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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 <푸줏간 소년>

<푸줏간 소년>은 ‘능구렁이 악동의 성장기’이다. <양철북> <델리카트슨 사람들> <레올로>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 거야>에 이르는 유럽 성장 영화의 맥을 잇고 있다. 이런 영화들은 심성 고운 아이들의 시련기와는 거리가 멀다. 대신 ‘나쁜 소년’이 얼마나 상처받기 쉬운 존재인지, 세상을 보는 시선이 얼마나 그로테스크할 수 있는지, 유머가 위선을 까발리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악동 프랜시(이몬 오웬)는, 위선적인 어른들과 나약한 부모 밑에서도 별 탈 없이 자란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는 과거의 영화를 들먹이며 걸핏하면 주먹질을 해대고, 어머니는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우울증 환자다. 부모의 불화에 익숙한 프랜시는, 오히려 그들을 연민한다. 그의 유일한 고민거리는, 자신을 ‘돼지’라고 부르며 경멸하는 누젠트 부인과 그의 ‘범생이’ 아들이다.

첫 번째 가출 뒤 어머니를 잃은 프랜시는, 어머니를 모욕하는 뉴젠트 부인을 응징하기 위해 그의 집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이 사건 때문에 수도원으로 끌려가고, 그 사이에 친구 조의 마음이 멀어진다. 친구의 배신에 넋이 나간 그는, 아버지마저 자기를 배반하자 통제력을 잃는다. 아버지가 쓸쓸히 목숨을 거둔 뒤, 부모의 추억을 좇아 부모의 신혼 여행지를 찾아간 프랜시는, 충격적인 증언을 듣는다. 멋진 트럼펫 주자였다던 아버지가 원래부터 개망나니였다는 것이다. 절망한 그는 마을로 돌아와, 뉴젠트 부인에 대한 복수극을 준비한다. 온 마을이 재림하는 마리아를 맞느라 들뜬 날, 프랜시는 칼을 들고 뉴젠트 부인을 찾아간다. 이제 푸줏간 소년은 도살자가 된다.

프랜시의 악행은 과도하지만 이해할 만하다. 소년의 분노와 절망에 개연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강간하는 신부와 무감각한 어른들 속에서도 프랜시의 내면은 강단 있고 호쾌했다. 성도착자라는 것이 탄로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신부를 다독일 줄도 알고, 상상 속에서 아리따운 마리아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세상에 기대하는 것도, 놀랄 일도 별로 없는 냉소적인 프랜시였지만, 믿을 만한 것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하자 부주의한 무례를 참지 못하게 된 것이다.

완전히 낭만적이라고도, 아주 슬픈 이야기라고도, 즐거운 코미디라고도 말하기 어려우면서 그 전부인 영화.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과 그로테스크한 유머 감각이 빛난다. <크라잉 게임>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마이클 콜린스> 등을 만든 닐 조던 감독의 여섯 번째 작품으로 98년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베를린 영화제가 특별상으로 보답한 소년 이몬 오웬의 연기도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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