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이주민의 현실을 담은 《이오 카피타노》
세네갈 다카르의 두 소년 세이두(세이두 사르)와 무사(무스타파 폴)는 유럽 대륙에서 뮤지션으로 성공하길 꿈꾼다. 이런 포부를 안고 떠나는 두 소년의 여정은 희망보다 절망과 공포에 더 가깝게 닿아있다. 사하라 사막, 리비아의 구금 시설, 망망대해 지중해까지 한순간에 생사를 가르는 위험천만한 순간들이 이들의 경로 내내 도사린다.
이탈리아 마테오 가로네 감독의 신작 《이오 카피타노》는 현재 국제사회가 가장 첨예하게 직면한 문제 중 하나인 불법 이주 문제를 다룬다. 전쟁과 기근이 아닌 경제적 불안정 때문에, 현재의 삶이 불행하기 때문이 아니라 더 큰 모험과 꿈을 갈망하는 마음 때문에 집을 떠난 이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기존 이주민이나 난민 영화들과 조금은 다른 노선을 취한다.
난민 착취 경제 버전의 《오디세이》
목숨을 건 탈주자들의 생생한 현실을 그려내면서도 꿈결 같은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이 영화는 지난해 제80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감독상),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상(신인배우상)을 거머쥐었다. 올해 초 열린 제96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는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작 중 한 편이었다.
세이두와 무사는 ‘틱톡 스타’가 되길 꿈꾼다.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들의 삶 깊숙이 침투한 스마트폰, 그 안에서 24시간 내내 만날 수 있는 세계 곳곳의 풍경이 젊은 혈기를 추동한다. “백인들이 우리에게 사인을 요청하게 될 거야.” 부모의 거센 만류에도 세이두와 무사가 국경을 몇 번이나 넘어야 하는 위험한 길에 오른 이유다.
《이오 카피타노》는 일종의 ‘난민 착취 경제 버전의 《오디세이》’다. 정치적 관점에서 서술된 이민자 이야기라기보다, 현실적 묘사와 더불어 고전적인 성장 스토리의 결을 더했다. 모험 안에서 철부지 소년은 타인의 생명을 둘러싼 딜레마에 처하고, 자신의 도덕성을 끊임없이 시험받으며, 세상의 질서 안에서 불의의 희생자가 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아간다.
불안한 여정은 처음 끼워진 단추부터 고난의 연속이다. 말리와 니제르 국경에서 경찰 검문을 맞닥뜨리게 된 소년들의 조악한 위조 여권은 금세 탄로 난다. 이때 무장한 경찰의 한마디는 주인공들이 맞이할 앞으로의 중요한 예고편이다. “50달러 내든지, 감옥으로 잡혀가든지.”
미디어가 보여주는 불법 이주민과 난민의 현실을 다룰 때 이들이 처하는 경제적 문제는 대부분 거세되어 있다. 사람이 가득 실린 과적 보트, 결국 물에 빠져 사망한 어린아이의 시신, 햇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화물 컨테이너에 짐짝처럼 실려온 이들의 이미지가 구체적 실상을 가려버리는 탓이다.
그 이미지를 온전히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이들을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시스템이 이미 조직적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세이두와 무사는 연속해서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 리비아 트리폴리까지 차로 데려다준다는 중개인과 접선했을 때, 사하라 사막에서 반군 집단을 만났을 때, 리비아 구금시설에 잡혀갔을 때도 모두가 돈을 요구한다.
이들이 합법적으로 고발할 수 없는 처지일뿐더러 대부분 사막이나 바다에서 죽을 것을 알고 있기에, 착취하는 이들의 수법은 강탈에 가깝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불법 이민자들은 결국 모두 착취당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비용을 지불하지 못한 이들은 죽거나 고문당하거나 노예처럼 팔려가는 수밖에 없다. 영화는 세계가 단지 어렴풋하게만 공유하고 있는 이 사실을 생생한 시청각의 세계로 구현해 관객의 눈앞에 가져다 놓는다.
영화 전반에 걸쳐 인물들이 경험하는 잔혹함과 숨 막히는 아름다움의 대조는 너무도 강렬해 충격적일 정도다. 달빛이 비치는 사하라 사막, 배 한 척이 고요한 바다를 가르는 풍경은 판타지의 일부 같다. 《이오 카피타노》는 실제로 과감한 판타지를 활용하기도 한다. 마치 풍선처럼 공중에 둥둥 떠있는 여인의 손을 잡고 행복한 얼굴로 사막을 걷는 세이두, 주술사가 소환한 천사가 세이두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엄마에게 날아가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세이두가 내면에서 느끼는 고통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럼에도 아직 마음 안에 남은 순수한 상상력을 표현한 시도다. 이 장면들은 세이두가 극심한 도덕적 딜레마를 겪는 순간에 등장한다.
통계 숫자와 정치적 단어 아래 가려졌던 삶
마테오 가로네 감독이 시칠리아 난민보호소에서 접한 15세 소년의 사연은 영화의 중요한 줄기가 됐다. 2014년 항해 경험이 전무한 소년이 250명의 이주민을 태우고 지중해를 가로질러 이탈리아에 당도했다. 불법 선박의 조타수가 유럽에 도착했을 때 바로 체포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인신매매업자들이 미성년자에게 배의 운항을 맡겼다.
당시 리비아에서 시칠리아로 건너온 소년은 인신매매 혐의가 적용돼 체포됐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했지만, 갖가지 사연을 지닌 이주민들 전체를 부정적 존재로 바라보는 시스템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이오 카피타노》는 이 여정을 세이두의 것으로 바꾼다. 그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사람들을 가득 실은 배를 운항하고, 마침내 유럽 대륙이 희미하게 보이는 곳에 당도하는 순간을 클라이맥스로 담는다. 국경 경찰이 타고 온 헬기의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지만, 소년은 “내가 선장입니다(Io Capitano)”라고 눈물 흘리며 목이 터져라 외친다.
도착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혜적 시선이 아니라 정반대 경험의 시선 편에 서는 것. 천신만고의 모험에서도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키고, 결국 목청껏 자신의 존재를 외치는 존재로서 주인공을 그려낸 것. 《이오 카피타노》가 다르게 지향하고자 한 지점은 바로 그것이다.
주인공들을 제외하고 영화에 나오는 모든 단역은 어떤 식으로든 이 모든 여정을 실제로 겪어봤던 난민 출신들이다. 이들 모두는 “세상이 믿어주지 않기에 우리의 경험을 보여주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이 영화가 막연한 희망으로 주인공들에게 닥칠 앞으로의 인생 여정을 긍정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국제사회가 앞으로 풀어갈 숙제이자 장담 불가능한 영역이기에, 영화는 그 이후까지 상상의 영역으로 채워내지는 않는다.
다만 미디어의 통계 아래, 정치적 발언 아래, 숫자와 부정적 단어들로 납작하게 축소됐던 존재들에게 삶이 있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지난 10년간 영화 속 주인공들과 같은 경로를 통해 사망한 5만 명이 넘는 사람들, 2023년을 기준으로 유럽연합에 망명을 신청한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존재를 잠시나마 각인시킨다.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다고 느끼는 순간, 극 중 인물들은 그들의 신인 ‘알라’를 외치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종교의 벽을 넘어 프란치스코 교황이 공식적인 지지를 보낸 영화이기도 하다. 지난해 9월 바티칸에서 교황과 추기경을 위한 시사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마테오 가로네 감독과 두 주연배우가 함께했다. 교황은 이민자였던 자신의 부모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이 같은 창작 작업으로 동시대 관객들의 양심을 자극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