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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총선·보수 여론 의식해 중단… 4월 이후 단행할 듯

비전향 장기수 문제에 관한 한 정부는 늘 현실과 당위 사이에서 고민해 왔다. 인도적 측면이나 남북 관계를 고려할 때 전향적 조처가 필요하다는 것이 당위의 차원이라면, 일부 보수 언론의 냉전적 공세와 상호주의에서 맴도는 국민 여론은 현실 차원이다. 이 당위와 현실의 간극에서 정부는 또다시 ‘일보 전진 그러나 일보 후퇴’의 길을 택했다.

지난 12월29일 김대중 대통령이 송년 특별 담화에서 신광수·손성모 씨 등 ‘최후의 비전향 장기수’ 2인에 대한 석방 조처를 발표하면서 “이로써 이 나라는 처음으로 장기수가 없는 나라가 되었다”라고 선언한 것이 그 예이다. 김대통령의 송년 특별 담화가 있기 며칠 전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기자와 만났을 때, 비전향 장기수 문제와 관련해 의미 심장한 발언을 했다. “장기수 북송 문제는 전격적으로 하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일부 세력의 저항과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다. 연말께 일단 이슈화한 뒤 추이를 지켜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당국자의 발언은 사실 지난해 11월∼12월 초 정부 핵심부에서 진행되었던 ‘비전향 장기수 북송 계획’을 둘러싼 논의의 시말과 고뇌를 함축한 것이다. 정부 주변의 복수 소식통에 따르면, 정부 핵심부는 이 시기에 비전향 장기수 문제에 대해 `특단의 조처를 검토했다. 그 조처의 핵심 내용은 ‘1999년 연말을 기해 감옥에 남아 있는 비전향 장기수를 무조건 석방함과 동시에, 희망자 전원에 한해 북송을 선언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정부측은 약 40여명의 비전향 장기수가 북한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 전원에게 북송을 허용할 경우 이는 20세기를 마감하는 시점에 분단 반 세기의 상흔을 치유하는 대대적인 이벤트가 되었을 법한 일이다.

정부 핵심층은 연말 밀레니엄 특사 때 비전향 장기수를 석방함과 동시에 북송 계획을 발표하려고 검토에 착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구상은 검토 단계에서 현실적인 벽에 부딪혔다. 가장 큰 장벽이 올해 4월로 예정된 국회의원 선거이다.

정부의 핵심 고위층이 관련 전문가들에게 자문했을 때 그들은 4월 총선을 의식해 만류했다. 당시 관련 전문가들은 ‘정부의 구상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그러나 총선을 앞둔 시기에 이를 실행에 옮길 경우 일부 보수 세력이 총선에서 악용할 위험이 있다. 그 탓에 총선 결과가 나쁘게 나오고, 대북 포용 정책이 위축되면 남북 관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을 펼쳤다고 한다. 정부 고위 당국자 “송환 방침 확고하다”

정부의 핵심층이 원래의 구상을 수정하게 된 데에는 이같은 전문가들의 의견 외에도, 비공개로 실시한 여론조사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장기수 송환에 대한 여론조사는 이미 지난해 초 몇몇 언론사와 유관 단체가 실시한 적이 있다. 지난해 2월24일 <한겨레>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65.5%가 비전향 장기수 석방 조처에 찬성해 비교적 높은 지지율을 보였으나, 무조건 송환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27.3%만이 찬성했다. 반면 절반이 조금 넘는 50.2%는 상호주의에 입각해 ‘북한에 억류된’ 국군 포로 송환과 연계해야 한다고 답했다. 지난해 4월6일 민화협이 한길리서치연구소에 의뢰해 이루어진 여론조사 결과도 이와 비슷한 분포를 보이고 있다.

