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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틴, 뇌질환 치료 효과 입증 ··· "예방 위해 흡연" 주장은 억지
1990년대 후반부터 니코틴이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씨병·정신분열증·우울증·궤양성 대장염 등에 효능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심심치 않게 발표되었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제약 회사들은 니코틴의 효능을 유지하면서 부작용을 제거한 니코틴 모방제를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근에는 임상 실험을 통해 니코틴의 효능을 입증한 연구가 발표되었다. 미국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 폴 샌버그 박사와 버몬트 대학 폴 뉴하우스 박사가 니코틴이 뇌질환에 치료 효과가 있음을 임상 실험으로 입증한 것이다.
샌버그 박사는 투렛 증후군(경련과 함께 격렬한 충동적 행동을 유발하는 뇌질환) 환자 70명 중 35명에게 치료제 할돌만을 투여하고 나머지 35명에게는 치료제와 함께 니코틴 패치(니코틴 금단 증상을 막기 위해 소량의 니코틴을 공급하는 금연 치료제)를 붙여 임상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니코틴 패치를 붙인 그룹이 훨씬 치료 효과가 높았다.
뉴하우스 박사에 따르면, 파킨슨씨병 환자 15명에게 니코틴 패치를 사용하게 한 결과 몸의 움직임과 뇌기능이 상당히 좋아졌다. 그는 또 애보트 제약회사가 만든 합성니코틴 ABT 418을 투여한 뒤 표준 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언어 학습과 기억 기능 점수가 크게 높아졌다고 밝혔다.
병 주고 약 주는 니코틴의 두 얼굴
이 같은 효과는 니코틴이 도파민과 아세틸콜린 같은 뇌의 신경 전달 물질을 조절함으로써 나타나는 것이라고 연구자들은 설명한다. 뇌에 도달한 니코틴이 도파민 계를 활성화해 기분을 유쾌하게 하고, 피곤을 없애는 효과를 갖는 것이다. 또 아세틸콜린을 자극해 기억력을 증진시키고, 집중력을 향상시킨다. 미국 휴스턴 베일러 의과대학 존 대니 박사에 따르면, 니코틴이 학습과 기억을 관장하는 뇌 부위인 해마에서 아세틸콜린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령 아세틸콜린이 해마로부터 사라지면서 치매 증상이 나타나는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 니코틴을 투여하면 해마의 아세틸콜린이 활성화해 치매 증상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니코틴을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은 담배를 피우거나 니코틴 패치와 같은 대체 물질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부 애연가의 주장처럼 담배를 피워 니코틴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면 치매(알츠하이머병)나 다른 뇌 질환에 걸리지 않을까? 의사들의 대답은 명확하다.
“뇌 질환 치료제로서 니코틴 연구는 안전성까지 검증한 것이 아니며 니코틴의 예방 효과도 장담할 수 없다. 더욱이 니코틴이 유발하는 치명적인 질병이 적지 않기 때문에 뇌 질환 예방을 위해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흡연자들의 궁색한 변명밖에 안된다”라는 것이 서홍관 교수(서울백병원·가정의학과)의 설명이다.
서교수가 지적했듯이 니코틴은 선과 악이라는 두 얼굴을 동시에 갖고 있다. 뇌질환을 치료하는 선(善)을 갖고 있는 반면 각종 호흡기 계통 질환의 원인이 되는 악(惡)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뇌질환 예방하다 죽음 재촉 말아야
많은 양의 니코틴은 헤로인·코카인과 마찬가지로 무서운 독성을 갖는다. 곤충을 죽일 때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이며, 60㎎만 투여하면 사람도 죽는다. 대개 담배 1개비에 니코틴 0.5㎎이 함유되어 있으니까 1백20개비를 한꺼번에 피우면 즉사할 수 있다. 니코틴은 또 심장을 빨리 뛰게 하여 혈관을 좁히고 혈압을 높여 심혈관 질환을 일으킬 위험이 높다. 나쁜 콜레스테롤의 양을 증가시키고 혈관 벽에 달라붙도록 하여 동맥경화증·고혈압·심장병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키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중독성이다. 니코틴은 아편 수준의 습관성 중독을 일으킨다. 니코틴은 흡연자가 더 흡연을 하도록 하는 보상 체계를 만들어 흡연자를 길들인다. 따라서 정기적으로 흡연하는 이는 수주~수개월 만에 니코틴에 의존하게 되어 담배를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게 된다.
또 담배는 니코틴뿐 아니라 니코틴보다 더 치명적인 타르와 같은 유해 물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폐암 등을 일으키는 매우 위험한 기호품이라는 것이 의사들의 설명이다.
알츠하이머병을 꾸준하게 연구해온 서유헌 교수(서울의대·약리학)는 “치매를 예방하려고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치매 예방을 위해 담배를 끊지 않는다면 치매에 걸리기도 전에 생명을 잃을 수 있다”라고 강조한다. 빈대 한 마리 잡으려다 초가 삼간 날리는 격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