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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사회 “이라크 전후 처리 유엔에 맡기자”

저항 세력과 현지 주둔 미군 간의 대치 상황이 전면전 양상을 띠면서 이라크 상황이 크게 악화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최근 행한 라디오 주례 연설을 통해 오는 6월30일 이라크에 주권을 넘기기로 한 당초 계획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라크 현지에 군대를 보냈거나 앞으로 파병하기로 약속한 나라들로서는 여간 큰 부담이 아니다. 더욱이 최근 들어 이라크 저항 세력들이 파병 당사국이나 파병 예정국 민간인들을 줄줄이 납치해 ‘경고장’을 보냄으로써 파병 당사국들의 불안감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이라크 남부의 사마와에 자위대를 파병한 일본의 경우, 4월12일 현재 자국 국민 3명이 이라크 무장 세력에 사흘째 인질로 붙잡혀 있다. 무장 세력은 이들의 무사 석방 조건으로 일본 정부에 ‘24시간 내 철군’을 요구했다. 아울러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인질들을 차례로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최근 들어서는 미 군정의 최대 우호 세력이던 시아파 일부가 미국에게 오히려 ‘저항의 총부리’를 겨누기 시작했으며, 미 군정에 협력했던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 소속 인사들마저 최근 잇달아 사퇴 의사를 밝히며 등을 돌리고 있다. 미국은 전후 미군이 이라크에 주둔하는 명분을 ‘이라크 민주화와 재건’으로 삼았고, 이라크인들도 자기네를 ‘해방자’로 환영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지만, 이 또한 사실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결국 파병 명분 자체가 약해지면서 파병 관련국들이 동요하는 사태를 불러오고 있다.

파병 강행해도 ‘이라크 안정화’ 기약 못해

이같은 사태 전개는 추가 파병을 앞둔 한국의 여론도 악화시키고 있다. 파병철회론자들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 보호’를 앞세운다. 파병강행론은 파병 결정이 국가 간의 약속임을 내세운다. 파병 관련국의 동요에 다급해진 미국은 딕 체니 부통령을 관련 국가들에 보내 설득하고 있다.

현재 이라크에는 미군 13만명 외에, 영국(8천7백명) 이탈리아(2천9백50명) 폴란드(2천5백명) 우크라이나(1천6백50명) 스페인(1천3백명) 등 36개국 병력 2만4천 명이 미국의 ‘이라크 안정화’를 돕고 있다. 이 중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3월7일 이라크 시아파로부터 공격받은 직후 전원 철수했다. 스페인군 역시 지난 3월 초순 마드리드가 폭탄 테러 참사로 얼룩진 뒤, 새로 들어선 사회당 정부에 의해 전격적으로 ‘철군’이 결정되었다.

한국군의 파병 약속은 한 나라라도 지원이 아쉬운 미국에게 더없이 중대한 관심 사항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관련 국가에 큰 물의를 일으키면서까지 지원받는 병력이 과연 미국이 바라는 이라크의 상황 호전에 얼마나 보탬이 될 것인가 하는 데 있다.

국제 사회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자존심을 꺾고 이라크 전후 처리 문제를 당장 유엔에 넘기라고 제안했다. 4월12일자 파이낸셜 타임스도 사설을 통해 ‘이라크 문제를 유엔에 넘긴다고 부시가 후세인에게 거둔 승리까지 미국 민주당에 넘겨주는 것도 아니요, 이라크 국민들도 유엔이 전후 처리를 맡으면 이를 미국 군정의 연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며, 부시 대통령을 설득했다.

부시 대통령이 이같은 조언에 따라 이라크 문제를 유엔에 넘기면 ‘여러 나라’가 편해질 수 있다. 우선 부시 정부 스스로가 베트남 악몽을 우려하며 철군을 요구하는 반대파의 공세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국을 비롯한 파병 관련국들은 미국과의 약속을 깨지 않고서도 유엔이라는 새로운 깃발 아래 자국 군대를 떳떳하게 이라크에 보낼 수 있다.

현직 대통령이 ‘궐위 상태’에 있고, 국가 대사를 논의할 국회마저 선거로 기능이 마비된 상황에서 한국이 먼저 취해야 할 것은, 약속을 먼저 깨자고 하기 전에 ‘동맹국’ 미국을 위해 충심으로 조언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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