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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최대 집산지 나주 오리농가 여름나기 현장
“찜통 더위에 식욕 잃어”…힘겨운 여름나는 가축들
연일 폭염 기승에 가축 ‘헉헉’…축산농가도 ‘진땀’

11일 오후 전남 나주시 세지면 한 육종오리 농장 천장 쿨링포그에서 물 안개가 뿜어 나오는 가운데 오리들이 무더위를 식히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11일 오후 전남 나주시 세지면 한 육종오리 농장 천장 쿨링포그에서 물 안개가 뿜어 나오는 가운데 오리들이 무더위를 식히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11일 오후 4시 30분쯤 전남나주시 세지면 한 육종오리 농장. 사람의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푹푹 찌는 폭염이 맹위를 떨치던 시각이 어느 정도 지났는데도 기온이 35도까지 올라 얼굴이 후끈거렸다. 그 시각 전남도와 나주 재난당국은 폭염경보를 알렸다. 

“얘들 보고 있으면 안쓰러워 죽겠어요.” 농장주 임종근(59) 나주시오리협회 회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연이은 찜통더위에 임 씨는 “전남 최대 가금류 집산지인 나주지역 축산 농가들이 축사 안 온도를 1도라도 더 낮추려고 매일 악전고투하고 있다”고 전했다. 

농장 입구 쪽 1650㎡(약 500평) 크기의 한 축사(계사) 안으로 들어가자 축사 안에는 대형 선풍기가 쉼 없이 돌아가고 안개 분사기(쿨링포그)에서는 20분 간격으로 물이 뿌려지지만 무더위에 헉헉대는 오리들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맥이 빠진 오리들은 움직임을 최소화한 채 서로 몸을 엉키고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멈춰섰던 쿨링포그에서 다시 물안개가 뿜어 나오자 오리들이 몰려들었다. 

11일 오후 나주 세지면 육종오리농장 ⓒ시사저널 정성환
11일 오후 나주 세지면 육종오리농장 ⓒ시사저널 정성환

축사 내부 30도까지…사람도 오리도 ‘죽을 맛’

또 다른 축사 한 동을 둘러보니 일부 오리들이 서로 먼저 급수대 꼭지를 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일부 오리들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 환풍기 바람과 쿨링포그에서 나오는 물안개를 잘 쐴 수 있는 곳으로 쉼터(?)를 마련한다. 시원한 곳에 모여든 오리들은 명당자리에서 일어설 줄 모른 채 잠을 청하기도 한다. 

농장 측의 갖은 노력 때문인지 펄펄 끓은 외부와 비교해 계사 안은 비교적 시원했다. 축사 내부에 있는 온도계는 오전에 비해 8도 가량 떨어진 30도를 가리켰다. 그럼에도 오리들은 더위에 지쳐 찬 바닥에 앉아있거나 연신 물을 마시며 힘겨워했다. 농장 한 직원은 “요새 축사 안 온도가 40도까지 올라가 오리들이 식욕을 잃기 일쑤다”며 “안개 분무기를 풀가동해서 겨우 30도 안팎으로 낮출 수 있지만 이마저 없었으면 큰일 날 뻔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온갖 노력에도 폭염 속 폐사를 차단하긴 역부족이다. 임 씨는 하루 70~80마리 안팎으로 죽은 오리를 마주한다. 그러면서 앞으로가 더 큰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당장은 피해가 없지만 올해 더위가 가장 심한데다 폭염이 다음 주에도 예고돼 집단폐사 등 피해가 날 우려가 커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11일 오후 전남 나주시 세지면 한 오리농가에서 폭염에 지친 오리들이 급수대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11일 오후 전남 나주시 세지면 한 오리농가에서 폭염에 지친 오리들이 급수대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더위 맞을라”…대형선풍기·스프링쿨러 가동

그렇다면 이 농장에서 사육되는 오리들은 어떻게 여름을 날까. 이곳에는 7만여 마리의 오리를 사육하는데, 계사가 10동이나 된다. 요즘 임 씨는 온도에 취약한 오리가 연일 이어지는 폭염을 잘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4년 전 겨울에는 AI조류인플루엔자로 예방적 살처분에 나선 방역 당국에 의해 애지중지 키우던 5만8000마리의 오리를 모두 잃어야 했던 그였다. 

