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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시스템 한계 상황에 처한 할리우드의 현실, 《인디펜던스데이2》가 잘 보여줘

바야흐로 ‘블록버스터’의 시즌이다. 천문학적인 제작비와 거대한 볼거리로 무장한 블록버스터는 가장 많은 사람이 극장을 찾는 방학시즌을 겨냥해 제작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올해의 포문은 《인디펜던스데이: 리써전스》(《인디펜던스데이2》)가 열었다. 그 뒤를 이어 《제이슨 본》 《고스트버스터즈》 《스타트렉 비욘드》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개봉 대기 중이다. 


'미국 만만세'를 외치는 인디펜더스데이2
《인디펜던스데이2》, ‘미국 만만세’ 영화 

《인디펜던스데이2》에는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맞춰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에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 세계 연합군의 활약을 그린다. 솔직히 말하겠다. 미국이 앞장서 외계인을 무찌르고, 연합군은 그저 거들뿐이다. 소위 말하는 ‘미국 만만세’ 영화다. 연출을 맡은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이미 《인디펜던스데이》(1996)에서 미국 찬양의 테마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바 있는데, 속편에서는 그 스케일을 훨씬 키웠다.

20년 전에 지구를 침공했다 포로로 잡힌 외계인들이 이상반응을 보인다. 아프리카에 비밀리에 숨겨 놓았던 외계인의 비행물체도 갑자기 작동을 시작한다. 다시 시작된 외계인의 공격. 미국 대통령은 이번에도 당당하게 맞설 것을 지시한다. 지구우주방위대의 수장 데이빗 레빈슨(제프 골드브럼)과 직접 전투기를 몰고 외계인에 맞섰던 전 대통령 토마스 J 휘트모어(빌 풀먼) 등 원년 멤버에 더해, 젊은 전투기 조종사 제이크 모리슨(리암 헴스워스)이 새롭게 합류해 다시 한 번 외계인을 지구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 

황당하고(외계인이 지구를 공격한다고?), 뻔한(왜 매번 지구를 지키는 건 미국인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인디펜던스데이》 시리즈가 블록버스터의 대명사로 통하는 이유는 압도적인 규모의 폭발 장면에 있다. 재난 블록버스터라면 으레 세계적인 랜드마크 하나 정도는 부숴주는 게 예의인데, 이의 시작이 《인디펜던스데이》였다. 외계의 우주선이 쏜 광선 한 방에 백악관이 폭발했던 장면이 그것. 이 정도는 약과라는 듯 《인디펜던스데이2》에서는 영국 런던,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등 도시 전체를 아예 없애 버린다.

그 와중에 미국의 대표적인 도시는 공격은 당해도 런던이나 두바이와 같은 규모의 피해를 보지는 않는다. 왜 아니겠는가. 외계인마저 벌벌 떨게 하는 우주 최강의 군사력을 지닌 미군이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예, 그러세요” 웃고 넘어가지만, 예전에는 이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았다. 눈을 현혹하는 압도적인 이미지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전파하려는 할리우드의 속셈이 괘씸하다는 요지였다. ‘블록버스터는 멍청하다’는 세간의 인식이 출발한 배경이다. 하지만 모든 블록버스터가 그런 건 아니다.  
'스타트렉 비욘드'도 스타트렉의 명성에 기대 만든 영화일 뿐이다.

올여름 블록버스터 목록, 오리지널이 없다

블록버스터의 시작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죠스》(1975)였다. 식인 상어가 사람을 공격한다는 단순한 설정으로 공포감을 자아내는 《죠스》는 당시 1200만 달러(약 15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이었다. 《인디펜던스데이》가 개봉 일주일 만에 1억 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린 걸 고려하면 구멍가게 사탕값 정도이지만, 당시 할리우드 기준으로는 전례 없는 시도였다. 극중 등장하는 식인상어를 특수제작하고, 개봉 이후에 파생될 수익까지 계산에 넣어 테마파크를 비롯해 수십 종의 관련 상품을 출시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죠스》는 할리우드 최초의 1억 달러 흥행 수입 돌파는 물론, 발 빠르게 속편 제작이 이어졌고, 그로 인해 ‘블록버스터’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켰다. 

블록버스터는 폭탄의 이름으로, 한 구역(block)을 송두리째 날려버릴(bust) 위력을 지녔다고 해서 붙여졌다. 상상할 수 없는 제작비를 투입해 최대한 많은 스크린을 확보, 개봉 1~2주 만에 흥행 수익을 극대화하는 영화라는 의미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미있는 이야기는 물론, 거대한 볼거리는 필수다. 《죠스》의 성공은 곧 《스타워즈》의 제작을 부추겼고, 《스타워즈》 속편들의 연이은 흥행은 《인디아나 존스》 《터미네이터》 《다이하드》 《에일리언》과 같은 대표적인 시리즈를 불러왔다. 지금은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등 제작 단계부터 시리즈 전편이 동시에 진행되는 수준에 이르렀고, 거대한 볼거리를 가능케 한 기술의 발전은 슈퍼히어로물의 전성시대로 꽃을 피웠다. 

이제 《인디펜던스데이2》와 같은 멍청한 블록버스터는 흔하지 않은 이벤트가 되었다. 극중 아메리카니즘의 메시지에 상관없이 일상에서 볼 수 없는 재난 이미지를 즐기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인디펜던스데이2》는 나름 즐길 만한 블록버스터다. 오히려 할리우드가 직면한 고민은 다른 데 있다. 올여름 시즌을 책임져야 할 블록버스터의 목록에는 오리지널이 없다. 《인디펜던스데이2》는 속편이고, 《제이슨 본》은 ‘본’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이며, 《고스트버스터즈》는 남자 배역을 여자로 바꾼 리부트다. 

예전의 명성에 기대 영화(榮華)를 누리는 할리우드는 현재 신선한 콘텐츠 발굴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이디어 문제라기보다는 제작시스템의 한계라고 보는 편이 낫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제작비에, 북미 자국 시장의 수입이 더는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할리우드는 전 세계 시장에서 더욱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모험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보다는 기존에 성공했던 영화를 끌어와 속편·리메이크·리부트와 같은 방식으로 살짝 손을 보는 식이다. 이것이 안정적인 흥행을 이끄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때 할리우드는 《유주얼 서스펙트》(1995)의 브라이언 싱어, 《이블 데드》 시리즈의 샘 레이미 등 독립영화 계열의 감독에게 과감하게 블록버스터 영화의 연출을 맡기면서 《엑스맨》(2000), 《스파이더맨》(2002)과 같은 슈퍼히어로의 대표작을 만들었다. 또한 로버트 저메키스의 《캐스트 어웨이》(2000)처럼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고립되었다가 극적으로 탈출한 주인공의 삶을 통해 인생이란 무엇인가, 사유하게 하는 진화한 블록버스터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올해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는 목록은 화려해도 산업을 선도할 만한 작품은 없어 보인다. 한마디로 속 빈 강정이다. 《인디펜던스데이2》는 현재 할리우드가 처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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