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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식기관 파괴, 인류 멸종시킬 수도…음식물 통해 유입, 전 세계 무방비

벨기에산 닭과 돼지 고기에서 허용치가 넘는 다이옥신이 검출된 뒤로 전세계가 다이옥신 공포에 휩싸여 있다. 네덜란드와 프랑스 등 유럽연합 국가뿐만 아니라, 미국의 낙농 제품까지 다이옥신에 오염되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다이옥신 파동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60년대에 DDT가 체내에 축적된 임산부들이 기형아를 낳은 이후, 화학물에 대한 공포가 이처럼 전세계를 강타한 적은 없다. 하지만 다이옥신은 DDT와 달리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대표적인 발암 물질…발생 경로 아직 몰라

미국 환경보호국(EPA)은 94년 9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다이옥신을 인체 건강을 해치는 심각한 오염 물질이라고 분류했다. 인체는 일정량 이하의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자체 정화 능력이 있다. 따라서 식품이 허용치 이하만 오염되면 건강을 크게 해치지 않는다. 이를 ‘잔류허용한계’라고 한다. 하지만 다이옥신은 엄밀히 말하자면 잔류허용한계치가 따로 없다. 조금만 신체에 쌓여도 건강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현재 대다수 미국인 몸에서는 면역 체계에 손상을 입히고 고환의 크기를 줄일 수 있는 다이옥신이 발견되고 있다. 미국인 1%(2백50만명 가량)가 몸안에 자궁내막염을 일으키고, 정자 수와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량을 줄어들게 하기에 충분한 양의 다이옥신을 지니고 있다.

더욱이 다이옥신은 대표적인 발암 물질로 알려져 있다. 다이옥신이 암을 일으키는 기제가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다이옥신을 많이 축적한 사람의 몸에서 암 세포가 발견되는 일이 잦다. 다이옥신은 신체 가운데 생식을 담당하는 기관을 파괴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다이옥신은 이미 인류 건강을 크게 해쳤다. 산업 발전과 함께 크게 늘어난 다이옥신으로 인해 50년 전보다 전세계 남자의 정자 수는 절반 가량 떨어졌다. 고환암이 지난 50년 동안 3배로 늘어났고, 전립선암도 2배로 증가했다. 여성에게 발병하는 자궁내막증은 과거에는 희귀병이었지만 지금은 미국 여성 5백만명이 자궁내막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이 병은 자궁 세포가 자궁 밖에서 비이상적으로 증식하는 병이다. 60년대 여성들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은 20명 가운데 1명꼴이었는데, 지금은 8명 가운데 1명꼴로 크게 높아졌다.

다이옥신은 자연 환경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화학물질이다. 종류도 수백 가지에 이른다. 이 가운데 가장 독성이 강한 것이 2,3,7,8-테트라클로로디벤조피다이옥신(TCDD).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97년 2월14일 2,3,7,8-TCDD를 1등급 발암 물질로 지정했다. 국제암연구소는 암을 일으킨다고 명확하게 알려진 오염 물질들을 1등급 발암 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PCB처럼 다이옥신과 비슷한 물질과 다이옥신 화합물의 독성은 TCDD를 얼마나 함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다이옥신은 염소화합물이 타는 과정에서 탄화수소와 결합하면서 생성된다. 하지만 다이옥신이 어디서 생기는지는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발생량의 절반 정도만이 그 경로가 밝혀졌다. 밝혀진 양의 95%는 염소화합물이 담긴 쓰레기를 태우는 소각장에서 배출된다. 다이옥신은 염화폴리비닐(PVC) 플라스틱과 종이를 만들 때도 발생한다. 종이나 펄프를 표백할 때 염소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다이옥신은 고엽제인 에이전트 오렌지에도 들어간다. 에이전트 오렌지는 나이애가라 폭포 근처 러브 운하에서 발견되어 고엽제 공포를 일으켰고, 이탈리아 세베소에서 발견되어 주민들로 하여금 정든 고향을 떠나게 할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다이옥신은 주로 음식물을 통해 몸안에 들어온다. 이는 물에서는 녹지 않고 지방에 녹는 다이옥신의 특성 때문이다. 동물 지방에 녹은 다이옥신은 동물의 몸안에 축적되어 있다가 먹이사슬을 따라 이동한다. 따라서 육식 동물 지방에서 많이 발견된다. 생선도 예외가 아니다. 생선에서 발견되는 다이옥신 양은 자연 환경에서보다 10만배나 많다. 미국 환경보호국 보고서에 따르면, 다이옥신은 물과 친하지 않다. 물에 풀리면 다이옥신은 물과 떨어지려고 숨을 곳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체내 지방을 갖고 있는 생선의 지방 안으로 들어간다. 육류와 생선에 쌓인 다이옥신은 최종 소비자인 인간에까지 올라가 몸안에 고스란히 쌓이게 된다.

