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6대 총선 돌발 변수 분석/1여3야, 물고 물리는 폭로전 펼칠 듯

1여 1야 구도로 치러질 듯하던 선거 판도가 한나라당의 분열로 하루아침에 1여 3야 체제로 급변했다. 선거 때마다 예기치 않은 돌발 변수가 터지기 마련이지만, 16대 총선에서는 변수가 돌출한 시기도 빨라졌고, 규모도 메가톤급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그동안 상대방에게 겨냥해온 포신의 방향각을 다시 잡느라 분주해졌다.

21세기를 맞아 처음 치르는 이번 총선에서 각당은 미래 지향적이고 긍정적인 선거 전략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여야 수뇌부의 희망과 달리 막상 선거전에 돌입하면 한 건의 ‘돌발 변수’가 민심의 향배를 판가름하는 일이 흔하다. 특히 선거전이 막판으로 치달을수록 각당은 ‘한 건’에 대한 유혹을 더 강하게 느낀다. 역대 선거 경험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1996년 4·11 총선 때는 선거전 초반에 터진 장학로 청와대 부속실장의 부정 비리로 여론이 급속히 집권 신한국당을 이반했다.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다시피 한 집권당은 북풍을 불렀다. 총선을 1주일여 남긴 4월 초 판문점에서 북한 병력이 무력 시위를 벌임으로써 여론은 또 한번 급반전했다. 경기 북부를 비롯한 수도권 민심에 안보 불안 심리가 급속히 번지면서 집권당 쪽으로 표 쏠림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당시 야당은 판문점 무력 시위 사건을 가장 큰 패인 가운데 하나로 여기고 탄식했다.

과거에 대규모 선거를 앞두고 터진 돌발 변수는 주로 여당의 ‘작품’이 많았다. 여당이 만들었다는 뚜렷한 증거가 잡히지 않은 굵직한 사건들도 결과적으로 여당 승리에 도움을 주었다는 측면에서 작위적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 사실이다. 1987년 대선 기간에 터진 김현희의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이라든지, 1992년 대선을 앞두고 터진 대규모 간첩단 사건(조선노동당 사건)이 그런 예에 속한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여야 정권 교체 후 처음 치르는 전국 단위 선거라는 점에서 돌발 변수의 양상이나 성격도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여야는 서로를 의심하며 예상 돌발 변수를 점검하고 대응하는 전략을 마련하는 데 부심해 왔다. 민주당은 과거 집권 시기에 그런 전략을 세우는 데 익숙한 ‘선수’들이 야권에 많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고, 야권은 민주당이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여론에 영향을 미칠 큰 사건을 만들어낼 것이라며 의심하고 있다.

정치 발전과 깨끗한 선거를 주문하고 있는 시민단체들은 벌써부터 이번 선거가 무차별 폭로전으로 치닫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런 우려 섞인 전망을 정치권에서도 굳이 부인하지는 않는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명분 없이 박차고 나간 신당 추진 세력 내부에서 벌써부터 우리 당의 공천 헌금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6·3 지방 선거 자금까지 거론하는 것을 보면 선거판이 일찌감치 타락의 극치로 흐르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신당 추진 세력들이 정 이렇게 나온다면 우리로서는 공천 개혁 명분을 내세우는 긍정적 전략 외에 앞으로 급조될 신당 창당 자금의 배후를 물고늘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반DJ 전선을 분열시킨 장본인들의 창당 자금이 어디서 나오겠느냐고 몰아붙이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신당이 내세우는 공격 무기들에 대해서는 집권당이 정보를 흘려 대리전을 벌이는 것으로 몰아붙이는 선거 전략을 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뇌관은 역시 돈 문제”

