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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 한탕주의'에 들뜬 사람들 갈수록 늘어 ··· 부에 대한 사회적 합의 '흔들'

젊은 종업원이 뒤돌아서며 고개를 갸웃한다. “우리 사장님 돈벼락 맞았나?” 손님이 낸 수표를 거슬러 달라고 했는데,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사장님은 쳐다보지도 않고 한마디 던지는 것이었다. “그냥 가시라고 해.” 종업원의 얼굴을 보면, 전에 없던, 매우 특별한 경우로 보인다. 주유소 사장님은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연신 웃고 있다. 모니터는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꺾은선 그래프를 보여준다.

요즘 텔레비전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한 증권사의 CF다. 이 광고 앞에서 ‘편안한 시청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많게는 천만 명, 적게는 7백만 명에 이르는 주식 투자자들은 이 광고를 접할 때마다 남다른 동일시를 경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래, 저 기분 내가 알지’라며 느긋해 하는 투자자보다는 ‘언젠가 쨍하고 해뜰 날이 올 거야’라며 초조하게 전의를 불태우는 ‘개미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새로운 기상청, 증권시장

이 광고에는 최근 우리 사회 전반을 휩쓸고 있는 주식 열풍의 명암을 들여다볼 수 있는 키워드가 내장되어 있다. 이른바 돈벼락. 벤처 기업·코스닥·스톡옵션·우리 사주·창투사·황제주·엔젤·인터넷·닷컴·넷·e-·바이오 등 2∼3년 전만 해도 들어보기조차 힘들었던 개념과 기호들이 황금의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이다. 연령과 직업, 성별과 지역을 뛰어넘어 주식 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은 저 바벨탑에 오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골드 러시다. 한국 사회는 저마다 일확천금을 거머쥐는 주인공이 되기 위해 들떠 있다. 상대적 박탈감에 떠밀려, 혹은 상대적 박탈감을 에너지 삼아 주식 시장에 뛰어든 ‘개미’들은 수십 배 이상 폭등하는 황제주의 주인이 되기 위해 ‘붕붕’ 떠 있다. 젊은이들은 벤처 기업에 들어가 스톡옵션을 받고 싶어하고, 자본가들은 벤처 기업에 돈을 대지 못해 안달이다. 정보통신·인터넷 분야와 관련된 대기업체 사원, 정부 관료, 대학 교수, 언론사 기자 들이 보란 듯이 사표를 던진다.
이제 일기 예보는 기상청에서 나오지 않는다. 증권거래소와 코스닥 시장이 새로운 기상청이 되었다. 주가 지수와 증권 시장 예측이 한반도의 ‘날씨’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하여 저 돈벼락을 맞은 주유소 사장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강력한 상징이다.

적게 잡는다 해도 주식 인구는 7백만 명. 어린이와 노약자를 빼면 성인 두세 사람 중에 하나가 증권 전문가이다. 그리하여 주식 열풍을 핵심으로 하는 붕붕 증후군의 스펙트럼은 다양하게 펼쳐진다. 벤처 열풍과 그에 따른 스카우트 붐은 물론이고 한국 사회가 간신히 유지해온 재산 형성 방식과 부에 대한 가치를 뒤바꾸고 있다. 한국산업사회학회가 펴낸 <사회학>의 머리말이 지적하고 있듯이 개인의 경제적 성공이 시대의 규범이 되고 있다.

김진석 교수(인하대·철학)는 “일찍이 돈에 대한 논의가 이렇게 전면에 등장한 적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돈이 전부인 사회, 직업적 명예나 자기 분야에서의 권위보다 ‘몸값’이 우선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삶의 방식도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지칠 줄 모르고 욕망하는 도박형 인간으로, 재산 형성 과정 자체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는 수전노 같은 삶으로.

