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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게임에 밀려 ‘하락세’…‘포켓몬고’로 대반전 이룬 숨은 비결

닌텐도(任天堂)의 모바일 게임 ‘포켓몬고(Go)’가 세계 게임시장을 강타했다. 열풍을 뛰어넘어 광풍(狂風)이 불 조짐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본격적인 출시에 나설 경우 세계 게임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는 혁명적인 사건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① 불필요한 요소는 과감히 정리하라


닌텐도는 1889년 야마우치 후사지로(山内房治郎)가 세운 일본 게임 기업이다. 지난 2010년 시가총액 기준, 일본 제조기업 중 3위(850억 달러)에 랭크될 정도로 견실했다. 초창기 ‘아나후다’라는 화투를 만든 닌텐도는 1949년 창업주 손자인 야마우치 히로시(山内溥)가 사장에 오르면서 성장을 시작했다. ‘슈퍼마리오 브러더스’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으로 기네스북에까지 올라 있는 닌텐도의 대표작. 닌텐도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기간에도 매출 1조8386억 엔, 영업이익 5552억 엔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2009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닌텐도DS를 손에 들고 “왜 우리는 이런 게임기를 못 만드나”라고 질타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서울 용산의 한 전자상가에사 고객이 닌텐도 게임기를 써보고 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닌텐도 신화는 스마트폰 등장으로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로비오의 앵그리버드, 슈퍼셀의 클래시오브클랜 등 모바일 게임이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면서 콘솔(단말기) 게임계 강자였던 닌텐도는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올 초까지만 해도 닌텐도는 잊힌 기업이었다. 모두들 닌텐도를 가리켜 ‘재기불능 기업’ ‘시대변화를 못 읽어 망한 기업’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바둑에 있어 중요한 것이 복기(復棋)인 것처럼 닌텐도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살폈다. 그리고 선택한 것이 ‘초심으로 돌아가는 전략’이었다. 2013년 9월 야마우치 사장이 타계한 후 닌텐도가 가장 먼저 취한 전략은 비주력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한 것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올 6월, 24년간 보유해온 미국 메이저리그(MLB) 야구단 시애틀 매리너스 지분을 매각한 일이다. 하지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닌텐도가 비주력 사업을 정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53년간 CEO로 재직한 야마우치 사장은 사업 초기인 1950년대 식품업(라면)·숙박업·운수업(택시)에 손을 댔다. 하지만 다각화 전략이 실패하면서 그는 “한 우물만 파는 기업이 더 성공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았다”고 밝혔다. 이후 2002년 사장 자리를 엔지니어 출신의 이와타 사토루(岩田聰)에게 물려줄 때도 그는 “다른 업종에는 절대 손대지 마라”고 신신당부했다. 

 


② 전통을 지키되, 잘하는 것에 집중하라


닌텐도는 본사를 도쿄(東京)가 아닌 교토(京都)에 두고 있다. 대표적인 교토 기업이다. 닌텐도와 함께 분류되는 교토 기업으로는 교세라·니혼덴산·무라타제작소·호리바제작소 등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불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하게 성장하는 세계적인 강소 기업이라는 점이다. ‘기업가 정신’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장인정신을 뜻하는 ‘모노즈쿠리’는 교토 기업을 상징하는 대명사다. 지금의 닌텐도를 설계한 야마우치 사장은 평소 직원들에게 “100% 완벽하게 만들 게 아니면 아예 만들지 말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번에 출시한 ‘포켓몬고’ 역시 이러한 닌텐도의 기술 정신을 잘 보여주는 역작이다. 신화나 전쟁, 판타지가 난무하는 세계 게임 시장에서 닌텐도는 철저하게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승부를 걸어왔다. 대표작 슈퍼마리오 브러더스도 주인공이 현실에서 괴물과 맞서 싸운다는 내용으로 돼 있다. 이번 포켓몬고 역시 만화 애니메이션 ‘포켓몬’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티격태격하면서 게임을 풀어나간다. 이러다 보니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개발사 나이앤틱(Niantic)은 “1998년 출시된 닌텐도 게임 ‘포켓몬 레드 앤드 블루’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닌텐도는 포켓몬고 출시와 함께 조만간 시계처럼 손목에 차는 전자 기기도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기를 차면 사용자는 스마트폰을 켜지 않고도 주변에 포켓몬 캐릭터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③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라


야마우치 사장이 물러난 후 사장 자리는 ‘미스터 슈퍼마리오’라 불린 이와타 사토루가 물려받았다.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업은 그 분야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 야마우치 사장의 소신이었는데, 그는 이를 실천으로 옮겼다. 이와타 사장 역시 지난해 7월 담관암으로 사망했지만, 세상을 뜨기 전 그가 직원들에게 강조한 것 또한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혀 새로운 게임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시장 진출은 늦었지만 닌텐도가 집중한 것은 전혀 새로운 방식의 게임을 만드는 것이었다. 증강현실(AR)이라는 개념을 게임에 집어넣기로 마음먹은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타 사장이 죽고 1년이 지나서야 닌텐도는 기적같이 부활했다. 그러자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은 “죽기 전 포켓몬고를 기획한 이와타 사장이 마지막에 닌텐도에 좋은 선물을 안겨줬다”며 공로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2015년 7월에 숨진 이와타 사토루 전 사장은 ‘포켓몬고’를 직접 기획했다. 왼쪽은 닌텐토의 히트작 ‘닌텐도DS’


④ 기왕 성공하려면 거물과 손잡아라

 

닌텐도를 비롯한 교토 기업은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지나치게 고집이 센 ‘외골수’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보유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보니 외부 평가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닌텐도 역시 시장에서 “콘솔 게임은 끝났다. 이제는 모바일로 가야 한다”고 외칠 때마다 “아니다. 모바일도 수명은 오래가지 못한다. 소비자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고 항변해왔다. 하지만 실적이 곤두박질치면서 뒤늦게 모바일 게임 진출을 선언했다. 출발은 늦었지만 닌텐도는 과감한 기술제휴로 이를 만회하는 전략을 폈다. 포켓몬고는 닌텐도의 자회사 포켓몬컴퍼니와 나이앤틱이 공동으로 개발한 첫 작품이다. 나이앤틱은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구글 산하에 있었다. CEO인 존 한케는 구글어스와 구글맵스 등 GPS 기반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엔지니어다. 나이앤틱은 지난해 8월 구글이 지주회사 체제로 재편하면서 분사했다. 분사 직후 나이앤틱은 포켓몬컴퍼니, 닌텐도, 구글 등 3사로부터 3000만 달러를 투자받았다. 포켓몬컴퍼니 지분 30%를 보유한 닌텐도는 양쪽에 모두 투자해 이득을 얻고 있다. 물론 구글 역시 나이앤틱의 주주다. 결국 닌텐도는 구글이라는 거대 IT기업과의 협업을 부활의 열쇠로 봤으며, 현재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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