민주당에서는 야권이 핵분열을 일으키는 현재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도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민주당 선거대책본부 고위 관계자는 “야권 분열 과정에서 저절로 터져나온 부패 공천, 선거 자금, 창당 자금 등 돈을 둘러싼 문제가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이슈로 부각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흐름은 깨끗한 정치를 위해 반드시 한번은 치러야 할 홍역이며, 민주당은 그런 진흙탕 판에서 한 발짝 비켜서는 여유가 있다. 그러나 분열된 야권이 제1 야당 자리를 놓고 이전투구하는 과정에서 민주당과 대통령을 상대로 검증되지 않은 무차별 폭로전을 벌일 가능성도 높아 경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사실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공천 후유증이 이처럼 큰 돌발 변수가 될 것을 예상하지 못한 여야는 그동안 상대방이 구사할 가능성이 높은 네거티브 전략을 분석하며 나름으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었다. 우선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DJ를 직접 겨냥해 검증되지 않은 유언비어를 무차별 살포할 것으로 보고 부심해 왔다. 더구나 한나라당이 ‘대통령 일가 관련 부정비리 의혹 진상조사 특위’(위원장 최병렬 의원)까지 구성하고 나서자 발칵 뒤집혔다. 김대통령이 집권 후 김현철씨의 권력 남용 후유증을 반면교사 삼아 친인척 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써왔는데 야당이 근거 없이 대통령 가족까지 상투적 폭로전 대상으로 삼는 것을 묵과할 수 없다는 분위기이다. 정형근·이신범 의원을 축으로 한 한나라당내 무차별 폭로 세력을 좌시할 수 없다는 여권 내부의 흐름도 없지 않았다. 정치권 일각에서 지난 2월 초 정형근 의원에 대해 검찰이 전격 체포 작전에 나섰던 것도 그런 선거 전략에 대한 선제 공격용이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에 반해 한나라당이 가장 부담스러워했던 돌출 변수는 선거를 앞두고 진행되는 병역 비리 수사였다. 야당은 김대통령이 지난 1월20일 민주당 창당대회에 이어 1월26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병역 비리는 결코 용납하지 못한다. 수사기관은 주저함이 없이 병역 비리를 척결해야 한다”라고 강조한 것을 총선 시기에 야당에 칼을 들이대겠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선거 직전 여권이 읍참마속 작전으로 나올까 봐 걱정하고 있다. 그럴 경우 우리는 병역의 화살을 다시 DJ에게 조준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지난 대선 때 이회창 후보측이 제기한 DJ 본인의 병역 기피 의혹은 미국에 거주하는 목포 해상방위대 출신 병사가 함께 근무한 사실을 증언함으로써 약효가 없어졌던 사안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측은 그 증언자를 다시 찾아가 DJ측의 유도 심문에 넘어갔다는 요지의 증언을 녹취해 왔다면서 총선 전에 병역 비리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 그 녹취록을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그런 테이프가 존재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병역 비리의 위력에는 못 미치리라 보면서도 한나라당이 내심 촉각을 곤두세우는 부분은 세풍 사건이다. 지난해 9월 정치적으로 일단락된 세풍 사건은 미국에 도피한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이 귀국해 입을 열 경우 다시금 소용돌이를 일으킬 것으로 보고 있다. 한·미 간에 범죄인인도협약이 발효된 후 검찰이 이석희씨의 신병을 조속히 인도해 달라고 미국에 요청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여권이 사건을 총선 전 야당(이회창 총재 직계) 죽이기에 써먹으려 한다고 판단하고 바짝 긴장했다. 그러나 이석희씨 본인이 미국법에 따라 이의 신청을 내는 등 시간을 끌 수 있어서 총선 전까지는 못 들어올 것으로 전망되자 가슴을 쓸어내리는 분위기이다.

야권이 예측하는 또 하나의 돌발 변수는 ‘신북풍’이다. 역대 정권이 선거 때마다 유권자들의 안보 심리를 자극하는 전략으로 재미를 보았던 북풍을 현정권이 역이용할 것이라고 분석하는 것이다. 올 들어 김대통령이 ‘총선 후 남북 정상회담’ 용의를 밝힌 이후 한나라당은 선거일 이전에 이와 관련된 깜짝쇼를 준비하지 않느냐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처럼 그동안 여야가 서로를 경계하며 다양하게 준비해온 돌발 변수 개발 및 방어 전략은 야당 분열이라는 초특급 돌발 변수와 부딪치면서 다시금 복잡하게 분화해 재정비될 전망이다. 그런 가운데 각 정당의 선거 전략을 짜내는 관계자들이 공통으로 예측하는 점이 있다. “1여 3야 체제가 되어 선거전이 치열해지면서 1여 1야 체제를 상정해 준비해온 다양한 잔챙이 전술보다는 굵직한 이슈가 터질 것이다. 그 중 가장 큰 이슈가 각 정당의 돈 문제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