붕붕 증후군의 진원지는 두말할 것도 없이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정보통신과 인터넷 분야다. 골드 러시는 지난해 초, 야후 코리아라는 벤처 기업이 주목되면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모두 억대 부자가 된 것이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 사원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야후’의 주가 폭등이 원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직원들이 스톡옵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야후 코리아 뉴스는 낯설고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이 뉴스가 잊힐 무렵 코스닥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지난해 5월부터는 골드뱅크로 대표되는 일부 정보통신·인터넷 관련 주들이 증시 사상 유례가 없는 폭등세를 보였다. 물론 이 주식을 갖고 있다가 돈벼락을 맞은 개인 투자자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지분을 갖고 있는 사주나 종업원, 기관투자자가 그야말로 ‘떼돈’을 벌었다.

여름 동안 주춤하던 벤처·코스닥 열풍은 하반기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10월 하순 이후, 주가는 연초보다 훨씬 더 큰 폭으로 뛰어올랐다. 일시적인 거품이 아니냐며 머뭇거리던 개인 투자자들이 코스닥으로 몰리기 시작했고, 코스닥 거래량이 늘어나면서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들이 가세했다. 새해로 접어들면서 코스닥 시장은 더 이상 ‘개미 군단의 광란의 도가니’가 아니었다.

벤처 기업 출현, 코스닥 시장의 열기, 그에 따른 주식 열풍은 전방위에서 패러다임의 변화를 실감케 했다. 미래 예측서에 들어 있던 ‘지식이 지배하는 사회’가 갑자기 도래한 것이다. 레스터 C.서로가 갈파했듯이 지식이 성공의 자원이 된 것이다. 세계 최고 부자인 빌 게이츠는 유형 자산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토지나 금, 석유, 공장이나 산업 공정도 없다. 서로는 <지식의 지배>에서 ‘세계 최고의 부자가 소유한 것이 지식뿐인 경우는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라고 썼다.

정보화 사회가 급진전하면서 국내에서도 젊은 빌 게이츠가 속속 탄생했다. 정보통신과 인터넷 분야에서 20∼30대 벤처 거부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신속하게 정보통신과 인터넷 분야로 눈을 돌렸고,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하는 젊은이들도 벤처 기업에 몰리기 시작했다. 정보통신·인터넷과 관련된 대기업체, 정부 부처, 언론사 인력들도 벤처 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확천금, 꿈만은 아니다’라는 신화

주식 시장이 증권거래소에서 코스닥으로 중심을 옮겨가면서 투자 기준도 흔들리고 있다. ‘굴뚝 산업’(제조업)이 갖고 있는 자산 가치나 기업 가치는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현대증권 투자클리닉 김지민 원장은 “세계적인 건설회사인 현대건설 주식이 5천원 이하라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증권거래소의 정보통신 분야나 코스닥 주식, 즉 지식 산업 분야도 마찬가지다. 주식을 발행한 벤처 기업은 적자를 보고 있는데도 그 주가는 천정부지로 뛴다. 기업의 미래 가치에 투자한다고 하지만,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 행태를 살펴보면 미래 가치를 평가하는 과학적인 근거는 없어 보인다.

기업 안팎에서 불고 있는 혁명적인 변화의 수혜자들은 아직 극소수이다. 현재 일확천금이 가능한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다. 벤처 기업을 설립하거나, 벤처 기업에 투자하는 방법, 스톡옵션이나 우리 사주를 받는 방법 이외에는 수십, 수백 배에 이르는 시세 차익을 기대하기 힘들다. 전문가들은 개인 투자자들이 성공할 확률은 5% 이하라고 말한다. 개미들 가운데 95%는 주식 투자에서 실패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개미 군단은 여전히 ‘붕붕’거리며 아침마다 객장에 나가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서 클릭을 거듭한다. 증권업계에서는 거품의 본질이 개미 투자자들의 과욕이라고 잘라 말한다. 채 5%도 안되는 확률, 설령 5% 안에 들어 돈을 거머쥐었다고 해도 거개가 모래알처럼 사라지고 마는데, 개미들이 그토록 주식에 몰두하는 까닭은 대체 무엇일까.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교수(영남대·영문학)는 언론이 주범이라고 말한다. 증권 열풍을 ‘소수 가진 자와 대다수 못가진 자와의 전지구적 전쟁’이라고 파악하는 김교수는 결국 모두 피해자가 되고 말 것이라는 비관론을 내놓고 있다.

