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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역할 축소, 新고립주의 확산 등 우려하는 백악관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은 최대 우방인 미국에도 파장을 일으켰다. 미국은 경제적·국제적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럴 수가!” 영국이 유럽연합(EU)으로부터 탈퇴를 결정한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 결과의 충격은 미국에도 그대로 전해졌다. 잔류 쪽을 택할 것이라는 여론조사가 보기 좋게 빗나가자, 미국 금융의 본산인 월가에도 파장을 몰고 왔다. 하지만 영국의 브렉시트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국제 정치를 총괄하는 백악관이다.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하고 이른바 ‘고립주의’를 택한 영국 국민들의 결정은 그동안 미국과 영국의 양대 축을 중심으로 형성돼 온 국제 질서의 변화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로 만든 세계 질서에도 또 하나의 균열이 생긴 것이다. 더구나 영국 국민의 ‘고립주의’ 선택은 미국과 영국 중심의 국제 질서의 핵심 조직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의 약화로 발전할 수도 있고, 이는 결국 미국의 쇠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브렉시트, 트럼프의 ‘신고립주의’와 비슷

 

브렉시트가 바로 영국의 나토 탈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제가 더욱 흔들릴 경우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브렉시트라는 고립주의를 선택한 영국 국민들로부터 집단방위체제인 나토에 대한 회의론이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나토 회원국들 중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을 나토 방위비로 부담하는 핵심 5개 국가 중 하나다. 이슬람국가(IS) 격퇴는 물론이고 대(對)러시아 견제를 위해 필수적인 나토에서의 영국 리더십이 필요할 때, 영국이 국내 문제를 이유로 이를 외면한다면 미국은 더욱 난처한 상황에 처하고 만다. 일단 상황 수습이 급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 직후 성명에서 “미국과 영국의 특별한 관계는 지속될 것이며 영국의 나토 회원국 지위는 미국 외교·안보·경제 정책의 핵심적인 초석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며 “영국이 유럽연합과 탈퇴 협상을 시작하더라도 유럽과 영국은 세계의 지속적인 안정과 안보와 번영을 위한 미국의 필수 파트너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안심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도 6월28일,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NPR)과의 인터뷰에서 “브렉시트 투표 이후 마치 나토가 무너지고 대서양에서 미국 동맹이 해체되며, 모든 국가가 막다른 골목으로 향하는 것 아니냐는 히스테리가 있는 것 같다”며 미국민이 가지고 있는 불안감을 그대로 표현했다. 비록 오바마가 “브렉시트로 인해 대격변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브렉시트는 완전한 유럽통합 프로젝트를 달성하는 과정에 나타난 일시적 정지 버튼”이라는 유화적인 해석을 내놨지만, 브렉시트 결정이 미국민이나 백악관의 발등에 얼마나 큰 불덩어리를 던졌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7월8일 폴란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 유럽의 정치와 안보 지형을 바꿀 수도 있는 브렉시트 후폭풍 차단에 나섰지만,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오바마 입장에선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속도를 최대한 늦추도록 영국과 유럽연합 양쪽을 다독일 예정이다. 하지만 기존 유럽연합 국가들은 “빨리 나가라”고 영국을 압박하는 등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다. 특히,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 여파로 스코틀랜드가 다시 분리독립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미국에는 악재다. 브렉시트에 따라 영국연방이 분리된다면 영국은 나토에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유엔(UN)에서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격에 대한 회의론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텍사스주, 연방 탈퇴 움직임…“찻잔 속 태풍”

 

브렉시트가 백악관을 불안하게 만든 또 다른 이유는 이른바 ‘신(新)고립주의’ 확산이다. ‘세계 경찰’을 자부하며 국제 분쟁에 적극 개입해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기존의 전략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며 국내 문제 해결에 전력하겠다는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의 주장에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은 더욱 기름을 부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셈이다. 브렉시트를 통해 표출된 반(反)이민 정서나 소위 기득권층에 대한 분노와 실망 그리고 자유무역에 대한 반발과 세계화에 대한 거부감 등은 트럼프가 내세운 ‘신고립주의’와 이념·정서적으로 닮은 부분이 많다. ‘트럼프 돌풍’이 ‘미국판 브렉시트’가 돼 실제로 대통령 당선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이는 단지 정권 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오바마 행정부나 미국 정부가 펼쳐온 대내외 정책 모두가 송두리째 부정되는 결과를 의미한다. 트럼프는 이미 대선 과정에서 ‘나토 무용론’까지 언급하고 있는 형국이다.

 

더구나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은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미국 텍사스주(州)의 분리독립주의자들이 ‘텍시트(Texit·텍사스주 연방 탈퇴)’를 들고나오게 하고 있다. 텍사스는 과거 멕시코의 한 주(州)였으나 1836년 멕시코와 전쟁을 거쳐 ‘텍사스 공화국’으로 독립한 뒤 1845년까지 독립국 지위를 유지했다. 이후 경제적인 어려움이 잇따르자 미국의 28번째 주로 편입됐다. 하지만 지금은 원유 개발 등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텍시트’를 요구하는 이들은 “텍사스의 연간 경제 규모는 약 1조6000억 달러로 독립 후에도 세계 경제 10위권에 들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텍사스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와 뉴햄프셔주 등 다른 지역에도 분리독립 세력이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브렉시트가 당장 미국 내부의 분란을 촉발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에서 분리독립 요구는 거의 ‘찻잔 속의 태풍’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국제 정세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은 거의 영국을 오른팔 삼아 국제경찰 지위를 유지했다. 유럽에 대한 패권 유지도 영국이라는 강력한 파트너를 통해서 한 셈이다. 그런데 유럽연합에서 영국 국민들이 탈퇴하겠다고 결정했다. 그리고 그 영국인들의 결정은 이제 ‘유럽연합 무용론’에 이어 ‘나토 무용론’으로 발전할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으로선 최악의 시나리오이고,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브렉시트 결정이 당장 영국이 나토 탈퇴를 결정할 만큼 국제 정세의 변화를 몰고 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미국은 올해 누가 대통령에 당선돼도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에 따른 파급효과에서 벗어날 수 없을 전망이다. 브렉시트 결정이 미국의 우려를 불러일으킨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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