남자의 몸안에 들어간 다이옥신은 몸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다이옥신이 방사능 물질처럼 반감기를 거치면서 스스로 독성이 줄어들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여성의 경우는 몸안에 쌓인 다이옥신의 일부가 몸 밖으로 빠져나오기도 한다. 임신했을 때 탯줄를 통해 아이에게 넘어가거나 지방이 많은 모유에 녹아 신생아 몸안으로 들어간다.

미국 빙햄턴에 있는 뉴욕 주립 대학 아널드 쉑터 박사가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뉴욕 슈퍼마켓에서 구입하는 많은 음식물에서 다이옥신이 발견되었다. 쉑터 박사는 “미국 환경보호국이 설정한 허용치보다 적어도 50배나 많은 다이옥신을 미국인들이 매일 섭취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민물 생선을 즐겨 먹는 사람, 다이옥신이 배출되는 곳에서 사는 사람, 모유를 먹는 아이, 육류와 낙농제품을 많이 먹는 사람들이 다이옥신 축적량이 많다. 그렇다고 식생활을 바꾼다고 다이옥신 섭취량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워낙 광범위하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다이옥신을 줄이는 방법은 다이옥신 오염을 일으키는 시설을 폐쇄하는 방법밖에 없다.

94년 7월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제2차 다이옥신 시민회의에 참가한 환경운동가들은, 다이옥신 배출을 막기 위해 두 가지를 선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선 시·의료기관 등이 운영하는 쓰레기 소각장을 비롯해 시멘트나 벽돌로 만든 소각로를 폐쇄하고, 플라스틱과 PVC 같은 염소 유기화합물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이옥신을 줄이자는 요구가 점차 거세지자 미국 환경보호국은 갖가지 회의에서 나온 요구들을 분석 평가해, 95년 가을 다이옥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 뒤 미국은 다이옥신의 배출 허용치를 비롯해 몇 가지 기준을 결정하고, 다이옥신을 배출하는 산업 생산 시설을 도시 밖으로 옮기거나 폐쇄하고 있다.

한국에는 심각한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다이옥신의 잔류허용한계량도 설정되어 있지 않다. 농림부와 보건복지부가 다이옥신 오염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사실 정부 당국은 다이옥신이 얼마나 주변 환경에 퍼져 있고 식품에 들어 있는지 파악할 능력이 없다. 다이옥신을 검사하는 데 필요한 특수 장비와 시설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예산을 요청하고 있으나 정부 관계자들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

다이옥신은 호모사피엔스를 멸종시킬 수도 있는 무서운 물질이다. 주로 생식 능력과 관련된 인체 기관을 서서히 파괴하기 때문이다. 화학산업이 국내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을 감안하면, 국내에도 다이옥신이 엄청나게 퍼져 있을 것이다. 벨기에 다이옥신 파동을 계기로 다이옥신 대처법은 각국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정책 과제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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