정부의 비공개 조사 결과 역시 <한겨레>나 민화협 조사와 비슷하게 나왔다. 즉 절반에 가까운 국민이 일방적 북송보다 상호주의에 입각해 이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셈이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 절반이 넘는 국민이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조건 북송을 선언하기에는 부담스러웠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국민 여론을 좇아 국군 포로나 납북자와 맞바꾸는 조건으로 장기수 북송을 선언하는 것은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다. 실현 가능성도 희박할 뿐더러, 분단 반 세기를 정리하고 남북 관계에 돌파구를 열겠다는 애초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군 포로나 납북자 문제가 안고 있는 현실적 어려움을 감안해 1999년 초 이 문제를 ‘넓은 의미의 이산 가족’ 문제에 포함해 해결하는 방안을 강구한 바 있다. 즉 국군 포로나 납북자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고 이들을 ‘특수 지위의 이산 가족’ 으로 구분해 이산 가족 전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포함해 다룬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고충이 일반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음을 확인하고 일단 ‘밀레니엄 북송 계획’을 수정한 것이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정부 핵심부에서 장기수 북송 문제가 깊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가을부터였다고 한다. 당시 통일부·국방부·법무부 등에서 비전향 장기수를 석방한 뒤 이들을 국군 포로와 맞교환하는 남북 협상 구상이 구체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같은 구상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지난해 2월22일 박상천 법무부장관의 돌출 발언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당시 박장관은 김대통령 취임 한 돌인 2월25일을 기해 비전향 장기수 17명을 사면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이들에 대한 특단의 조처도 강구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그가 말한 특단의 조처는 바로 북송이었다. 그러나 박장관의 발언에 보수 언론들이 특유의 냉전 논리로 공세를 펼치자, 2월25일 김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남북 간에 공정한 대화가 있기를 바란다’며 한 발짝 물러섰다.

정부 핵심층이 지난해 연말을 목표로 또다시 장기수 북송을 검토한 데에는 무엇보다도 세기말이라는 시기적 특성이 작용했다. 한 세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분단의 굴레를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새로운 세기를 맞자는 메시지를 제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이들에 대한 북송 계획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와 관련해 “시기가 문제일 뿐, 희망자에 한해 돌려보낸다는 방침은 여전히 확고하다”라고 밝혔다. 다만 시기 문제에서 일단 총선 전에는 안된다는 것 또한 정부 내부의 공통된 입장이다. 따라서 총선이 끝난 뒤, 다시 말해 5∼8월에 남북 간에 의미 부여가 가능한 시점이 택일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 주변의 한 소식통은 “아무래도 8·15가 무난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연말께까지 늦춰질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북측에 ‘이산가족 생사 확인’ 촉구 가능성

일단 총선 이후 시기가 되면 정치적 부담도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송환 방법 역시 매우 전향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새 정부 들어 이미 두 차례 실험을 거친 상호주의적 접근법이 번번이 실패로 귀결되었던 점을 참고해, 장기수 송환만큼은 이같은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최근 정부 고위층의 판단인 것으로 알려졌다. 즉 우리가 인도적 차원에서 일방적 송환을 선언하고, 북측에 대해서는 이산 가족 생사 확인 등 이에 상응하는 조처를 촉구하는 선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4월 총선 이후 8월까지의 시기야말로 남북 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우선 정부측에서 보자면 총선까지는 선택의 폭에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일단 이 고비를 넘어서면 더 과감한 조처가 가능하리라는 기대감이 있다. 북한 역시 지난해 이후 자신감을 회복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당국간 접촉을 굳이 피하려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국제적으로는 미국과 일본의 대북 접근이 가속화하고 있어, 남북 관계 역시 민간급 교류 수준에서 정치 대화 수준으로 한 단계 올라서지 않으면 안된다.

문제는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이냐는 것인데, 과거 동서독 사례에서 보듯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쪽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이치에 합당할 것이다. 바로 이 시기에 ‘비전향 장기수 북송’은 남북의 교착 상태를 일거에 타파할 ‘빅카드’로 화려하게 부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부 당국자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와 관련해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살 날이 얼마 안남은 고령의 장기수들을 계속 떠안고 있으면 우리에게는 부담밖에 남을 게 없다. 그러나 발상을 전환해 그들을 보낸다고 생각하면 이처럼 좋은 카드가 없다. 남과 북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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