IMF 직후 지식인 사회 일각에서는 차라리 잘 되었다며 이 기회에 반인간적인 ‘욕망과 속도의 논리’를 반성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IMF 직후, 언론도 한국 사회의 자기 반성을 촉구하면서, 대량 실업 사태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갖다 댔다. 도시를 떠나 귀농하는 사람들도 화제였다. 그러다가 절망보다 희망을 주자는 캠페인이 불붙자 ‘성공 신화’가 부풀려지기 시작했다. 막 등장하기 시작한 벤처 영웅들을 주목했고, 억대 연봉자들을 내세웠다. ‘작은 풍요론’을 주창하고 있는 강수돌 교수(고려대·경영학)는 “벤처 신화에 대한 일방적 강조는 그 이면에서 스러져 가는 수많은 벤처 인력과 자본의 좌절을 가려버리는 형국이다”라고 말했다.

언론의 성공 신화 부풀리기는, 의도된 것은 아니겠지만, IMF 시대를 통과하면서 역설적으로 돈의 중요성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절감한 보통 사람들을 증권 시장으로 몰아가는 결과를 낳았다. 은행 금리가 낮고, 부동산 경기가 침체했다는 직접적인 이유도 있지만, 하루아침에, 그것도 20∼30대 젊은이들이 억대 부자가 되는 현실 앞에서 보통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파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대체 내가 살아온 삶은 무엇인가’라는 열패감을 어쩌지 못하는 부류와, ‘나도 성공 신화의 영웅이 될 수 있다’며 코스닥으로 달려드는 부류. 전자는 주로 전통적인 기득권층에 많았다. IMF 이전만 해도 남부럽지 않았던 대기업체 사원·관료·자영업자·대학 교수·언론사 기자들이었다.
‘성공 신화’만 강조한 언론도 주범

대학에서 국문학을 가르치는 40대 초반 교수는 “벤처 기업에 취직해 스톡옵션으로 돈을 벌었다며 고급 승용차를 타고 인사하러 오는 제자들이 제법 많다. 그때마다 심한 열패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신문사 경제부에서 정보통신 분야를 취재하다가 억대 스톡옵션을 받고 벤처 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는 후배를 바라보는 중견 기자들도 요즘 세태가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경력 10년이 넘는 한 일간지 기자는 “이 직업에, 우리 신문사에 과연 비전이 있는 것이냐고 자문할 때가 많다”라고 말했다.

이유야 어쨌든 나도 한몫 잡아야겠다며 주식 시장에 뛰어든 개인 투자자들 중에는 이른바 주식 중독증에 걸린 경우가 많다. 주식에 과도한 관심을 갖다 보면 일상 생활이 증권 시장이 열리는 시간을 중심으로 짜인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원장(마음과 마음)에 따르면, 밤새도록 인터넷을 통해 미국 나스닥 시장 동향까지 살피는 주식중독자마저 있는데, 이 지경에 이르면 정상적인 일상 생활은 마비된다.

전문의뿐 아니라, 증권 전문가 그리고 투자자들까지 공통적으로 주식 투자가 도박과 흡사하다고 지적한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신승철 원장(남서울병원)이 보기에, 주식 열풍의 원인은 우선적으로 사회에 있다. 일등만이 살아 남은 경쟁 사회, 장래가 보장되지 않으며, 가족을 비롯한 공동체 관계가 약화하는 등 개인에게 상처만을 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도박으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거의 없는 사회 분위기가 주식 중독증의 주요 원인이라고 신원장은 말했다.

