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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를 입고 햄버거를 씹으며 하루 종일 컴퓨터에 코를 박고 있던 20대 청년이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는 카지노 같은 동네. 실리콘 밸리는 어떤 곳인가.

'주말을 가족과 함께 보낸다'는 말이 '나는 실패한 사람이다'와 동의어로 받아들여지는 곳, 회사 건물과 일벌레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주택만이 다닥다닥 붙어 있을 뿐 문화 예술 공간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곳. 샌프란시스코 남쪽에서 샌호제이까지 이어진 이 살벌하고 황폐한 공간에는 오늘도 인터넷으로 백만장자가 되겠다는 야심만만한 젊은이들이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다. 자기의 주식 옵션이 대박을 터뜨릴 날을 꿈꾸며. 그러나 모두가 돈방석에 올라앉는 것은 아니다. 전세계 언론이 쉴새없이 벤처 영웅들의 성공담을 대서 특필하지만, 사실은 4~5년간 죽도록 일하고도 휴지조각에 불과한 주식 옵션만을 손에 쥔 채 사라지는 불운한 천재들이 비일비재하다.
벤처 캐피탈의 정체와 돈 굴리기 전략은?

<벤처@실리콘 벨리>의 저자 남유철 박사(법학)는 전세계 벤처 기업인의 성지(聖地)와도 같은 실리콘 밸리의 실체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헤이스팅스 법과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실리콘 밸리에 꾸준한 관심을 기울여 온 저자는, 경제부 기자 출신답게 추상적 이론이 아닌 현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서 인터넷 경제의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특히 저자가 '인터넷 시대의 고리대금업자'라고 이름 붙인 벤처 캐피탈리스트들의 정체와 그들의 돈 굴리기 전략을 파헤친 대목(제3장)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또한 애플컴퓨터를 창업한 스티브 잡스, 넷스케이프의 짐 클락 등 실리콘 밸리에서 신화를 만들어 낸 '벤처혁명가'들의 성공 뒷얘기(5장 ·6장)는 우리나라 벤처 기업인에게도 타산지석이 될 법하다. 이 책이 지닌 또 하나의 미덕은 우리들이 인터넷 경제에 관해 궁금해 하는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코스닥 열기에서 보듯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인터넷 경제와 관련한 불가사의 중 하나는 왜 엄청난 적자를 보고 있는 벤처 기업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여서, 유명한 주식 평론가 봅 브링커는 '인터넷 회사도 회사인데 어떻게 주식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을 벗어날 수 있는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리콘 밸리와 월 스트리트는 그의 말에 코웃음을 칠 뿐이다. 실제로 누군가가 인터넷 주가가 너무 높다며 주식을 내다 팔면 아직도 인터넷 주가가 저평가되어 있다며 재빨리 집어드는 투자자들이 줄을 서고 있다. 왜 그럴까.

저자는 인터넷을 전기 ·전화 발명과 비교한다. 전기와 전화는 인류의 미래를 바꾸어 놓았지만 막상 그것이 발명되었을 때 그 혁명적 변화를 내다본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인터넷이 가져올 엄청난 변화를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실리콘 밸리 사람들은 인터넷의 미래 가치가 높은 주식값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인터넷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믿음이 다시 인터넷 경제를 부추겨 그 낙관을 더욱 낙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우리 시대 자본주의의 아이러니이다. 미래는 불확실한 것이다. 그러나 실리콘 밸리도, 월 스트리트의 투자자도, 벤처 캐피탈도 그 불확실성의 정체를 파악하려 들지 않는다. '누가 좋은 세월을 감히 깨려 하겠는가.'

여기서 저자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한다. "'언제나 사람들은 새로운 발명을 과소 평가했다'는 역사적 교훈 때문에 인터넷을 과대 평가하고 있는 현상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는 머니 게임의 양상이 어떻게 전개되든지 인터넷 그 자체가 인류의 미래를 새로운 차원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저자가 밝힌 대로, 실리콘 밸리의 벤처 기업가들을 다소 과장되게 '혁명가'라고 표현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인터넷 혁명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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