결국 당시 상당한 빚을 지고 다시 오리를 키우기 시작한 임씨로선 여름나기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임씨의 농장은 폭염에 철저히 대비하고 나섰다. 뜨거운 외부 온도를 차단하고 시원한 바람이 안으로 들어가도록 축사 입구엔 스프링쿨러를 쉴 새 없이 돌렸다.

오리 사육에 가장 적절한 온도는 25~28도 정도다. 그러나 오전 10~11시쯤에는 38~40도까지 상승해 적정 온도와 10도 가까이 차이가 났다. 축사를 관리하고 있는 직원들은 “그늘에 설치된 전자온도계가 38.8도를 가리키고 있지만 열차단 비닐이 설치되지 않아 태양이 내리쬐는 양지는 40도를 넘을 것”이라고 폭염의 맹위를 설명했다.

비닐 하우스 축사에서 폭염 피해를 줄이기 위해 대형 선풍기는 기본이다. 요즘에는 열대야 때문에 대형 선풍기 40여 대를 24시간 풀가동한다. 물안개를 내뿜는  ‘쿨링포그’도 함께 튼다. 안개 분사기는 한낮의 경우 20분마다 2분간 작동한다. 이 안개 분무시스템은 지난해 나주시가 ICT 기반 오리사육 시범사업으로 1800만원을 들여 1동(자부담 20%)에 시설해줬으며 나머지 9동은 전액 자부담으로 설치했다.  

또 오리들의 갈증 해소를 위해 급수대 라인을 4개씩 설치했다. 급수대에는 18㎝ 간격으로 급수기(꼭지)가 설치돼 있다. 축사 밖에서도 일정한 시간마다 스프링쿨러가 돌아간다. 스프링클러에서 쏟아져 나온 시원한 물줄기가 한낮 50도까지 달아오르는 콘크리트 바닥의 복사열을 식혀준다. 

무엇보다 온도를 떨어뜨리는 이 농장의 비장의 무기는 축사의 반쯤 덮고 있는 열차단재라고 임 씨는 귀뜸한다. 축사에 열차단 비닐을 덮은 부분과 그렇지 않은 쪽 간에 5~6도 가량 온도 차이가 난다고 한다. 축사 전체에 열차단 비닐을 씌운 나주 반남면의 한 농장의 경우 폭염에도 폐사가 하루 1~2마리에 그칠 정도로 열 차단 효과가 뛰어나다고 전했다. 

그나마 이 같은 노력 탓에 축사 내부 온도를 4도 정도 내릴 수 있다. 스프링쿨러 물로 외부 바닥을 시원하게 해 주고, 대형 선풍기와 안개 분사기로 축사 내부를 시원하게 해 주면 오전에 38도까지 올랐던 온도가 오후 2~3시엔 4~5도 가량 낮아져 오리들에겐 큰 걱정거리가 없게 된다는 것이 임 씨의 설명이다. 

축산 농가의 노력은 온도 낮추기에 그치지 않는다. 임씨는 오리들이 마시는 물에 옅은 농도로 소금을 섞었다. 부족한 염분과 미네랄 등을 보충하고 오리들이 물을 더 자주 마시게 해 폐사율을 낮추는 그의 노하우다.

고온에 따른 오리의 식욕 보전과 스트레스 완화를 위해 사료에 비타민과 면역증강제, 해열제도 섞어 먹인다. 1파스(42일)에 박스 당 5리터짜리 4개가 들어 있는 15박스의 비타민제를 공급한다. 해열제는 1주일에 한번씩 투여하며, 소금은 2~3일에 한 차례씩 물 1톤당 한 바가지를 섞어 준다. 

임 씨는 “나도 축사를 한 바뀌 돌고나면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프다”며 “오리도 사람과 똑 같다. 더위에 오리들도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는 만큼 사료에 스트레스 완화제도 꼭 챙겨 먹인다”고 했다.

