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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들>에는, 아들은 없고 아버지만 있다. 그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소년을 만난다. 그 소년은 아들과 비슷한 또래이다. 복수극이 될 수도, 대화합의 드라마가 될 수도 있는 설정을 통해 <아들>은 그 두 갈래 길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를 보여준다.

영화에는 사건이라고 할 만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우연히 자기 곁에 찾아든 아들의 살인범을 마주하는 아버지의 고통만으로도 긴장감이 팽팽하다.

직업 교육 학교의 목공 강사인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는 5년 전 아들을 잃은 후 아내와도 이혼한 처지다. 새로 들어온 훈련생 프란시스(모르강 마린)의 서류를 훑어보던 그는 평정심을 잃는다.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아들 살해범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소년은 목공을 배우겠단다. 갈등 끝에 그는 프란시스를 자신의 훈련생으로 받아들인다.

남자가 극심하게 동요하는 와중에도 정작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은 아무 것도 모른다. 심지어 그 남자에게 호의를 느끼고 자기 후견인이 되어 달라고까지 부탁한다. 소년이 남자와 교감하고 신뢰감을 품는 계기는 단순하다. 교사로서의 성실함, 장인으로서의 비상한 능력에 감탄하는 것이다.
그 과정은 다소 우스꽝스럽다. 소년은 묻는다. ‘내 오른쪽 발에서 당신 왼쪽 발까지 거리는?’ ‘여기에서 저 차 타이어까지의 거리는?’남자는 오차 없이 자로 잰 듯이 답하고, 소년은 자를 들고 거리를 잰다. 영화에서 연출자가 자신들의 유머 감각을 드러내는 거의 유일한 대목이기도 하다.

어느 날 올리비에는 단둘이 있는 기회를 잡는다. 휴일, 목재소로 향하는 외딴 도로 위가 그 공간이다. 후견인이 되어 달라는 부탁을 받아 합법적으로 질문할 권리를 쥔 아버지는 정체를 숨긴 채 집요하게 아이를 심문한다. 하지만 아들을 죽일 당시의 정황을 듣고는 자제력을 잃는다. 모든 것이 드러나는 순간, 아이는 겁에 질려 도망친다. 그러면서 외친다. 나는 죄값을 충분히 치렀노라고.

영화는 지극히 단순한 사건을 통해 인간 심리의 복잡성, 법적인 단죄와 반성 사이의 간극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어떤 설교도, 고민이 담긴 대화도 없다. 그저 상황을 통해 드러낼 뿐이다.

벨기에 출신인 다르덴 형제는 본디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1970년대부터 60여 편에 이르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명성을 쌓았고, 1986년부터 비로소 극영화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2002년 만든 이 작품이 다섯 번째 극영화이다. 첫 작품 <플래쉬>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파문을 일으키더니, 1999년 외국인 노동자를 소재로 한 <로제타>로 칸 영화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상영 시간은 1백3분. 밀도 높은 단편 소설을 읽고 난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아버지 역을 맡은 올리비에 구르메는 마른 목재처럼 건조한 삶을 사는 남자의 불안을 탁월하게 연기해 2002년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아쉽게도 국내에서 다르덴 형제의 다른 작품을 볼 방법은 아직 없다. 2월20일 서울 하이퍼텍 나다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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