주식 시장은 ‘돈 놓고 돈 먹는’ 카지노 자본주의로 표현된다. 현대증권 투자클리닉 김지민 원장은 “7백만 명이 돈을 벌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고스톱판이라고 보면 된다”라고 말한다. 예측 불가능한 집단 심리에 의해 주식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거나 곤두박질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원장은 ‘코피가 터질지언정 코뼈가 부러져서는 안된다’는 미국 증시 속담을 인용하면서, 주식 시장에서는 이익이 아니라 생존을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연말 증권 시장 ‘막차’를 탔다는 한 회사원(41)은 “사이버 투자를 하다 보면 도박을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때가 많다”라고 토로한다. 정혜신 원장에 의하면, 자아(self)에 심각한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아도취적 전능감(全能感)을 추구하는데, 그 대표적 수단이 도박이다. 외부로부터 받은 가벼운 상처는 생산적인 자극제가 될 수 있지만, 심해지면 우울증과 무기력증 단계에 이른다. 더 악화할 경우 외부에 대해 공격성을 띠게 된다고 정원장은 설명한다.
“주식 열풍의 ‘후폭풍’을 내다보자”

넓게 길게 보면, 주식중독증에 걸린 ‘꾼’이나, 성공 확률이 5% 이하인 대다수 개미 투자자, 그리고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전통적인 기득권층만이 ‘붕붕 증후군’의 피해자는 아니다. 한 중견 소설가는 “우리 사회가 성실하게 노력해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 같다”라고 말했다. 벤처 기업을 세울 수도 없고, 주식을 살 수도 없는 빈곤층도 피해자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성실성에 대한 신뢰는 ‘티끌 모아 쓰레기’라는 비아냥으로 돌변하고 말았다.

스톡옵션으로 벼락부자가 되었다고 해서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주식이 10배 이상 올라 수십억을 벌었지만, 갑자기 세상이 무의미해졌다며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사례가 없지 않다. 1970∼1980년대 부동산 투기로 갑자기 거액을 손에 쥔 졸부들의 내면이 황폐화했던 것처럼, 횡재의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한쪽에서는 한 재산을 잡지 못해 중독 증세를 보이는가 하면, 또 다른 한쪽에서는 돈벼락을 맞아 휘청거리고 있다. 김종철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 사회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주식 열풍으로 요약되는 붕붕 증후군은 한국 사회를 유지시켜온 생산적인 가치 체계를 뒤흔들고 있다. “우리 현대사가 도박 논리에 바탕을 둔 역사이고, 우리 사회가 부를 형성한 과정이 곧 투기가 아니었는가”라는 자기 비하적인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확천금이 사회적 화두로 등장한 지금을 위기로 보지 않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앞에서 예로 든 광고를 뒤집어 보자. 주유소 사장은 본업을 망각한 채 컴퓨터만 들여다보고 있다. 만일 주가가 폭락한다면 만면에 미소를 짓던 주유소 사장은 어떻게 될 것인가. 강수돌 교수는 “IMF 사태 직후 하루에 만 명이 넘는 노동자가 정리 해고를 당하고, 자살하는 사람이 속출하던 1998년 초를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주식 시장이 붕괴할 경우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정신적 공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벤처 열풍과 코스닥 열기를 혁명의 전조로 파악하는 처지에서 보면, 이같은 우려는 기우일지도 모른다. 한민족에게 정보통신 분야는 새로운 신천지일 수 있다. 청년 벤처 기업가들이 세계화를 주도하는 새로운 기업 문화를 창출할 가능성도 있다(61쪽 상자 기사 참조). 그러나 개인과 사회가 하나같이 ‘붕붕 뜬 채’ 황금 제일주의에 집착하고 있다는 시각에서 보면, 한국 사회의 가까운 미래를 내다보는 ‘일기 예보’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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