11일 오후 나주 세지면 한우 축사에서 소들이 대형 선풍기 바람을 쐬며 무더위를 식히고 있다. ⓒ시사저널
11일 오후 나주 세지면 한우 축사에서 소들이 대형 선풍기 바람을 쐬며 무더위를 식히고 있다. ⓒ시사저널

대형 축산농가 ‘폭염과 전쟁’…영세 농가는 ‘언감생심’

이처럼 철저하게 여름나기를 준비한 임 씨지만 폭염이 계속 이어질 경우 폐사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오리들은 한번 열사병이 걸리면 치료나 회복이 불가능해 그대로 죽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며 “앞으로 폭염이 계속되거나 더 심해지면 폐사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나마 임씨의 농장은 나은 편이었다. 일부 대형 축사에서는 안개분무를 내뿜는 스프링클러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영세농가 입장에서는 언감생심 같은 얘기다. 더위에 약한 가축을 위해 차광망 설치를 권고하고 있지만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축사 주인인 김아무개(67)씨는 “더위에 지친 소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물을 자주 공급해 주는 것밖에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임 씨 농장에서 500여m 떨어진 한우 축사도 사정은 엇비슷했다. 축사로 들어가자 천장에 달린 대형 선풍기 수십개가 숨가쁘게 바람을 내뿜고 있지만 가만히 서있어도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덥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부 소들은 선풍기 바람이 잘 쏘이는 곳에 자리잡고 앉아 있었다.  

농장주 김아무개(63)씨는 “찜통 더위에 특별한 대책은 없지만 선풍기 위주로 바람을 세게 부쳐주고 있다”며 “물 섭취가 늘어 우사가 질어져서 바닥 청소를 평소보다 자주하지만 왕겨나 톱밥을 구하기 힘들어 어려운 점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축산 농가들은 재난 수준의 폭염이 이어지는 만큼, 정부 차원의 대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영암에서 1만5000여 마리의 닭을 키우는 한 농장주는 “한여름에도 선풍기 정도로 연명하는 것은 더 좋은 냉방시설을 들이기에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라며 “폐사나 폐사 위기를 맞는 피해농가에 대한 장기적인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11일 오후 나주 세지면 한 농장에서 오리들이 무더위를 식히고 있다. ⓒ시사저널
11일 오후 나주 세지면 한 농장에서 오리들이 무더위를 식히고 있다. ⓒ시사저널

가축 폐사 잇따라…지자체 비상

연일 35도를 오르내리는 올여름 폭염으로 전남에선 가축들의 폐사가 잇따랐다. 10일 기준 도내 101개 농가에서 11만7299마리가 폐사하며 14억 7000만 원의 추정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피해 가축은 닭 10만4861마리, 오리 9037마리, 돼지 3401마리 등으로 조사됐다. 나주시 관내에선 7일 기준 17개 농가에서 3만7084 마리가 폐사했다.

관할 지자체도 비상이 걸렸다. 나주시는 가축 피해를 줄이기 위해 최근 ‘가축 폭염 재해대책반’ 운영에 돌입했다. 시는 지난 5월20일부터 6월 5일까지 1억5800만 원을 투입해 1662농가에 고온 스트레스 완화제를 1차 공급한 데 이어 지난달 29일부터 3억5500만 원을 들여 가금류와 돼지를 중심으로 954농가에 2차 공급 중이다. 

축사지붕 열차단재 보급, 가축재해보험료 지원 등에 9억 원을 투입해 가축피해 최소화와 농가 경영안정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폭염 재해 취약 축사 150여 농가에는 1대1 전담관을 지정해 상시 점검 중에 있으며 SMS 문자발송 등을 활용한 피해예방 홍보도 적극 실시 중이다.

나수진 나주시 축산과장은 “축산농가의 시설, 가축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매일 피해 현황을 예의주시하며 폭염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농가에서도 폭염 지속시 지붕 위에 물을 뿌리거나 충분한 환기와 냉풍기, 안개 분무를 가동시켜 온도를 축사 내외부 온도를 낮춰 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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