한 협조 요청을 받았고, 유창식의 이름까지 전해 들었다. 또한 이 시점에 이미 이태양이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KBO 측은 북부경찰청에 “전혀 아는 바 없다”는 답변으로 일관했고, 이 때문에 수사를 종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경찰 측의 주장이다.

 

이태양(NC)

 

 

 

선수협, 책임 빠진 사과문만 발표

 

더 큰 문제는 상황이 이 정도까지 왔는데도 KBO가 즉각 자체 진상조사를 진행하는 대신 사태를 관망했다는 데 있다. 한 야구인은 “경찰과 검찰 조사에서 무혐의가 나오기를 기다린 것 아니겠느냐”며 “승부조작 문제를 뿌리 뽑으려는 의지는커녕 조용히 묻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질타했다. KBO는 보도를 통해 이태양 승부조작 사실이 드러나자 뒤늦게 급조한 대책과 사과문을 내놓았고, 유창식 승부조작은 언론이 이를 폭로하기 직전에 보도자료를 통해 뒤늦게 공개했다.

 

선수협 역시 제대로 된 구실을 전혀 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2012년 1차 승부조작 사태 이후 선수협은 승부조작 방지 교육과 재발 방지 노력을 약속했다. 그러나 승부조작 예방 및 징계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은 전혀 마련된 바가 없고, 주기적이고 제대로 된 교육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그 사이 야구계에 승부조작 관련 이런저런 소문이 돌았지만 선수협은 진상조사는 않은 채 방관했다. 그러다 이태양 사태가 터지자 달랑 사과문 하나만을 발표했다. 사죄와 수사 촉구라는 내용은 있지만 책임은 빠진 사과문이다. 승부조작 방지를 위해 선수협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한 반성도 빠져 있었다.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태에도 선수협 수뇌부는 ‘전혀 몰랐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야구계 최고 책임 있는 두 기관의 무능과 무책임 속에, 승부조작의 유령은 4년 전보다 더욱 진화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전체 1번 지명 특급 유망주 출신, 국가대표 투수 출신이 조작에 연루됐다. 선수가 먼저 조작을 제의하고, 선수의 친형이 브로커 역할을 하는 등 내용 면에서도 충격적이다. ‘경기 시작 첫 볼넷’ 같은 단순한 조작 방식을 넘어 ‘4이닝 오버(양팀 합쳐 6득점)’ 같은 새로운 형태의 조작이 등장했다. 무엇보다 선수들이 승부조작을 감행한 시점이 2012년 사태로부터 불과 2년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는 점이 충격을 준다.

 

한 야구인은 “2012년 1차 사태 당시 야구계는 승부조작을 완전히 뿌리 뽑으려는 의지보다는, 막 살아난 프로야구 인기가 타격을 받지 않기를 바라는 기류가 강했다”며 “그때 제대로 승부조작의 싹을 없애지 않고 봉합한 대가를 이제 와서 치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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